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I.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본인은 20세기 후반기에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지난 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21세기의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은 주제는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바람직한 사회, 그리고 그러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치에 관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태도를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한다. 글로벌 시대인 21세기에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야 하는가?   
 
II. 21세기의 지향점과 우리의 마음가짐 
1. 열린 사회와 다원주의  
  미국 <타임스>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아인슈타인이 뽑힌 바 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물리학적 패러다임으로 우리에게 열린 사회의 비전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였다. 그는 뉴턴의 절대적인 사고방식이 지배했던 기존 물리학에 도전하여 시간의 상대성을 주장했다. 자연세계를 이론화한 물리학자로서, 불변의 진리는 없고 항상 진리는 발전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우리의 좁은 시야를 바꾸어 준 그의 이론은 열린 사회로 가는 법칙을 마련해 주었다.  
  이 새로운 세기에서 지향해야 할 가장 바람직하고 장래가 있는 사회상은 '열린 사회'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21세기는 '개방 사회'를 지향한다. 이러한 사회에는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이 공존한다. 20세기의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폐쇄사회는 필연적으로 무너져 왔다. 
 
2. 한국 사회: 배타성에서 공존으로 
  6.25 전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절대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했다. 유일한 무엇 하나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이는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소련과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미국 중에서 하나의 체제만 남아야 한다는 냉전시대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하나만을 인정하는 폐쇄적이고 절대주의적 시대의 산물이다. 한반도의 38선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재현한 상징적인 '금긋기'였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오늘날, 이러한 절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점차 상대적인 사고로 전환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그래야 한다. 유일한 그 무엇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체제, 그리고 그러한 체제를 뒷받침하고 있는 여러 개의 상대주의적 사고방식이  공존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를 볼 때 정치적 측면에서 좌파는 진보로, 우파는 보수로 변하고 있다. 극단적인 우파와 극단적인 좌파를 넘어서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보수와 진보가 함께 어우러져서 살아야 한다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더 장려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북한은 아직까지 절대주의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폐쇄적인 사회에 머물러 있다.  
 
3. 다원주의적 세계의 흐름 
  한국보다 앞서 선진국이 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도 지난 몇 세기를 거치면서 절대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상대주의적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절대가 상대가 되었으며, 상대는 다시금 다원주의로 이어졌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는, 다양성을 가진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다원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 지성인들의 역할이 크다. 선진국에서 지성인들은 투표 시 어떠한 고정된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는다. 이들은 열린 사회를 지향하는 정당을 지지한다. 특히 민족, 종교의 상이성을 비롯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일구어서 살아가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작금 통용되는 세계의 중심적 가치를 창출한 미국은 종교와 민족을 구별하지 않는, 포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이루려고 부단히 애써 왔다. 마찬가지로 유럽 연합(EU)도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원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21세기에는 또 하나의 다원사회가 생겨날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 중심의 가치체계가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가 도래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질적인 집단이 보이는 폐쇄성을 벗어나야 한다. 서로간의 차이를 배려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개방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4. 개방사회를 저해하는 세 가지 걸림돌
  우리 사회가 개방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폐쇄적 민족주의, 두 번째는 공산주의, 세 번째는 종교적 근본주의이다.
 1) 폐쇄적인 민족주의
  국수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민족주의는 후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조선 시대 3.1 운동 선언문은 현재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 조선이 독립하면서 다른 나라와 자유롭게 공존하는 개방성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은 낡은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폐쇄사회를 지향하고 있어 큰 걱정을 야기한다.
2) 공산주의 
  국수주의가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극단의 좌파주의 또한 열린 사회를 방해한다. 북한이나 쿠바가 그렇다. 특히 주체사상을 체제유지의 방편으로 사용하는 북한의 폐쇄성은 문제점이 많다.  
3) 종교적 근본주의
  나의 가치관만이 옳다는 절대주의적인 신념은 잘못된 사고 방식이다. 예를 들어, 구약을 믿는 유대인과 쿠란을 믿는 무슬림들이 서로 옮음만을 주장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배타적인 상황은 우려스럽다. 배타성만을 앞세우고 공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자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보수적인 기독교가 우려스러운 점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예를 들어서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6일 창조설을 문자 그대로 믿는 한국 기독교의 보수성은 비판적으로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문자주의적인 배타성을 넘어서서 상대방의 가치를 포용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III. 열린 사회를 위한 공공적 사유
  열린 사회, 그리고 다원주의적 사회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공공적인 사유 방식을 훈련해야 한다. 물질적인 풍요 속, 각자의 사적 욕망과 경쟁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에서 공적 사유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을 기점으로 해서 민족국가를 우선시하게 되었다. 각자가 속한 가정, 지역, 학벌과 같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우리나라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우리가 공통으로 몸담고 있는 민족국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민족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기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때 우리에게 주인의식이 생긴다. 우리 개인은 그 공동체와 더불어 같이 성숙해 나가기 때문에, 넓은 사회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일단 몸담고 있는 큰 공동체인 우리의 국가를 생각해야 한다. 일신의 이익을 위해서나 각자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면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본보기가 될만한 분으로는 조만식 선생이 있다.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않을 때, 그처럼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성숙도에 따라서 사회는 세 가지 단계로 나뉜다. 가장 발전하지 못한 형태의 사회 체계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초기 단계의 사회에서는 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여기서는 군대와 경찰이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다. '권력사회'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러한 사회에서 권력은 돈과 정치력을 장악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으며, 힘이 없는 사람들은 자유가 없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혁명, 한국에서는 4.19 혁명으로 이 사회가 무너졌다.  
  두 번째 단계의 사회는 법이 지배하는 '법치사회'이다. 대한민국은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이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대한항공 회항 사건과 같이 다시금 힘이 지배하는 사회, 즉 힘이 없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회로 전략할 위험이 있다. 두 번째 사회에서는 법치를 통한 정의와 평등을 지향한다. 법치를 책임지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된다.
 
