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 (IL PRINCIPE)마키아벨리(정치인) 저 강정인, 김경희 역 까치글방

   국가의 힘 키우기 위해 제도를 강조
   이익만 추구하는 용병 비판, 자국군을 구성하고 인민의 지지를 얻으라는
   제언, 마키아벨리의 혜안 돋보여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말기를 살았던 정치인이자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피렌체라는 이탈리아의 도시 공화국에서 외교와 군사업무를 맡아 보았다. 그 기간은 1498년에서 1512년까지였다. 이 시기는 메디치가가 피렌체를 지배하다가 잠시 권력을 잃고 공화정이 성립되었던 기간이다. 피렌체는 극심한 정치적 분란과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내적으로는 정치세력들 간의 분란이 끊이지 않았고, 외적으로는 프랑스와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의 침입 속에서 이탈리아 국가들 간의 영토다툼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힘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힘과 권력에 대한 사고가 그의 정치 저술의 핵심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군주론』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상이한 유형의 군주국 즉 세습, 복합 그리고 신생군주국을 다루는 1장에서 11장까지이다. 두 번째 부분은 12장에서 14장까지이다. 여기서는 군대문제를 다루며 용병을 비판하고 자국군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세 번째 부분은 15장에서 23장까지이다.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가 핵심주제이다. 그리고 네 번째 부분은 24장에서 26장까지로 이탈리아가 왜 참담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이탈리아의 해방과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
   『군주론』의 주제는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비르투(virtu)이다. 그런데 정치공동체에는 군주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인민과 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며 사는 곳이 바로 정치공동체이다. 다시 말해 『군주론』의 주요 등장인물은 군주 일인이 아니라, 인민, 귀족 그리고 군주이다. 이들의 관계가 곧 권력관계이고, 그 권력관계를 잘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정치적 역량(virtu)인 것이다. 그런데 귀족은 수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기에 지배하려 들고, 인민들을 수탈하려 한다. 반면 인민들은 귀족들의 억압적 지배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한다. 여기에 호시탐탐 자국을 노리는 외국의 힘을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정치에서는 귀족과 인민들 간의 대립을 잘 조정해야하고, 국외적으로는 강대국의 야욕을 제어해야 하는 과제가 군주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군주는 자신의 굳건한 힘에 의지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자국군과 인민의 지지이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한 정치공동체에서 다수를 점하며, 야망이나 오만보다는 자유롭게 사는 것에 만족하는 인민들은 자국군의 구성원이자 군주의 지지층이어야 한다. 이에 반해 소수이면서 많은 자원을 독점한 채 오만과 지배욕에 휩싸여 있는 귀족들은 군주의 잠재적 경쟁자이자 적인 것이다. 귀족을 제어하고 인민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하는 것이 군주의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역량은 그 소유자의 수명과 같이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 사람의 역량은 모든 역경을 다 돌파할 수 없다. 『군주론』25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예를 통해 그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율리우스 2세에게 성공과 명성을 가져다준 그의 결단력과 과감성은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실패를 맛보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상황이 변하여 과단성이 통하지 않는 때가 오면 그는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가진 능력의 한계는 명확한 것이기에 급변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에 크게 의존하는 군주는 그만큼 불안정한 것이다.
