<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들어가는 말
   오늘날 니체는 한국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니체는 언제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일까? 니체는 한국의 정신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 니체와 한국의 만남은 어떤 정신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니체와 한국의 중요한 만남은 독일 바이마르에서 있었다. 예나대학에서 공부했던 안호상(1902-1999)이 니체문서보관소(Nietzsche-Archiv)를 방문해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트를 만난 것은 1928년이었다. 안호상은 엘리자베트의 안내로 니체의 유고를 보며 존경심과 니체의 위대성을 느꼈다. 니체 여동생은 조선에 니체가 수용되었는가를 물으며 안호상이 니체를 적극적으로 소개할 것을 요청했다. 귀국 이후 1935년에 그는 《조선중앙일보》에 7차례 연재형식으로 「니-최 부흥의 현대적 의의」라는 글을 발표함으로써 한국에 니체를 소개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일본, 중국, 독일,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한 글로벌인재로 후일 대한민국의 초대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한국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니체가 처음 소개된 것은 그보다 이른 1920년이었다. 일본 식민지 속에서 3 1운동을 일으키며 자주독립을 외치던 한국은 세계문명의 흐름과 서양사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니체는 한국의 전통 유가사상과 서양의 자유 및 평등사상, 개인주의와 가족주의, 전통적 정신문화와 서양의 과학정신 등이 충돌하던 난조의 시대 에 세계문명의 흐름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용되었다. 한국에서 니체의 수용의 역사는 1920년부터 현재까지 약 94년의 역사가 되었다. 여기에서는 그 수용기에 해당하는 1920년에서 40년대까지의 한국의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1920년대: 힘의 사회철학으로서의 니체철학
   니체가 처음 한국에 소개된 것은 1920년 천도교의 월간지 『개벽』의 창간호(1920.06.25.)에서였다. 이 잡지는 주로 항일운동과 신문화운동을 주도하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니체를 처음 소개한 것은 이 잡지의 주필이었던 김기전이었다. 그는 세계문명의 흐름이나 정치 사회문제들, 사상적 토대 등에 관심을 가진 천도교 지식인이었다. 그는 니체사상을전통가치의 전복, 신의 죽음과 새로운 휴머니즘, 힘의 사상, 의지의 철학, 강자의 도덕으로 이해했으며, 식민지 시대의 나약한 민족의 운명을 넘어서는 단서를 니체사상에서 찾았다.
   천도교도인 박달성 역시 조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서문명의 충돌이 톨스토이주의와 니체주의로 대별된다고 보았다. 그는 톨스토이의 인도주의, 사회주의, 동포주의적 박애주의와 니체의 초인사상 및 힘의 철학을 비교하며 사회철학적 물음을 제기했다. 약육강식의 세계 제국주의 속에서 평화와 박애를 강조하는 톨스토이와 힘과 강함을 주창하는 니체주의의 대립은 서양문명을 수용하며 자강구국해야 하는 20세기 초 개화기 지식인들이 풀어야 할 역사적 과제였다. 천도교사상가이자 개벽의 주간이었던 이돈화 역시 사회주의와 개인주의, 동서문명과윤리의 갈등이라는 주제를 톨스토이(사회주의의 대표자)와 니체(개인주의, 즉 자아발현주의 의 대표자)라는 두 사상가를 대립시켜 놓고 해명하고자 했다. 그는 애기심과 애타심, 개인과 사회, 개인주의와 사회주의를 절충해 당시 사회문제를 풀고자 했다.
   1920년대 초 김기전, 박달성, 이돈화 등 당시 지식인들이 니체를 수용한 것은 소박한 소개 이상의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들 지식인들은 서양을 이해하고 세계문명의 흐름과 그 정신적 정수(精髓)를 따라가기 위해 사회진화론, 개인(주의)와 사회(주의), 개인의 해방과 사회평화, 자유와 평등, 새로운 도덕과 윤리질서 등의 문제를 니체와 톨스토이를 매개로 해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물었기 때문이다. 초기 지식인들이 받아들인 니체는 분명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적 의상을 입은 한국적 니체였고, 식민지 시대의 시대적 고민을 넘어서려는 강력한 힘의 철학, 의지의 철학을 표명하는 사회철학자로서 니체였다.

