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한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네이티브 스피커』에 대하여
 
 이창래는 첫 장편『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1995)로 미국의 각종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으며, 현재 프린스턴 대 문예창작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속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재미 한인 작가이다. 이창래는 세 살 때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5세대이다. 이창래의 실존이 많이 투영된『네이티브 스피커』는 '다문화 사회'라는 미국사회에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소설은 탐정소설을 차용한 서사적 구조로 되어 있으며, 줄거리는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헨리 박'이라는 인물이 직장에서 겪는 사건과 또 하나는 아내이자 미국 백인 여성인 릴리아와의 갈등이다. 주인공 헨리 박은 이민 2세대로 '이민자'라는 정체성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즉 인종적, 문화적 이방인이라는 '타자성'은 그로 하여금 어디서든 '배경'으로서만 존재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를 강요당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헨리의 성격은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사설탐정기관에서는 진가를 발휘한다. 회사는 '비밀첩자'에게 두드러진 캐릭터를 지워버리고 끊임없이 페르소나(가면)를 바꾸면서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헨리의 '무성격'은 바깥의 세계에서는 장점이 되는 반면, 가정에서는 트러블을 일으킨다. 아내 릴리아는 처음에는 헨리 박의 조용한 성격과 관조적 태도에 매료되지만 점차 그와의 절대적 거리감으로 인해 괴로워한다. 특히 릴리아는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남편이 보여준 일관된 침묵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결국 남편에게 쪽지를 남기고 이탈리아 섬으로 떠난다. 
 헨리 박이 새로 맡은 임무는 존 강이라는 한인을 염탐하고 중요한 정보를 캐내는 일이다. 존 강은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백만장자로 현재 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인을 비롯한 플러싱의 다양한 이민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어 차기 뉴욕시장에 출마하려 한다. 그러나 헨리는 존 강의 선거캠프에 들어가 그를 지켜보면서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왜냐하면 존 강은 헨리 박이 이제까지 알던 '한인' 혹은 이민자의 전형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즉, 악착같이 일을 하여 미국 사회에 정착했으며 배타적이고 소심한 태도를 지니고, 가족이기주의와 자본주의를 신봉하며 '자신'과 '가족' 너머의 세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자신의 아버지와 이민자들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존 강은 수세적인 이민자의 전형과 달리,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지만 이를 단지 혈연적 관계에 고착시키지 않고 더 확대된 차원의 공동체적 연대감으로 확장시키고자 한다. 헨리 박은 이러한 존 강에 점차 이끌리게 되는 중에 뜻밖의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선거 캠프 사무실에 폭탄을 던지고, 자원봉사 청년 에두아르도 페르민과 청소부 아줌마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 사건은 뉴욕 한인 타운과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이민자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사건 일어난 직후, 존 강은 일체의 공식활동을 접은 채 집에 칩거한다. 헨리 박과 캠프사람들은 아마도 존 강이 페르민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탓이라고 여긴다. 페르민은 존 강이 기부금 장부 관리를 맡길 만큼 총애하던 남미출신 청년으로, 존 강이 그토록 페르민을 아낀 것은 그가 "다른 사람이 자기 맨머리를 두드리게 할 수 있을 만큼의 강인한 자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 강의 칩거와 침묵은 좀처럼 끝나지 않고, 존 강의 공식적인 성명이 부재한 채로 페르민을 둘러싼 소문이 퍼진다. 그것은 페르민이 맨하튼에 값비싼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으며, 아마도 존 강의 돈을 훔쳤으리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전혀 다른 것으로 밝혀진다. 헨리 박이 여전히 은둔하고 있는 존 강을 찾아간 날, 존 강은 다음과 같은 비밀을 그에게 고백한다. 그것은 존 강도 최근에 알게 된 사실로, 페르민이 라이벌인 데 루스의 첩자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자신이 '페르민'의 거취를 한인 조폭의 손아귀에 맡겼다는 것이다. 헨리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혼자만 간직한 채, 어떻게든 존 강을 도우려 하지만 회사에서는 존 강의 계회원 명단을 요구한다. 그것을 거부할 경우, 존 강을 살해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결국 헨리는 명단을 넘기고 그로 인해 불법이민자들은 이민국에 색출되어 추방된다. 또한 존 강은 어린 접대부를 데리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완전히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소설은 존 강의 몰락, 그리고 헨리 박의 절망으로 끝나지만 표면적 결말과 다르게 이 소설은 긍정적 비전을 보여준다. 그것은 헨리 박이라는 인물이 존 강을 야유하는 군중들 사이로 자신의 몸을 내던지게 되는 변화이다. 그는 이전의 자신을 숨기려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을 내보이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아내 '릴리아'와의 화해를 가져온다. 이 소설의 제목 '네이티브 스피커'란 문자 그대로 토착어를 잘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민자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동화란 자신을 사라지게 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타자성을 드러냄으로써 온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에 대하여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를 넘어서)와 동사 'speiro'(뿌리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이다. 