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두 가지 어려움
 『오뒷세이아』는『일리아스』와 더불어 기원전 8세기 경에 호메로스가 지었다는 서사시(이야기 시)이다. 이 두 작품은 서양 최초의 문학작품이다. 이렇게 맨 앞자리에 놓인 작품은 당연히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고, 후대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최초의 것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읽기에 매우 어렵다. 이유를 두 가지만 짚자면, 우선 쓸데없어 보이는 구절들, 특히 동일한 수식어들이 거듭거듭 나타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아킬레우스는 항상 발이 빠른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심지어 가만히 앉아 있는 아킬레우스를 묘사할 때도 발이 빠르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신들은 항상 행복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심지어 무서워 떨 때조차도 행복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문맥에 맞지 않는 구절이 자꾸 나오는 것은 애당초 이 시들이 문자로 창작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서사시들은 상당히 오랜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또 매 번 공연 때마다 즉흥적으로 짜 맞춰졌던 것이다. 그래서 공연자는 운율이 맞는 구절들을 외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거듭 사용하게 된다. 그러니 독자들은, 쓸데없이 반복되는 구절들이 나오면, 문자 없던 시대의 흔적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다른 어려움은 서사시들이 일반적으로 매우 길고 등장인물이 많고 사건이 복잡하다는 점이다. 이 어려움은 작품 구조를 이해하면 비교적 쉽게 넘어설 수 있다.『오뒷세이아』는 세 가지 주제, 즉 젊은이의 성장담, 뱃사람의 모험이야기, 그리고 집 떠난 이의 귀향을 함께 다루는데, 주제별로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전체 24권이 주제에 따라 4권-8권-12권으로 나뉜 것이다. 이제 그 세 부분을 따라가며 내용을 살펴보자. (이 작품은 부분에 따라 이야기 밀도가 다른데, 가장 밀도가 높은 중간 부분, 즉 오뒷세우스의 모험에 중점을 두고 요약해 보겠다.)
 
작품의 내용
 작품을 직접 대하는 사람은 약간 당황할 수도 있다. 대개 독자들은 이 작품이 오뒷세우스의 방랑과 귀향을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작품 앞부분에서 바다에서의 방랑과 모험을 만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 한참 펼쳐진다.
 그 첫 부분은 1권에서 4권에 이르는 이른바 '텔레마키아'란 부분이다. 이 부분은 이제 막 성인이 되려는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찾아 육지로 떠나서 아버지의 옛 동료들을 만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는 우선 네스토르를 찾아가 종교적 의례를 배우고, 이어 스파르타 메넬라오스의 궁정에서는 호화롭고 세련된 생활방식을 목격한다. 네스토르에게서는 사실적인 귀환의 보고를 듣고, 또 메넬라오스에게서는 기이한 바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여행을 통해 텔레마코스는 어른이 되고, 작품 후반에 아버지의 당당한 조력자로 곁에 선다.
 그 다음은 오뒷세우스의 방랑과 모험(5~12권)이다. 이 부분은 다시 둘로 나뉘어 전반부는 매우 사실적인 모험으로, 후반부는 아주 환상적인 모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간적 순서로는 환상적 모험이 먼저이니, 우선 그것을 보자(9~12권). 이 모험 이야기는 오뒷세우스가 자기를 맞아준 사람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1인칭을 취함으로써 생기는 이점들이 있는데, 그것은 지난 10년의 이야기를 며칠 사이의 이야기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시인이 직접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오뒷세우스 일행이 트로이아를 떠나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해적질이다. 이때 오뒷세우스는 그 지역의 제사장 집안을 특별히 보호해 주었는데, 그가 고맙다고 내어준 포도주가 나중에 외눈박이 괴물을 취하게 하여 주인공 일행을 구해준다.
 그 후 오뒷세우스 일행은 심한 폭풍을 만나 아흐레나 떠밀려간다. 이로써 그들은 환상계로 들어간 셈이다. 거기서 처음 겪는 모험은 로토스 먹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이 열매를 먹으면 집도 동료도 다 잊고 그냥 거기 계속 머물고 싶어 하게 되는데, 이것은 보통 무책임의 유혹으로 해석된다.
 그 다음은 폴뤼페모스 이야기다. 외눈박이 괴물의 동굴에 갇혀 그에게 여섯 명이나 잡아먹힌 끝에, 포도주에 취한 상대를 눈멀게 하고 도망친 이야기. 오뒷세이아가 여러 모험을 겪으면서 점차 성숙한 인간으로 변해간다고 본다면, 이 해석에 가장 잘 맞는 것이 바로 이 폴뤼페모스 사건이다. 이전에 오뒷세우스는 매우 호기심이 많고 무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그는 점차 조심성 있는 사람으로 변해 가고, 이런 '성장'은 적들로 가득한 자기 집에 돌아가서 그들을 처치하고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 다음으로 바람들의 왕 아이올로스와의 만남, 식인 거인들인 라이스트뤼고네스 인들과의 만남, 키르케와의 만남이 이어진다. 처음에 오뒷세우스의 부하들을 모두 돼지로 만들었던 키르케는, 오뒷세우스를 저승에 다녀오게 하고 앞으로 갈 길에 놓인 위험들을 가르쳐준다. 여기 자세히 그려진 저승 여행은 그 이후 거의 모든 서사시에 등장하는 요소가 되었다.
 키르케가 미리 가르쳐준 위험들로는, 노래로 사람들을 홀리는 세이렌들, 바닷가 절벽 동굴에서 튀어나와 여섯 개의 입으로 여섯 명을 동시에 물어가는 스퀼라, 하루에 세 번씩 물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무서운 소용돌이 칼륍소디스, 그리고 태양신의 섬 트리나키아가 있다. 다른 위험들은 모두 빠져나왔지만 마지막 섬에서 태양신의 소들을 잡아먹는 바람에 배가 파선되고 오뒷세우스를 제외한 전원이 희생된다. 홀로 남은 오뒷세우스는 부서진 배의 용골과 돛대를 묶어 타고 표류하다 칼륍소의 섬에 닿는다.
 『오뒷세이아』가 시작된 순간에 오뒷세우스는 이미 칠 년이나 칼륍소에게 잡혀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신들의 결정에 따라 칼륍소는 오뒷세우스를 놓아 보낸다. 그는 직접 엮은 뗏목을 타고 항해 끝에 스케리아 섬에 당도하고 나뭇잎 속에 묻혀 잠든다(5권). 그리고 바닷가로 빨래 나온 나우시카아와 오뒷세우스가 만나는 6권, 오뒷세우스가 나우시카아의 집에 닿아 접대를 받는 내용의 7, 8권이 이어진다. 이 네 권의 배경이 되는 섬은 환상계와 현실계를 이어주는 일종의 중간지대로서,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 때문에 어떤 학자는 이것이, 바다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실종된 자기 가족이 거기 살았으면 하고 원하는 '좋은 저승'이라고 보기도 한다.
 나우시카아와 결혼하여 이 낙원 같은 섬에 정착하라는 제안을 물리치고, 오뒷세우스가 고향 이타케 섬에 도착하는 데서 작품의 후반부(13~24권)가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는 이야기 진행이 상당히 느려서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이 부분이『일리아스』의 전투 장면들처럼 결말을 지연하는 장치로 쓰여서 그런 것이다. 이 후반부는 다시 내용상 1:2로 나뉘어 있는데, 앞부분(13~16권)은 늙은 거지꼴을 한 오뒷세우스가 충직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를 찾아가고 거기서, 여행에서 돌아온 아들을 만나는 내용이다. 뒷부분(17~24권)은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 기회를 노리다가 활쏘기 시합을 계기로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아내와 재결합하는 내용이다.
 
