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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다양성, 사상과 행동의 자유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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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05  20:0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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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 저자 존 스튜어트 밀 역자 박홍규 문예출판사 2009.09.30

    19세기 영국의 사상가 밀John Stuart Mill(1806-1873)은 그의 대표작인 『자유론(On Liberty)』(1859)으로 인류 역사에서 자유주의의 가장 위대한 교사로 불려 왔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말하는 자유 세계, '자유' 국가, '자유'민주주의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자유'는 과연 무엇인가? 밀이 말하는 '자유'란 획일성이 아닌 개성, 자율성을 뜻하고, 이를 위해 그는 사상과 행동의 완전한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자유론』의 핵심이다.
   특히 법으로 강제하는 도덕주의에 대한 밀의 비판과 국가가 강요하는 가부장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범세계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 왔고, 검열이나 동성애나 이혼과 같은 분야의 법 개정을 촉구한 근본 지침이 되어 왔다. 사회의 도덕적 획일성을 유지하려는 법적 강제에 대한 그의 확고한 반대와 그런 시도로부터 시민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하는 그의 생각은 현대의 어떤 진보적인 사고나 정책보다 앞선다. 특히 21세기 한국에서 여전히 긴요한 과제들인 국가로부터의 개인의 자유, 과도한 중앙집권으로부터의 지방 자치, 국가주의적 교육으로부터의 교육 자치 등의 주장은 밀이 제시한 자유의 원리로부터 추구되지 않을 수 없다.
   밀이 『자유론』에서 말하듯이 과거 서양에서는 "자유란 정치적 지배자의 전제에 대항한 보호", 즉 부당한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였으나, 소수의 전제가 사라진 19세기 중반에는 그런 보호의 필요가 없어졌고, 도리어 다수의 전제, 즉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이 문제되었다.
   밀이 『자유론』첫 부분에 인용한 "인간을 그 가장풍부한 다양성 속에서 발전시키는 것이 절대적이고도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훔볼트의 말은 『자유론』의 핵심을 요약한 말이다. 훔볼트는 19세기 독일의 언어학자이자 정치가로서 유기적이고 인간적인 언어철학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목표를 인간의 개성에 따른 다양한 발전으로 보았다. '인간을 최대한 다양하게 발달하도록 하는 것' 이라고 하면 흔히 교육의 목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훔볼트는 그것을 국가와 정치의 목표로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밀 『자유론』의 핵심 원리는 "다양성"이다. 문제는 그 다양성이 대립하는 경우의 조정 원리인데, 이를 밀은 '타자 피해의 원리'로 설명한다. 즉 어떤 개인의 행동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관련되는 경우 그것은 절대적인 자유여야 하고, 그 행동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제한될 수 있다는 원리다.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지 않는 한 누구나 좋아하는 대로 사는 게 자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이 아무리 위험한 사상을 가져도 자유이고, 어떤 악취미를 가져도 자유라고 한다. 그것이 설령 개인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그 개인이 성인이고 그 자신에게만 고통을 준다면 자유라는 것이다. 가령 그것이 음주라든가, 동성애라고 해도 그것을 법이나 여론으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설령 법에 의해 일체의 악을 박멸할 수 있는 경우에도, 그렇게 해서는 참된 도덕이 육성될 수 없으므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도덕이란 유혹에 저항하여 선을 선택하는 것이고, 사회에 필요한 것은 법적 금지가 아니라 훌륭한 인격의 육성을 장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의 이익이나 행복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에는 사회의 권력이 작용한다. 그러나 권력의 근원인 다수자의 의지가 소수자의 이익이나 행복을 억압할 수도 있다. 특히 여론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다수자의 폭정은 인간의 마음을 노예화하는 것이므로 단연코 배격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상과 언론의 완전한 자유가 특히 요구된다.
   그러나 밀의 『자유론』에는 문제도 많다.
   첫째, 밀은 개인에만 관련된 행동에 대해서는 권력이나 사회가 어떤 간섭도 할 수 없고, 그런 간섭은 오로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행동을 순수하게 개인에만 관련된 행동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확연히 구분되는 행동이 있을 수 있을까? 나아가 그런 구분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일까? 타인에게 끼치는 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고 그런 해가 생기는 때는 구체적으로 언제일까? 그런 것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 경우에 자유의 범위는 대단히 좁아지는 것이 아닐까?
   둘째, 특히 밀은 그런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력 미성숙자나 미개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밀이 미개사회라고 한당대의 식민지에서는 자유가 아니라 전제가 정당하다고 주장함은 제국주의자로서 식민지의 전제지배를 정당화 한 것이었다.
