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루스 베네딕트의 생애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 1887년~1948년)는 뉴욕의 침례교 집안에서 태어난 문화인류학자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녀는 베서 대학(Vassar College)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을 전전하면서 홈스테이를 하였고 이때부터 각 민족의 습관과 풍속의 차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귀국 후 어학교사와 시인으로 활동하던 베네딕트는 사회연구를 위한 뉴스쿨(신사회연구소)에서 인류학 강의를 접하고 난 후부터 문화인류학에 매료된다. 베네딕트는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현대 인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란츠 보아스(Franz Boas)를 사사한 그녀는 '아메리카인디언의 민화와 종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1923)하고, 모교인 컬럼비아 대학 인류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대표적 저서『문화의 유형 Patterns of Culture』(1934)은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 그리고 문화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으로 출간 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대주의'와 문화를 하나의 형(型)으로 이해하려는 '문화유형'이란 연구방법은『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을 저술하는 데 있어서도 기초가 된다.
 
 

   
 
 
 『국화와 칼』의 집필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1944년은 전세가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던 시점이다. 일본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시작되던 같은 해 6월 일본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던 미국 국무부는 '일본이 항복하였을 때'를 예측하고 성공적인 전후 처리를 위해 일본인과 일본 문화에 바탕한 일본인의 행동 패턴 보고서를 베네딕트에게 의뢰했다.
 당시 미국무부가 궁금해 한 내용은『국화와 칼』의 제1장「연구 과제 : 일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일본 국토를 침공하지 않고서 그들을 항복시킬 방법은 없을까? 우리는 천황의 거처를 폭격해야만 할까? (중략) 미국인들을 구출해내고,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우겠다는 일본인들의 결의를 약화시키려면 일본군과 일본 국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선전을 펼쳐야 할까? (중략) 러시아혁명이나 프랑스혁명처럼 세계 평화가 정착되려면 일본도 혁명이라는 순서를 거쳐야만 할까? 그렇다면 그 혁명의 지도자는 누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일본 국민을 아예 멸종시켜야 하는 것일까?(중략) 우리의 판단 여하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루스 베네딕트 지음·김승호 옮김, 2007,『국화와 칼』, 책 만드는 집)
 베네딕트는 보고서를 쓰기 전에 일본을 가본 적이 없었고, 또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갈 수도 없었다. 문화인류학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지조사가 불가능했던 것. 베네딕트는 재미 일본인 1세 이민자들과의 면담조사를 바탕으로 일본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수집하고, 일본 관련 도서·역사 영화·홍보 영화 등을 참고하여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전쟁이 끝난 이듬 해(1946) 단행본으로 출판되는데, 이 책이『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유형-』이다. 여기서 국화는 미(美)와 평화를 상징하며 이와 대조되는 칼은 무(武)와 전쟁을 상징한다.
 
