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월부터 방영된 모 항공사의 CF, ‘이스탄불 편’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내심 흐뭇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렵고 불편한 관계인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터키의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에서는 ‘설렘’이라는 코드를 가진 여자 대 여자로 만난다는 CF의 내용, 터키를 다녀온 나만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하는 마음에서였다.

 

   
지난 1월, 나는 23일간 터키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누군가는 유럽일주를 했을 시간에 나는 터키라는 한나라에만 있다보니 터키의 국토를 크게 7개의 지방으로 나눴을 때, 산지가 많은 동부지방, 이라크,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동 아나톨리아 지방을 제외하고, 터키의 4개의 지방(마르마라해, 에게 해, 지중해, 흑해, 중앙 아나톨리아), 약 12개의 도시를 여행할 수 있었다.

 지방마다 각기 다른 문화와 풍경, 색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가 ‘고부갈등’까지도 소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도시 이스탄불이다.

 이스탄불은 역사적 유산이 모여 있는 구시가, 비즈니스와 유행의 거점이 되는 신시가 그리고 아시아 지구의 3지역으로 나뉜다. 그만큼 넓고, 볼거리도 다양하다. 그래서 터키를 일주하는 배낭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이스탄불을 샅샅이, 넉넉하게 보기위해 여행의 맨 마지막 일정에 이스탄불을 넣는다. 나 역시 귀국 4일을 앞두고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수도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과 아시아가 나눠진다는 지리적 사실만으로도 내게 이스탄불 여행길은 늘 설렘으로 벅찼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에 내렸을 때, 내 눈앞에 비잔틴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아야소피아와, 거대한 블루모스크(술탄 아흐메트 사원)가 서로 마주보고 있고, 언덕 위에는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였던 토프카프 궁전이 보였다.

 그때 느꼈던 감동과 흥분! 수천 년의 역사와 문화가 차곡차곡 쌓인 그 거리에서, 나는 현재의 터키가 아닌 콘스탄티노플의 땅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나의 착각은 이스탄불의 신시가 탁흐심에서 단단히 깨졌다. 세계적인 기업들의 건물, 멋진 부티크와 카페,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신시가는 서울의 명동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화상점이 즐비한 골목에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한 상인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는 것도 재미있고, 터키 사람들이 즐겨먹는 군것질 거리로 배를 채우며 신시가의 현대적인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의 문화, 이슬람과 기독교, 이방인과 현지인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이스탄불. 나는 신시가와 구시가를 거닐면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찬란한 역사와 거대한 문명의 흔적에서 느꼈던 흥분, 활력이 넘치는 시장과 거리, 낯선 이방인에게 따뜻했던 사람들, 환상적인 자연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여행객’이라는 신분만 누릴 수 있는 특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터키. 그리고 이스탄불. 내가 잊기에는 너무도 많은 추억을 담아온 곳이기에 그곳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벅차다.

 이 용 선 (정치행정언론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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