   셋째, 『자유론』에는 대중 경멸 내지 귀족주의적인 분위기가 있다. 특히 대중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그 책의 본론은 대중, 아니 우리가 오랫동안 민중이라고 부른 국민 다수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중은 물론 그 이름이 민중으로 바뀌어도 그 대중의 여론(=민심)이란것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 분석 없이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유론』전반을 둘러싼 대중 비판도 그렇게 이해하면 여전히 우리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다수자 지배라고 하고, 그것은 다수결, 특히 선거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밀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대중이 지배하는 시장 민주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19세기 이전, 소수자가 다수자를 지배한 시대에 대한 자유의 추구로 나타났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대중이라는 다수가 지배자가 되면서 모든 사람에게 그 다수자와 같기를 요구하자 그것에 저항하여 밀이 『자유론』을 썼다. 즉 그 책은 그런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획일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집단주의에 대한 의문의 제기다. 
   밀은 민주주의가 유일하게 옳은 정치 형태라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잠재적으로는 가장 억압적인 정치 형태일 수있다고 생각했다. 밀의 생존 당시, 새롭게 등장한 민족주의와 공업주의는 규율된 거대한 대중을 낳았고, 그 대중은 공장과 전장과 정치 집회에서 세계를 변모시켰으나, 그 속에서 개인 대 국가, 개인 대 국민, 개인 대 산업 조직, 개인 대 사회적·정치적 집단 사이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했기에 밀의 우려는 정확한 것이었다.
   권력의 집중, 사회의 획일화, 감시 사회화 속에서 인간이 자동인형으로 변해 자유의 살해자로 나타나는 것을 밀은 우려했다. 즉 국가와 사회의 강력한 권위에 의해 인간이 위축되고 무기력하게 되어 질식하게 하고 마비시켜 겁 많고 오로지 근면하기만 한 짐승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려했다.
   밀은 그 유일한 치료 방법이란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독립되고 저항하는 개인을 교육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밀은 인간이란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본성이 너무나도 강하고, 그것이 민주주의 하에서 더욱 증대되어 순응주의자, 사대주의자, 위선자를 낳고, 마침내 독립적인 사고를 죽이고 안전한 사고밖에 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밀의 『자유론』은 1859년에 나왔다. 그 후 더욱 본격적으로 전개된 식민지 쟁탈을 비롯하여 20세기를 뒤덮은 비합리적인 권력이나 사회적 비참과 모순을 밀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가 추구한 정신적 자유만으로는 20세기의 온갖 사회적 문제를 극복할 수 없었다. 그러니 20세기에 와서 『자유론』에 대한 더욱 비판적인 견해가 나왔음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그는 식민지를 지배한 대영제국의 제국주의를 옹호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자유론』이 나온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도 출판되었는데, 그것은 과거의 교의와 편견을 타파하는데 중대한 영향을 끼쳤으면서도 폭력적 제국주의와 적나라한 경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그해,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도 출판되어 사회주의를 이론화시켰다.
    앞에서 말했듯이 『자유론』에 문제도 많지만, 가장 오래된 상식적인 처방, 즉 자유, 관용, 이성, 교육, 책임 등을 강조한 것 이상으로 현대에도 유효한 것이 또 있을까? 밀은 개인의 자유와 관용을 비롯한 그 모든 처방을 변호한 점에서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밀턴, 로크, 몽테스키외, 볼테르, 레싱, 디드로 등을 이었고 그 뒤 수많은 자유주의 사상을 낳았다.
   밀의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 그는 시장 경쟁이 비효율과 착취에 대한 필수적인 방지책이라고 믿었지만 자본주의 기업은 노동자와 경영자 그리고 소유자의 이익을 분리한다는 점에서 유해하다고 보았다. 특히 노동자는 경영자의 권위주의에 종속되고, 기업 이윤으로부터 얻는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 노동자의 자주 관리와 기업 소유자인 노동자에게 경영자가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치 영역의 자치인 지방 자치를 경제 영역에서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끝없는 생산 증대의 추구가 자원의 한정과 모순되어 이득을 감소시키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므로 생산과 인구의 증가는 정지되는 반면 문화적이고 기술적인 쇄신이 계속되어 보다 수준 높은 여가의 활용이 가능한 사회가 오리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남녀가 지성과 교양,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
움에서 나오는 더욱 높은 즐거움을 위해 헌신하고, 계급적 적대감이 없는 사상과 삶을 추구하여, 서로의 자유를 최대한 존중하되 자신이나 남들에게 결코 무비판적이지 않은 사회를 추구했다. 개인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민주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인,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시장 경제의 장점을 유지하는 사회가 그의 자유 유토피아였다.
   밀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낭만주의)를 결합했고, 그런 점에서 선배인 훔볼트나 괴테와 같이 풍부하고 자발적이며 다면적이고 두려움을 모르는 합리적인 자율적인간을 추구했다. 그리고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부터 관용, 다양성, 인간성이 나온다고 보았다. 그러한 밀 『자유론』의 핵심은 20세기에도 살아남았고, 21세기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박홍규 교수(영남대 교양학부)

<필자 소개>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하버드대와 노팅엄대, 프랑크푸르트대 연구교수 역임
평전과 번역서로는 밀의 『자유론』을 비롯하여 54권
저서로는 『세상을 바꾼 자본』을 비롯하여 36권
영남대 법학부 교수
현재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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