   지도자의 뛰어난 역량은 비록 그것이 훌륭한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고는 하나 인간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것을 인식한 마키아벨리는 지도자에게 그 자신의 힘이 아닌 국가의 힘을 키울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군주론』은 지도자의 비르투와 국가의 비르투 두 가지의 관점에서 읽혀져야 한다. 『군주론』에서 나타나는 권력은 지도자의 권력과 국가의 힘 혹은 활력, 이 두 가지인 것이다. 국가의 힘을 구성해내야 하는 지도자의 비르투는 제도를 구축해낼 수 있는 힘이었다. 이탈리아에 뛰어난 역량을 지닌 지도자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국가의 비르투가 중요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활성화시키는 법을 아는 비르투 있는 군주가 없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힘을 키우기 위해 마키아벨리는 제도를 강조한다. 25장에서 잘 조직된 비르투를 가지고 있는 나라로서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을 들고 있는데, 독일은 10장에서 좋은 법규와 제도를 통해 군사훈련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언급되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19장에서 '질서가 잘 잡힌 국가들' 중 하나로 예시되고 있으며, 그 핵심적인 제도로 인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호의를 얻는 기관으로 고등법원을 들고 있다. 좋은 군대와 인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잘 조직된 비르투를 가진 나라의 특징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도를 만들어 내야 하는 비르투 있는 지도자는 어떠해야 할까? 이러한 지도자상은 용병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서 그 단초를 살펴볼 수 있다. 용병은 보수를 받고 고용된 군대이다. 따라서 조국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에 얽매여 있는 군대이다. 전쟁을 업으로 삼기에 전쟁에서 이익의 극대화를 노린다. 전쟁이 끝나면 이익추구의 공간이 사라지기에 열심히 싸우지도 않을뿐더러, 보수 이외에 전쟁에 나온 목적이 없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싸우지도 않는 것이다. 용병에게 전장(戰場)은 이익추구를 위한 공간이지 조국을 위해 희생과 위험을 감내하는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마키아벨리는 "용병이란 분열되어 있고, 야심만만하며, 기강이 문란하고, 신의가 없다"고 적고 있다. 이러한 군대를 이끄는 용병대장 또한 철저히 사익을 추구하였으며, '오직 자신만의 권력을 열망하는' 인물이었다. 용병대장의 비르투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지 국가를 위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용병대장은 공인(公人)이 아니라 사인(私人)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아니라 일신의 이익을 위해 일한 이탈리아의 지도자들은 '오만무례'했으며, 그들은 국가를 보지 못했고, 오직 자신만을 보았던 것이다. 반면 훌륭한 비르투를 가진 지도자들은 새로운 제도와 법을 가지고 자국군을 만들어 내었다. 용병들과는 달리 자국군은 엄격한 기율과 법제도에 의해 통제되고 훈련되기에 용감하고 기율이 서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자신들이 지키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싸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보다도 더 충성스럽고, 더 믿을 만하며, 또 더 훌륭한 군대는 없는" 것이다.
   『군주론』은 지도자의 참된 역량이 무엇이며, 국가의 활력은 어떻게 진작시킬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저서라고 볼 수 있다. 지도자는 변화하는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함양하여야 한다. 다양성을 몸에 체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의 비르투는 인간과 개인의 근본적 한계 속에 갇혀 있다. 신체의 유한함과 행동양식의 비유연성으로 인해 예측불가능하고 변화무쌍한 세계를 돌파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의 힘이자 활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비르투는 국가의 비르투를 통해서만이 강화될 수 있다. 지도자의 비르투는 그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이 지닌 역량의 강권적 성격은 그 근본적 한계로 인해 자신을 강화할 경우 권력의 축소만을 불러올 뿐이다. 하지만 성공한 지도자의 비르투는 그 성공으로 인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어렵다. 여기에 국가의 활력을 강화시키려는 시도는 얼핏 보기에 지도자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인민을 무장시키거나 공적인 제도를 만들어 인민의 지지를 얻는 것 모두는 지도자 스스로의 힘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지도자의 비르투가 행해야 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그것은 국가의 활력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이다. 활력은 잠재해 있는 것이기에 그것은 구성되어야만 한다.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구성해 낼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다. 활력은 배가되기도 하지만 반감되기도 하는 것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잘못 구성하는 경우는 당시의 이탈리아처럼 있는 역량도 활용할 수 없다. 반면 잘 구성하는 경우 그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 자국군을 구성하고 인민의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는 제언은 바로 이러한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활력과 힘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러한 활력은 지도자 개인이 담지하기 어려운 유연성을 국가차원에서 획득가능하게 해준다. 유연성은 상황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행동양식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을 충원하여 그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와 상황을 만들어 놓는다면 급변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한 국가는 유연하게 잘 대처할 수 있다.
   『군주론』의 교훈은 관계 속에서 권력이 산출됨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지도자에게 자기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됨을 말하고 있다. 지도자 개인의 권력만을 보았을 때는 관계에서 나오는 힘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조그만 능력에 심취되어 권력을 누리려고 하는 지도자는 그 조그만 권력마저도 누리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활력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는 더 많은 권력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론적 권력관은 지도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힘이 세지는 것이 나라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가 너무 강할 경우 그 국가의 힘은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지도자는 국가의 비르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생존의 문제이다.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구성하는 관계적인 힘에 의존해야 한다. 이를 위해 힘의 의존적인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인간이 자원이고, 그들 간의 공존 속에서 권력이 생성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가『군주론』에서 지도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김경희 교수(성신여대 교양학부)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나왔다.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역량" 개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공화주의』,『공존의 정치: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새로운 이해』, 역서로『군주론』(공역), 논문으로는『국가와 공공성: 마키아벨리의 stato론』,『독존에서 공존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해석에 대한 일고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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