텔레마키아의 구조적 역할 
 내용을 살펴보았으니, 다시 구조로 돌아가자. 많은 독자에게 재미없어 보이는 '텔레마키아'는 사실 전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의 중심적인 두 주제, '모험과 복수'는 원래 서로 잘 붙지 않는 이질적인 것들이다. 바다에서 겪는 모험 이야기와 오랜 세월 뒤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 자기 지위를 회복하는 이야기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배경도 다르다. 바다에서의 모험은 사실상 현실의 세계가 아닌, 환상계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 둘을 묶어주는 게 텔레마키아의 기능 중 하나다. 텔레마코스 이야기는 모두 현실의 세계, 즉 그의 고향 섬과 그 건너편 육지를 배경으로 삼는다. 그래서 작품 전체의 사건배경은 차례로, '현실계-환상계-현실계'의 꼴이 되고, 달리 보자면 '고향-먼 바다-고향'이다. 중간에 나오는 바다에서의 기이한 모험을, 양쪽에 놓인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감싸서 전체가 일종의 샌드위치같이 하나가 된 것이다. 
 더구나 위에서 보았듯 텔레마키아의 세부는 '고향-모험'의 꼴을 하고 있다. 한데 그 뒤의 두 큰 부분이 바다에서의 모험과 고향에서의 복수이니, 전체를 이어서 보면 '고향-모험-모험-고향'의 꼴이 된다. 이런 배치도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데 기여한다.
 
모험과 복수의 의미 
 마지막으로 작품과 사건들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좋은 작품들은 내용, 형식, 의미 모두 심중하다.
 우선 가장 좁은 범위의 것으로, 개인의 성장. 이것은 특히 오뒷세우스의 모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는 위험과 유혹을 이기고 이전에 그저 가능성으로만 있었던 자질들을 완전히 계발해 낸다. 무모함과 자기과시욕을 벗어나, 인내와 과묵함, 신중함을 얻었고, 그것을 무기 삼아 자신의 지위를 회복한다.
 가장 넓은 범위의 것으로, 우주적 질서의 재생. 이것은 그가 자기 집을 괴롭히던 악당들을 처단하는 후반부에 두드러진다. 그 과정에서 소년(텔레마코스)은 어른이 되고, 늙은 왕(오뒷세우스의 아버지 라에르테스)은 젊음을 되찾고, 토지는 생산력을 회복하고, 무질서의 극한까지 갔던 사회는 다시 질서 있는 것이 된다. 이 회복은 양력과 음력이 다시 맞아 돌아가는 우주적 주기에 맞춰지고, 새 봄과 새해가 오는 것과 일치한다.
 그 중간 범위의 것으로, 전후 사회 재건을 위한 질서의 모색. 오뒷세우스는 여러 사회를 둘러보고 어느 것이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질서인지 탐색한다. 손님을 잡아먹는 괴물부터 낯선 이를 대접하고 호송하는 스케리아 인들까지. 이제 인간들은 개인의 운명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일리아스』를 지나, 시야를 넓혀 지중해 전반을 둘러보면서 타인들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지 숙고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시인은 그 모색의 과정을 민담의 여러 요소와 섞어 매혹적인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강대진 교수(정암학당 연구원, 홍익대 겸임교수)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 서울대학교 서양고전학 박사 
 <주요 저서>『잔혹한 책 읽기』,『신화와 영화』,『그리스 로마 서사시』,『옛사람의 세상 읽기 그리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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