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거지가 많았다. 깨끗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영국 신사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근사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숙녀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소문에 듣던 런던의 신사와 숙녀들은 어디 있단 말인가. 백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의 지하철은 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대신 악취와 오물로 낡음과 지저분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토실토실하게 살찐 쥐가 지하철을 돌아다니는 광경을 서울에서 목격하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다. 서울의 깨끗한 지하철과 신사와 숙녀들과 한국말이 그리웠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런던 시내를 활보한 것 보다 불평과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툴툴거린 시간이 훨씬 많았다. 뭔가 다를 줄 알았던 유럽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난하고 지저분했으며 산만했다. 동양의 제3세계에서 온 어느 가난한 여행객인 나는 정말 잘 사는 인간인 것이다. 최첨단 모바일폰을 소유하고 있으며, 256램을 장착한 펜티엄의 소유자 이며, 깨끗한 지하철을 이용하는 도시인인 것이다. 런던 시내 한복판을 밝히고 있는, ‘삼성’이라고 써진 간판을 보며 충분히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나라의 인간이기도 한 것이다.

 선진문물을 겸비하고 있는 나라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물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헤게모니는 나의 이러한 지나친 비약을 치기로 볼 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그들의 문화와 문명을 동경하는 것 또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언제나 정의롭고 바르고 깔끔하다고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거지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며, 아직도 여왕이 존재하는 괴상한 나라이기도 하다. 조상들이 침탈해 온 고대의 유적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나라이기도 하며 과거의 영광과 지금의 영광을 착각하고 있는,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런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이집트유물들을 보며 ‘인디아나 존스’정도나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 재미있는 여행이지만, 서슴없이 그것들을 ‘장물’이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는 여행 또한 그리 나쁘지는 않다. 대영박물관의 한국관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물론 동양의 몇 개국에 대한 형식적인 전시일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그들이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조야한지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문제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문화를 알리지 못했다는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양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막연한 신비주의는 못내 안타깝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영국에 대한 인상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긍지는 세계인이 가져야 할 어떤 것의 전형일 수도 있다.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는, 공공의 이익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은 다른 문화를 흡수하기에 적합한 기질인 것도 사실이다. 런던이라는 도시가 관광지로 알려진 것 보다 정치, 경제적으로 혹은 세계인의 도시로 알려진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 일 것이다.

 실제로 나는 런던에서 며칠을 지내며 특별한 영국음식을 먹어 본 기억도 없고 중절모를  쓴 영국 신사와 기품 있는 숙녀를 본 기억도 없다. 내가 런던에서 먹고 보고 느낀 것들은 국적이 없는 세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어우러질 수 있다는 그런 가능성이다.

서 덕 민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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