역사적으로는 보통 대문자 'Diaspora'를 써서 '팔레스타인 또는 근대 이스라엘 밖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용어였으나, 최근 디아스포라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민족 국가적 기원에서 벗어난 이들이 겪는 이산의 경험, 정체성'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민족 이산은 인류 역사 이래 계속되어 왔던 것이나 제국주의, 식민주의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최근 지구화 현상과 함께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다양한 디아스포라인들을 만날 수 있다.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회담> 같은 TV 프로그램, 한국말을 못한다고 정신병원에 6년이나 수감되었던 네팔의 찬드라의 사연(박찬욱 감독의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2003), 일상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외국인들, 2010년 월드컵에서 북한 축구 대표로 활약했던 '정대세의 눈물' 등이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자. 2010년 독일 축구 팀은 23명 중 11명이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2세였고, 프랑스의 축구 선수 지네딘 지단도 디아스포라인이다. 지단의 부모는 알제리인으로, 이러한 그의 출신성분은 종종 매스컴에 이슈가 되기도 했다. 가령 2006년 월드컵 축구에서 지단은 상대팀인 이탈리아의 선수 마테라치를 박치기해서 퇴장 당했다. 박치기 이유는 지단에 따르면,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지단의 어머니를 '회교도 출신의 매춘부' 운운해서였다는 것이다. 이 이외에도 알제리 축구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지단 모습 등 알제리인 지단은 끊임없이 프랑스 대중의 관심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방인』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까뮈도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이 아랍인을 쏘아죽인다는 '이방인'의 이야기는 디아스포라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 지난 1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파리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으로 전 세계가 떠들썩했는데, 이 사건의 테러범은 알제리계 이민자와 말리 이민자(쿠아치 형제와 아메디 쿨리발리)이다. '표현의 자유' 논란은 고아, 사회 낙오자로 살아야했던 이민자들의 차별적 현실을 지우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2005년 런던 테러(파키스탄계 무슬림)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사건이다.  
 디아스포라의 글쓰기는 뚜렷한 목적과 지향성을 갖기보다는 수많은 난제들을 지니고 있다. 민족주의, 제국주의, 탈식민주의의 문제, 똘레랑스로는 해결될 수 없는 정치·경제적 문제들, 이중적 정체성과 문화적 혼종성 등이 그 예이다. 
 수많은 디아스포라의 작가 중 한인, 외국 대표 디아스포라 작가를 몇 명 소개한다. 이회성은 재일 한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로, 1935년 사할린에서 출생했다. 출생 당시 사할린은 '가라후토'로 불리는 일본 영토였으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다시 러시아 땅이 되었다. 
 일본의 귀국행렬에서 제외된 이회성의 가족은 밀항선을 타고 큐슈로 가서 한국으로 가려 했으나 포기하고 다시 홋카이도로 간다. 이회성의 장편 『백년 동안의 나그네』에는 이러한 여정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이회성은 또한 『유역』이라는 작품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의 삶을 르포 형식으로 조명한 바 있다. 서경식은 대표적인 재일 디아스포라 작가로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로 많은 에세이를 출간한 인물이다. 그가 '재일'의 운명에 대해 사유하게 된 것은 한국에 유학 갔다가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19년, 17년을 옥살이 한 두 형 서승, 서준식 때문이다. 강상중은 도쿄 최초의 한국인 정교수, 지문날인 거부, 일본식 이름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를 한국 이름으로 개명한 비판적인 일본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책 『재일 강상중』,『어머니』등에는 '재일'의 분열적 정체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은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프랑스 레지옹 '마르티니크' 출신으로 탈식민주의를 대표하는 이론가이다. 그가 스물 일곱에 집필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앙띨레스 지역 흑인의 정신병리학을 연구한 임상연구서로, 흑인의 열등콤플렉스의 기원은 백인임을 지적하고 이러한 불평등과 차별은 '개입'과 '투쟁'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는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살았던 작가였으나,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로 인해 런던, 미국으로 쫓겨가고 결국 남미 브라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들 문학에서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노스탤지어'라고도 할 수 있는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이다. 디아스포라 문학에 공통되게 드리워진 그들의 '이중 정체성'은 끊임없이 '온전한' 자아로서 살아갈 수 있는 조국과 고향을 염원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이 작품을 통해 그리는 '고향'은 실체로서의 '현실적인 조국'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꿈꾸는 '차별과 고통이 없는 조국'이라는 점에서 '상상된 조국'이며, 그런 의미에서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정은경 교수(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비평) 박사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 당선
·비평 전문지 『작가와 비평』편집 동인
·문예지 『내일을 여는 작가』 편집위원
·출판사 『아시아』 기획위원
·주요저서 :『한국 근대 소설에 나타난 악의 표상』,『디아스포라 문학』, 지도의 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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