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가 기승을 떨치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햇살 속에는 따스한 온기가 숨쉬고 있다. 3월의 햇볕은 눈 시린 황금빛 유혹으로 다가올 봄날을 확연히 실감케 한다. 봄날의 화사한 나날을 추억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이러한 시각적 색채가 우리에게 가장 큰 작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후반 급격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던 유럽 문화계의 중심부에서 기존의 보수적인 미술단체를 거부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분리파’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했던 화가였다. 그러나 예술사적 가치에서의 접근에서는 그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드러난 부문을 찾기란 어려운 형태이며 작품에 더 깊이 빠져들기란 부족한 느낌이 많다. 사랑, 관능, 팜므 파탈, 생명 등의 모든 것에서 등장하는 관심과 애정의 대상은 오직 여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인의 화갗로 불리는 클림트는 그가 자신과 그림에 관해 남긴 몇 안 되는 언급을 통해서도 분명한 자기만의 예술적 영역과 세계관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나 자신이 그림의 소재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내 관심을 끈다. 하지만 사람들보다는 다른 소재들이 훨씬 더 내 관심을 끈다.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게는 특이한 점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

 클림트는 직접적인 남성으로 상징되는 폭력을 가시화하기 보다는, 추상적인 도형 장식과 다채로운 색감으로써 신화에 종속된 인간을 현존하는 세계 속의 인간으로 분리하였다. 끊임없이 화가는 자신의 존재를 환기시키며 한 순간도 자기를 놓지 않기에 그림 속의 인물과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합일된 대상으로 욕망하고 경험한다.

 서양회화, 아니 꼭 미술적인 관심이나 배경지식을 갖춘 것이 아니더라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키스≫ (1907~08년, 캔버스에 유채 180×180cm 빈 오스트리아 미술관)는 한두 번일지라도 스쳐 지나 듯 본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클림트의 그림에 의해 예고도 없이 오는 황금빛 봄날을 데자뷰(deja vu)로밖에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3월, 성스러운 봄은 다시 돌아온 세상을 향해 키스를 퍼부으려 하고 있다.

천 명 구 (인문학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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