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신문 연수단은 지난해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다리 역할을 하는 타이완을 방문해 타이완의 역사와 문화, 경제를 체험하고 돌아왔다.                                                             
/편집자

 우리 연수단 일행은 첫째날 13일에는 타이완 ‘국립고궁박물관’과 ‘충렬사’를 방문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으며, 중국 5천년 역사가 남긴 보물과 미술품으로 꽉 차 있었다. 62만 점에 달하는 대부분의 전시품은 천년 이상 지난 초기 송나라의 황실에 속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하루만에 관람할 수 없는 커다란 규모와 화려한 전시품들로 중국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충렬사는 국민혁명과 대일전쟁 중 전사한 애국지사와 장병 등 약 33만의 영령을 모신 곳이다. 성역으로 전사한 군인들의 사진, 동상, 훈장 등을 모아 놓고 있다. 매시간 정문에서 본전에 이르는 약 100m거리를 행진하는 위병 교대식과 꼼짝않고 부동자세로 서있는 위병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다.

 우리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대만문화대학’은 둘째날인 14일 방문했다. 연수단은 ‘대만문화대학’ 신문사와 간담회를 갖고 우리대학 교환학생들과도 만나 친목을 도모했다. 또한 온천으로 유명한 ‘양명산 화산지’를 방문해 노천탕을 체험했다. 둘째날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 위치한 ‘중정기념당’이다. ‘중정기념당’은 타이완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인물인 장제스(蔣介石)기념당이다. 장제스는 1949년 중국 본토에서 중국공산당을 패해 국민당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긴 후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내세우고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면서 반공과 대륙복귀를 노린 인물이다. 그러나 장제스는 장기적인 군사독재정치와 계엄정치로 인해 심각한 부패를 막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정기념당’은 장제스가 서거한 후 국민들의  헌금으로 1980년 완공됐다. 둘레길이 1천 200미터 공원 안에 70미터 높이의 ‘중정기념당’의 크기와 웅장함으로 우리 연수단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파란색 유리 기와로 덮여 있는 팔각형 모양의 지붕의 ‘중정기념당’ 안에는 장제스의 당시 활동 사진, 제복, 사용했던 자동차 등과 생전에 총통부의 사무실의 설비를 그대로 옮겨온 집무실이 재현되어 있었다. 소장돼 있는 전시물들에서 장제스의 생활면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 국민들 염원의 손길 그 자체가 느껴졌다.

 셋째날 15일에는 타이페이의 ‘해양공원’과 야시장을 방문했다. ‘해양공원’의 수족관에 전시된 이색적인 물고기들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타이페이 야시장의 활기찬 모습은 흥겨움을 자아냈다. 

 타이페이 시내에서 ‘해양공원’으로 가는 길에 오토바이를 교통수단으로 애용하는 타이완 시민들의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운전자들이 헬멧을 착용하는 모습에서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타이완 정부에서는 교통체증 대안책으로 오토바이 이용을 권장한 결과라고 한다. 헬멧을 쓰지 않고 오토바이를 사용하고, 출퇴근시간마다 자동차 홍수가 되는 서울의 모습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마지막날인 16일에는 홍콩을 거쳐 가수 조성모의 ‘슬픈 영혼식’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유명한 리펄스 베이(Repulse Bay)해변, 빅토리아 산정을 방문했다. 특히 빅토리아 산정에서 바라본 야경은 일품이었다. 

 원광대신문사에서는 앞으로 5회에 걸쳐 타이완 사람들에게 비친 우리나라의 이미지에 관한 설문조사 분석, 우리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대만문화대학 탐방기, 타이완과 홍콩의 야시장을 우리나라와 비교 분석, 타이완의 한류열풍에 대한 연수기를 게재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