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월 10일~20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55회 ‘베를리날레 Berlinale’에 잠시 들렸다. 눈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그 열기는 대단했다. 아침 9시에 시작하는 영화도 표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표를 구하려고 매표소 앞에서 침낭을 펴고 자는 젊은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베를린 영화제는 우리 영화와 인연이 적지 않다. 작년에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은곰상(감독상)을 받았고, 올해는 임권택 감독이 그간의 영화작업을 통해 ‘명예금곰상’을 받았다.
 베를린 영화제는 다른 영화제보다 정치적이며 사회 참여적이다. 이번 영화제에서도 역사를 다룬 작품이 많았다.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의 정치철학을 다룬 <철없는 미테랑>이나 아프리카 판 쉰들러 리스트인 <호텔 르완다>, 반 나치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소피 숄’을 다룬 <소피 숄 - 마지막 날>, 일본 천황 히로히토를 다룬 <태양> 등이 그런 작품이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소피 숄 - 마지막 날>이었다. 이 영화는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반 나치운동 단체였던 ‘흰 장미’의 단원으로 전후 나치정권 저항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소피 숄이 체포되고 처형되기 전 6일 간의 삶을 기록물과 증언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의미는 영화가 역사를 반성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쉰들러 리스트> 등과 같은 미국영화들이 독일의 나치과거사를 다루었다면, <소피 숄>은 독일영화 스스로 자신의 유쾌하지 못한 역사를 문제 삼는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작품 후보경선에 올랐던 <파멸>과 같은 작품도 유사한 경우이다. 히틀러의 최후를 개인적 관점에서 다룬 이 영화 역시 세간의 논란이 되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를 다루는 영화들과는 다른 스케일을 갖고 있다.

 독도 문제로 시끄럽다. 심심하면 문제를 삼는 일본뿐 아니라 어느 정신 나간 학자의 어처구니 없는 글까지. 정말로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때이다. 자신의 그릇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그래도 노력하는 독일과 파렴치하게 은폐하고 왜곡하는 일본이 확연하게 비교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져가는 나치의 역사를 지속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해 독일영화는 끊임없이 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 영화 중에 그런 영화가 있는 지 궁금하다. 그들이 반성할 줄 모른다면 우리가 나서서 그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영화도 그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이 상 복 (한국어문학부 교수)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