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남북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룬, 4.19 직후의 정신적 건강함과 자유스러움이 낳은 기념비적인 작품"(김현), "문학적 발상법에서 중요한 전기를 이룬 작품"(이재선)이라는 평가를 받아온『광장』은 남북한의 정치 상황을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이자 전후문학시대를 마감하고 1960년대 문학의 지평을 연 작품이다.
 『광장』은 1960년 11월 잡지《새벽》에 처음 발표됐다. 발표 당시 분량은 600매 정도였는데, 1961년 단행본으로 간행되면서 800매 정도로 늘었다. 그 후 대략 일곱 차례에 걸친 개작을 걸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념을 달리하는 남쪽과 북쪽을 동시에 비판하고 제3의 길을 찾아 나선 지식청년의 고뇌와 비극을 그린『광장』이라는 '문학사적 사건'의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작가 최인훈이 이 작품을 처음 발표하면서 피력했듯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이라는 역사적 환경 덕분이었다. '저 빛나는 4월'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독재의 사슬을 끊고 자유로운 공화국을 열망했던 4.19혁명을 가리킨다. 군홧발에 짓밟히기 전, 혁명과 함께 찾아온 자유는 그야말로 섬광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섬광이 아직 사라지기 전,『광장』은 바로 그 섬광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광장』은 작가 개인의 애정을 뛰어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상호 적대적인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채 증오를 존재의 근거로 삼고 있는 남북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주변 강대국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반도의 입장을 생각하면, 광장』에서 이명준이 남쪽과 북쪽을 향해 던졌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광장』은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배경으로 남쪽과 북쪽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철학도 이명준의 '사유의 행로'를 그린 소설이다.『광장』의 서사는 포로 수용소에서 제3국을 선택한 석방자들을 태운 타고르호의 항적(航跡)을 따라 전개된다.
  석방자 중 한 사람인 이명준은 타고르호를 따라오는 두 마리의 갈매기를 매개로 상념을 이어나간다. 먼저 철학과 3학년생 이명준이 남쪽에서 겪은 정치적 상황과 윤애와의 사랑이 그려진다. 이명준은 남쪽을 "백귀야행하는 난장판",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라며 비판한다. 월북한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출연하면서 이명준은 S서에서 취조를 당한다. 불안에 시달리던 이명준은 윤애에게 집착하지만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우연히' 밀항선을 타고 월북한다.
  이어서 월북한 후 이명준이 겪은 북쪽의 상황과 은혜와의 사랑이 그려진다. 이명준은 북쪽을 "평범이라는 이름의 진구렁", "혁명과 인민의 탈을 쓴 여전한 부르주아 사회"라며 비판한다.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가 빌미가 돼 이명준은 자아비판을 강요받는다. 북쪽의 정치적 상황에 실망한 이명준은 은혜를 깊이 사랑하지만 그녀가 모스크바로 떠나면서 절망한다.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인민군으로 종군한 이명준은 '동굴'에서 은혜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포로수용소에서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코뮤니즘)와 기독교의 상동성을 고민하기도 한다. 판문점에서 진행된 포로 교환 심사에서 중립국을 선택한 이명준은 인도로 가는 타고르호에 오른다.
  한때 좌익에 몸을 담았던 아버지가 월북한 후 어머니마저 잃고 아버지의 친구 변성제의 집에 얹혀사는 이명준은 사실상 고아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사실상의 고아' 이명준이 남과 북 어느 곳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중립국 인도로 향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밀실과 광장이 맞뚫린' 세상을 소망했던 그가 좌절한 것은 왜일까. '타고르호'를 따르던 두 마리 갈매기를 은혜와 아이로 착각하고 푸른 바다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 그를 지금 여기의 우리는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

 