   ▶1930년대: 파시즘의 권력철학 대 초인의 문화철학, 네오휴머니즘과 생명파의 탄생
   초기 니체수용은 이후 1930년대 들어서 철학과 문학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니체철학은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과 서정주, 유치환, 이육사, 김동리 등 한국문학의 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30년대 철학분야에서는 니체사상을 파시즘의 권력철학으로 해석하는 경향(박종홍)과 초인의 문화철학으로 해석하는 경향(안호상,전원배)이 대립되었고, 문학분야에서는 니체사상을 기반으로 문예비평론으로서 '네오휴머니즘'(김오성)이, 그리고 시문학의 영역에서 생명파 (서정주, 유치환, 오장환,윤곤강 등)가 탄생했다.
   1930년대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가 등장하며 세계정세가 급변했으며, 일본의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경험하고 있던 한국의 식민지 시대는 이에 대한 민감한 반응 속에서 니체를 받아들였다. 박종홍은 파시즘의 행동주의 철학은 주의주의와 상통하며 니체의 '권력의지' 사상에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니체사상을 파시즘의 실천적 행동철학의 원류(原由)로 파악하는 박종홍의 논의는 당시 세계정세와 연관된 시류적 사회철학적 해석이었다. 이에 반해 안호상과 전원배는 니체에 대해 문화철학적 해석을 했다. 안호상의 해석은 니체의 '문화관', '가치관', '삶의 해석'에 집중되었다. 그는 니체철학의 핵심이 문화에 있다고 보며 자연과학적 문명에 기초한 무력주의로는 문화적 성취를 이룰 수 없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의 무력적 군사주의의 종말을 바라며, 니체철학에서 삶의 극복 및 문화의 성취 가능성을 찾았다. 전원배 역시 문화철학적 기조 위에서 니체의 가치전도사상에 주목했다. 그는 세계경제의 위기뿐만 아니라 도덕, 종교, 과학, 예술, 철학 등 문화 전면에 걸친 현대의 위기를 진단하며 니체의 사상을 '생명절대주의'로 규정했다. 30년대 철학에서는 니체철학이 파시즘의 행동주의 철학과 친연성이있다는 박종홍의 주장과 안호상 및 전원배의 문화철학적 해석 등이 대립을 이루었다. 특히 안호상의 니체해석은 50년대까지 한국 니체해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30년대 니체수용에서 또 주목할 만한 것은 니체사상을 기저로 '네오휴머니즘-제3휴머니즘'이라는 문예비평논쟁과 한국문학사의 한 축을 형성하는 '생명파'의 형성이다. 문예비평과 문학 창작방법론에서 주도적 이론과 논쟁을 제공한 것은 김오성(본명은 김형준)이었다. 그는 현대문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인간 탐구에서 찾았으며, 문학이란 새로운 능동적 실천적 창조적 인간 타입을 창조하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니체사상을 문학비평론으로 확장시켜 인간의 능동성, 실천성, 창조성, 인간 타입의 발견 등을 강조하는 네오휴머니즘을 주창하며 이를 창작방법론으로 확장해 나갔다.
   문학영역에서 일어난 니체수용의 또 하나의 결실은 시인 그룹 '생명파'의 탄생이었다. 서정주, 유치환, 오장환, 윤곤강 등 "생명파 시인들은 상실되어 가는 인간 원형을 돌이키려는 의욕", 즉 휴머니즘을 지향했다. 서정주는 고대 그리스비극, 초인, 영원회귀, 몸(육체)과 관능, 디오니소스적 생명의 긍정 등 니체사상을 수용하며 한국문학사에서 시인-사상가로 평가받았다. 오장환의 경우 유교의 시대착오적 가치의 허위성을 고발하고 기독교 정신을 비판하면서 '생명의지', '가치', '초극', '영원한 자유', '초인' 등 니체적 개념을 사용했고,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본질적 탐구와 생의 초극을 시도했다. 유치환 역시 허무주의, 기독교 비판, 신의 개념, 초인, 운명애 등 니체의 영향을 받으며 인간의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탐구했다. 생명, 의지, 초극, 휴머니즘이라는 생명파의 공용어는 니체철학의 한국적 시적 변주였다.

   ▶1940년대: 순수문학론 대 생리문학론
   1940년대 니체수용도 주로 문학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니체의 영향을 받은 김오성의 네오휴머니즘에 의해 촉발된 순수문학논쟁은 30년대 후반 한국문학계를 뜨겁게 달궜다. 이는 문학정신이 인간성 옹호에 있다는 문학의 본질과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는데, 유진오, 김동리, 김환태, 이원조, 서인식 등에 의해 이루어진 논쟁은 40년대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김동리, 조연현에게로 이어졌다. 독립운동으로 피검, 구류, 투옥, 옥고를 반복했던 이육사 역시 이 논쟁을 잘 알고 있었고, 니체의 언어를 수용하며 「광야」, 「한개의 별을 노래하자」, 「아편」, 「청포도」, 「절정」등 그의 저항시를 형성했다. 이 논쟁의 와중에 김동리의 순수문학론이 나왔고, 이어서 조연현의 문예비평으로서 생리문학론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동리는 '생명', '구경적 생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제3휴머니즘-순수문학-민족문학-세계문학이라는 문학관을 형성했다. 그는 문학이란 인간성을 옹호하며 삶을 긍정하는 구경적 형식이라고 본 것이다. 반면 조연현은 두 편의 일본어 평문에서 '이성비판', '디오니소스주의', '생명', '생의 자립성', '투쟁', '창조'라는 개념으로 니체를 해석했는데, 그 내용은 일본 군국주의를 정당화하는 '근대초극론'의 논리를 닮은 것이었다. 그는 해방 이후 이러한 니체독해를 탈정치화하며 자신의 문예비평으로서 '생리적 문학', '창조적 비평'을 형성해 나갔다.

   ▶니체와 한국 현대 지성사
   한국이 세계문명의 흐름 속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한 시대적 의식을 가진 천도교도들에 의해 1920년 처음 니체철학이 한국에 소개된 이후, 그의 사상 은파시즘의 문제의식이나 문화철학을 구현하는데, 또는 생명파의 탄생 및 이육사의 저항시의 형성과 네오휴머니즘의 문예비평 및 순수문학론과 생리문학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후 5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의 구축기를 거쳐 2000년대 세계표준판 니체전집이 출간되었고 현재는 세계학계와 직접 교류하며 니체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니체사상은 한국지성사가 다시 세계로 발신하는 학문적 가압장(加壓場) 역할을 하고있다.

 

김정현 교수(철학과)

<필자소개>
고려대 철학과와 대학원 철학과 졸업
독일 뷔르츠부르크(Wurzburg)대학교 철학박사
한국니체학회장 및 세계표준판 니체전집(21권, 책세상) 편집위원 역임
현재 원광대 철학과 교수
주요역저: 『니체의 몸 철학』,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철학과 마음의 치유』, 『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니체), 『기술시대의 의사』(야스퍼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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