 
 『국화와 칼』의 구성
 
 총1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제자리 찾기 : 일본의 계층질서에는 천황, 황실, 궁정 귀족, 무사, 농업인, 공인, 상인처럼 카스트 제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에도막부가 붕괴한 후에도 일본인의 생활 속에서 계급제도는 무너지지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고자 했던 일본인은 국제적 계층제도에 있어서도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서려고 하였으며, 실제로 정점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 과거와 세상에 빚진 사람 : '온(恩)'을 설명하기 위해 오블리게이션(obligation 의무), 로열티(loyalty 충성), 카인드니스(kindness 친절), 러브(love 사랑)와 같은 단어들을 인용하였다. 일본인은 평소에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타인 특히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온'을 받는 것을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베네딕트는 '온'을 금전채무와 같은 것으로 평생 짊어져야 할 빚 또는 무거운 짐으로 보고 '온'에 대해 극단적으로 민감한 일본인을 이해하고자 했다.
 ■ 만분의 일 은혜 갚기 : '온'을 변제한다는 것은 '덕'이며, 그 크기에 따라 '기리(의리)'와 '기무(의무)'로 구분된다. 시간적인 제한이 없고 어떤 노력으로도 전부 변제할 수 없는 '온'을 '기무(의무)'라 하며, 시간적인 제한이 있고 자신이 받은 만큼 갚으면 되는 '온'을 '기리(의리)'라고 한다.
 천황에 대한 '충', 부모에 대한 '효'는 무조건적인 것이며, 보상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분의 일의 은혜를 갚는 것도 어렵다. 즉 천황과 부모로부터 받은 '온'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기 때문에 평생 갚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충'과 '효'는 대표적인 기무이다. 
 ■ 기리만큼 괴로운 것은 없다 : '기리'는 받은 '온'에 대한 답례(세상에 대한 '기리')부터 심지어 자기 명예를 위한 복수(이름에 대한 '기리')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사회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세상에 대한 '기리'는 무사의 덕으로 여러 문학작품에서 칭송되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리'는 '충'보다 소중하다고 여겼다. '기리'를 갚을 때는 빌린 돈을 상환하는 것처럼 정확히 같아야 하기에 더 많이 갚으면 상대방에 대한 실례다. 그들은 다만 갚는 시기가 늦어지면 갚아야할 부채도 늘어난다고 보았다.   
 ■ 오명 씻기 : 이름에 대한 '기리'는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게 하는 의무이다. 명예에 대한 오점을 제거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복수하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충성을 맹세한 상대라 할지라도 자신의 명예에 상처를 주었을 때는 복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금욕주의적인 자기 절제, 신분에 맞는 생활과 예의범절, 계약에 따른 충실한 행동 등이 '오명 씻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패전 후의 일본은 미국 점령군에게 180도 방향 전환해 순한 양처럼 순종했다. '기리'는 침략과 순종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침략으로 명예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일본은 순종을 선택함으로써 '기리'를 지키려 한다. 일본인에게 복수와 감사는 모두 갚아야 할 '기리'이기 때문이다. 
 ■ 덕의 딜레마 : 일본인의 인생관은 인간의 의무 전체를 지도상에 나누어진 여러 지역처럼 '충의 세계', '효의 세계', '의리의 세계', '인의 세계', '인정의 세계' 등으로 명확히 구분된다. 예를 들어 동일 인물이라도 '충의 세계'에서의 행동과 '의리의 세계'에서의 행동이 전혀 다르다. 각 세계가 저마다 독특한 법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스스로 타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말이나 행동을 중시하며, 이를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중(自重)'을 배운다. 그들은 내면적인 죄의 중대성보다 외면적인 수치의 중대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서양인의 행동양식이 내적인 양심을 의식한 '죄의 문화'라고 한다면, 일본인의 행동양식은 외적인 비판을 의식하는 '수치의 문화'로 정의할 수 있다.
 
 
  일본문화를 존중한『국화와 칼』

 『국화와 칼』은 일본을 문화인류학적으로 파헤친 미국 최초의 일본인론이며, 전후 미국의 대일본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문화인류학 연구방법에 있어서 현지조사 없이도 탐구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물론 이 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화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현지조사가 없었고, 정치적·군사적 목적으로 집필되다 보니 학술적인 부분이 결여된 측면이 있다. 서양과 일본문화를 너무 극단적 위치에 놓고 비교 설명한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심지어는 일본인을 보는 시선이 비과학적이며, 미개민족을 보는 것 같다는 비판도 있다. 이러한 이유에선지 베네딕트는 제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찌 되었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을 거의 알지 못했던 인류학자가 펴낸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심지어 출판 2년 후에는 일본에서 번역본이 출판되었다. 출간 후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 이 책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베네딕트는 일관성 없는 일본인·일본 문화의 이중성을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날카롭게 분석한 점일 것이다. 그녀는 극단적 형태의 모순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 있으며, 그 자체가 바로 일본 민족성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문화상대주의 개념으로 서양과 일본문화를 서열화하지 않고, 고유의 독자성과 가치를 인정해 분석했기 때문이리라. 달리 표현하자면 베네딕트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문화를 존경하지는 않았지만 존중하였기에 이러한 명저를 펴낼 수 있었다. 
 『국화와 칼』은 지금도 일본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읽히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가받을 고전이다. 베네딕트가 순수한 학술적 목적으로 일본 현지조사를 통해『국화와 칼』을 저술했다면 어떠한 내용을 담았을까? 하는 궁금증과 아쉬움이 남는다.
 
  이다운 교수(역사교육과)

<필자 소개>
원광대학교 사학과 (학사)
구주대학 문학연구 사학 (석사)
구주대학 문학부 사학 (박사)
대표 저서 :『일본사 -원시·고대·중세·근세편-』
공저 :『백제는 하이테크 국가였다』,『백제의 발자취를 찾아서 -일본편-』
대표 논문 :「百濟五部名刻印瓦について」,「百濟瓦博士考」,「'大寺'창건과 百濟·倭의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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