  이명준의 눈에 비친 남쪽 사회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가득한 곳이다. 밀수입과 암거래가 횡횡하는 데다 깡패들과 결탁한 '어두운 보스들'이 지배하는 남쪽 사회는 한마디로 '추악한 밤의 광장'이자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이며,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텅 비어버리는 광장이다. 강대국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느라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광장을 꾸릴 능력을 아예 상실해버린 남쪽 사회에 대한 이명준의 환멸은 끝을 모를 만큼 깊다. 광장을 사회적 정치적 삶이 영위되는 공간으로 이해한다면, 남쪽의 광장은 구성원들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의 소통마저 봉쇄당한 채 죽음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워진 곳이다. 소통이 불가능한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과 약탈과 사기만 판치는 광장은 이미 광장이 아니다.
  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났다고는 하나 독립국으로서 주권을 온전히 확보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불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명준(또는 작가 최인훈)의 판단인 듯한데,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과거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준이 아버지가 대남방송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S서에서 취조를 받을 때, 형사 중 한 사람이 식민지 시대의 화려한 이력을 자랑스럽게 털어놓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빨갱이'를 잡는 일에 관한 한 '지금이나 일본 시절이나'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는 형사를 보면서 아연실색한 사람이 어찌 이명준뿐일까. 식민지 시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이 자유롭고 비판적인 광장을 어찌 용인할 수 있겠는가.
  이명준은 남쪽 사회에 대한 환멸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한다. 그의 밀항이 우연히 이루어지긴 했으나 적어도 그곳은 남쪽 사회보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북으로 가는 배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동경 또는 기대는 다시 철저하게 배반당한다. 북쪽 사회는 우상이 판치는 '꼭두각시 공화국'이었다. '당'만이 흥분하고 도취하는 사회, 인민들은 복창만 하는 사회, 레닌과 스탈린의 말을 아무런 느낌이나 생각도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사회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던 것이다. 인민을 양떼로 간주하는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른 개들"이나 다름없다.
  '혁명다운 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이런 사회에 온전한 광장이 조성돼 있을 리 만무하다. 이름은 주인이라지만 소처럼 끌려다니는 인민들이 광장에 모여 할 수 있는 일이란 꼭두각시 노름뿐이다. 그 어떤 비판도 허용되지 않고 개인적인 욕망은 터부시된다. 당 의 명령에 따르는 장승 들만 넘쳐날 뿐 사람다운 사람은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이었던 것이다. 노동신문사 기자 자격으로 이명준이 작성한 기사를 빌미로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개인적 의견은 여지없이 묵살당하고 맹종만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명준의 환멸은 더욱 깊어진다.

  이 숨막히는 폐쇄회로를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밀실과 광장, 다시 말해 개인적 실존적 삶과 사회적 정치적 삶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가 불가능하다면 어찌해야 할 것인가.『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선택한 것은 사랑이었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광장'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면서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곳, 바로 '동굴'이었다. 이 동굴에서야 자신은 '실존의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사랑만이 남은 동굴에서 바라보면 이념들도, 그 이념들이 폭력적으로 부딪히는 전쟁터마저도 한갓 '풍경'일 따름이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없었던 사실상의 고아 이명준은 은혜를 통해 여성=어머니를 발견하고 바다='푸른 광장'의 심연으로 향한다.
  이 지점, 그러니까 이명준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장면을 시적으로 표현한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야 타고르호를 따라오던 두 마리 갈매기의 의미도, 죽음으로써만 '유토피아의 꿈' 또는 자유에 다가설 수 있었던 그의 고뇌의 결론도 분명해진다. 어미 갈매기와 새끼 갈매기, 그것은 그를 떠난 사랑이자 사랑의 열매였다. 그것 없이는 '삶다운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비통한 깨달음이 이 소설의 결말인 셈이다.
  물론 사랑에 관한 이명준의 상념을 두고 현실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대결을 펼치지 못한 나약한 지식인의 관념적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가 선택한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불구적 근대성'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면, 그리고 감시와 사찰, 증오와 분노, 조작과 왜곡이 전면화하고 있는 한반도의 상황을 직시한다면, 우리가 '이명준의 시대'에서 그리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는 비판 역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인훈은 1973년판『광장』서문에서 "그(이명준)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라고 썼다. 우리 사회는 개인의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따뜻한 밀실과 개인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뜨거운 광장을 찾는 데 실패하고 환멸만 간직한 채 방황해야 했던 이명준이라는 청춘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할 실마리마저 찾지 못하고 있다. 그가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린 지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심해에 갇힌 이명준을 끌어올려 '그의 입으로 바다 밑의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밀실과 광장이 맞뚫린' 세상이 찾아온 후에야, 비로소 그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이다.

정선태 교수(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주요 저서 :『심연을 탐사하는 고래의 눈』,『근대의 어둠을 응시하는 고양이의 시선』,『한국 근대문학의 수렴과 발산』
주요 역서 :『동양적 근대의 창출 : 뤼신과 소세키』,『일본문학의 근대와 반근대』,『가네코 후미코 :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일본 제국의 아나키스트』,『일본어의 근대: 근대 국민국가와 국어 의 발견』,『지도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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