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나 버카충하게 만 원만 줘"

 기자가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 찼다. '버카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동생은 '버스카드 충전'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했다. 동생에게 "어감도 좋지 않고 많은 사람이 알지 못하는 단어를 꼭 써야겠냐"며 신조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쾌함을 표현했다. 하지만 그 불쾌함도 잠시, 곧 부끄러워졌다. 돌아보니 나도 '과사(학과 사무실)', '중도(중앙도서관)', '심쿵(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다)' 등의 신조어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조어가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고 그 쓰임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보통 신조어라고 하면 청소년 사이의 은어로 인식되기 쉽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SNS 사용의 확대로 청소년뿐만 아니라 30~40대의 언어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생긴 이유는 우리의 언어 습관에서 효율성과 경제성이 중요한 가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려운 시험을 보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하소연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시험 때문에 너무 혼란스러워!"와 "시험 완전 '멘붕(멘탈붕괴의 줄임말)'!" 중 어떤 표현이 당사자의 심정을 더욱 깊게, 간단하게 표현했는지 두 문장을 직접 사용해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표현들을 자주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분명하게 느낄 것이다.
 신조어 사용이 이렇게 확산된 이유로는 효율성과 경제성뿐만 아니라 방송 매체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점도 있다. 방송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있고, 또 정보를 더욱 강렬하고 자극적인 형태로 전달하려는 경우가 많다. 시청자를 짧은 시간에 사로잡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보니 줄임말과 같은 신조어들이 계속해서 생산되고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뉴스에서도 '국정원(국가정보원)', '문체부(문화체육관광부)' 등 줄임말을 사용한다. 오히려 정확한 방송 언어의 구사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조어는 쓰임새를 반영한다. 국립국어원이 자장면을 짜장면이라 할 수 있게 인정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언어는 한 국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언어에 언어 사용자들의 정체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율성과 경제성의 측면에서 신조어 사용 현상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신조어의 남용은 언어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기 때문이다.
 언어가 국가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은 두레와 품앗이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과거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 마을 공동체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그 결과 두레와 품앗이가 생겼고, 이는 우리 삶의 단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마을 공동체 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외국의 경우에는 두레 또는 품앗이라는 단어가 없다. 영어 표현을 찾아봤지만 'a cooperative farming team(협동농업단)', 'an exchange of labor(노동교환)'라는 표현만 있을 뿐이었다. 또한 '정(情)'에 대한 정확한 번역이 어렵다는 사실도, 한국어를 통해서 우리나라만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이처럼 언어에는 국가가 담겨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무분별한 신조어의 사용은 멀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신조어를 '창조'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문제는 신조어를 많이 쓰는 세대의 언어적 지식 수준이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 국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올바르지 않은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한글 파괴 현상을 초래하기 쉽다. 신조어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창조와 파괴 사이에서 스스로의 언어 생활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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