2. 공존의 질서를 높이는 책임의식
  힘이 지배하는 권력사회, 법이 지배하는 법치사회 이후에 오는 마지막 단계의 성숙한 사회는 도덕이 질서를 잡는다. 이러한 사회는 윤리와 인간애(Humanism)의 원리로 작동된다. 인간이 온전히 인간다움을 구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인류의 지향점인 '자비'와 '사랑'이 이러한 '도덕 사회'의 가치관이다. 이 단계에 오면 교육자, 종교인, 대학 책임자의 역할이 커진다.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단계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성숙된 사회 운동으로 우리가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몇몇 선진국들은 이미 이러한 사회에 진입해 있다. 타인을 배려하는 가치가 존중되는 이러한 사회에 사는 국민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기 위해서 교회에 헌금을 바치기 보다는 국가에 세금을 기꺼이 낸다. 한국 사회는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한 질서를 위해서 우리 시대의 사회악인 거짓과 폭력을 없애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3. '창조적인 소수'를 위한 대학의 역할 
  발전된 사회는 그 사회의 '창조적인 소수'를 키워낸다. 이러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대학이 필요하다. 일률적인 평등주의에 기반한 정의나 권력자만이 누리는 자유를 넘어서고 인류애적 가치를 지향하는 발전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대학 지도자들은 이러한 사회를 이끌어나갈 윤리적인 가치관을 만들어내야 한다.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가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미국의 마틴 루터 킹, 우리나라의 도산 안창호 선생,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바로 이러한 인간애를 가지고 인류 전체에 인간애의 메시지를 전한 사람들이다. "모든 거짓과 폭력은 사라지고, 진실과 사랑이 영원히 남는다"는 간디의 말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압축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슴에 새기고 우리 젊은이들은 뜻을 높게 가지길 바란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인류가 사랑과 자비에 바탕하여 서로에게 봉사하는, 인간다운 삶이 절실한 시점에 놓여 있다. 
 김형석 (철학자, 연세대 명예교수)
<주요 저서>

『고독이라는 병』,『영원과 사랑의 대화』, 『운명도 허무도 아니라는 이야기』, 『오늘을 사는 지혜』, 『철학 입문』,『김형석 에세이 전작집』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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