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왜 읽게 되었을까? 불쑥 이런 물음이 내 속에서 튀어나온다. 아마도 성(性)을 초월한 사랑이랄까, 약속이랄까 하는 것을 무의식중에 생각했던 건 아닐까.

 『거미여인의 키스』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비야 데보토라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두 죄수의 대화로 구성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발렌틴은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검거되어 수감된 정치범이며, 또 다른 한 명은 미성년자 보호법 위반으로 구속된 몰리나라는 동성애자이다.

 이 소설은 표면적으로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있다.
 

첫 째는, 서로 질시하던 정치범과 호모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급기야 호모가 정치범을 돕게 되는 이야기를 정한 이해와 관용은 그 어떤 제약도 넘어선다는 메시지이다.
 

둘 째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에로스적 의미에서의 사랑이라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알아챌 수 있는 또 다른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생은 감옥에 갇힌 것과 마찬가지의 고통과 반복의 삶이며, 그것을 이겨내는 것은 ‘환상’(소설 속에서 호모인 몰리나는 정치범인 발렌틴에게 거의 매순간 쉼 없이 영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도 주로 감상적인 톤으로)과 ‘사랑’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감옥 이미지에 사로잡힌 감상(感想)이라 해도 할 수 없지만 소설을 읽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성 묘사라곤 전혀 없으면서도 숨막히게 하는 묘한 성관계 장면을 두 번 그려낸다. 헉헉대는 소리도 나지 않고, 작가가 친절하게 날려주는 감미롭거나 에로틱한 문장도 하나 없고, 화려하게 포장한 감정표현 하나 드러나지 않는 대사의 연발 속에서, 이처럼 따스함이 느껴지는 성애를 읽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 묻게 된다.

 그리고 사랑과 슬픔을 목뼈 마디마디 뻑뻑 소리나게 느끼게 된다. 전혀 다른 행로를 걸어왔고, 전혀 다른 삶의 가치와 의미를 안고 있던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 됐는지를 마치 그 갇힌 공간에서 투명인간처럼 앉아 있다가 알게 된 듯하다.

 키스를 하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자의 이야기, 독일 장교를 사랑하는 프랑스 여배우 이야기, 시골처녀와 비극적인 오해로 죽게되는 청년의 이야기, 좀비가 살고있던 섬으로 시집을 갔던 여자이야기…. 무언가 결핍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사랑으로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던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들려주었던 영화들은 내게도 추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사랑이야기를 읽고 내가 울 수 있구나.

강 건 모 (한국어문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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