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1학기부터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역사가와 (    ?    )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 이 말은 오늘 소개할 고전인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를 요약한 중심 내용으로 많은 사람의 귀에 익은 유명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도 뜻을 아는 듯이 인용할 수 있고, 책을 읽은 사람이라고 그 의미를 더 알 것 같지 않은 그냥 모호한 유명 구절이 된 듯하다.
 역사가 '대화'라면 대화 상대가 누구인가를 물어야 하고, 또한 대화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첫째, 역사는 누구와 누구의 대화인가? 우선 누구와 누구의 대화라고 할 때 두 대화 상대자를 연결하는 '와'라는 접속 조사를 살펴보자. '와/과'는 대등한 두 대상을 연결한다. 문학과 음악, 국문학과 영문학, 이렇게 연결하지 문학과 대위법, 국문학과 셰익스피어,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라고 했다. '현재'와 '과거'는 대등한 대상으로서 '와'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운 대화 상대다. 더 풀이하면 역사는 '현재 역사가'와 '과거 사실'의 대화다. '현재'와 '과거'가 대등한 대화자이듯 '역사가'와 '사실'도 '와'로 연결할 수 있는 자연스런 대화 상대자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번역본들은 1장의 제목에서 네 종류로 나뉜다. 대부분이 '역사가와 사실'로, 그리고 아주 적게 '역사가와 그의 사실',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로 번역되었다. 이 가운데 누구'와' 누구의 대화에 가장 자연스럽고 합당한 것이 무엇일까? 접속 조사 '와'로 연결할 수 있는 대등한 대상은 '역사가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여러 종류의 번역이 나왔을까? 그것은 카가 약간은 상식 밖으로 대등하지 않은 것을 '와'로 연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저 1장 제목은 'The Historian and his Facts'다. 직역하면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이다. 복수와 단수를 혼용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역사가와 그의 사실'도 같은 의미다. 1장의 제목은 '역사가와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이다. 그러나 대화 상대자로서 이상한 조합으로 보이므로 거의 모든 번역본이 오역을 택한 것이다. '역사가와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와 그의 사실'이 대화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장에서 가장 중요한 첫 문제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이 아니라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이의 대화라는 사실이다. 왜 '그의'가 들어갔는지를 아는 것이『역사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첫 열쇠가 된다.
 

   현재와 과거의 대화
 
 왜 '그의 사실'인지 말하기 전에 두 번째 질문이었던 대화란 무엇인가, 즉 대화의 내용과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대화란 둘 이상의 상대자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것은 한쪽만 말하고 다른 한쪽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각각 말만 하는 것도 아니다. 서로 한 차례씩 의견발표를 하는 것은 일방적인 선언이지 대화가 아니다. 대화는 서로 말하고 듣고 교감하면서 영향을 서로 주고받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다.
 19세기 근대역사학의 창시자인 랑케는 역사를 '과거가 현재에게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감동을 주고 교훈을 얻도록 수사학적 기술이 더 중요했던 전통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학문으로서 역사학을 정립하기 위해 그는 역사가의 임무가 '실제로 어떠했는지'(wie es eigentlich gewesen)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현재(역사가의 해석)가 개입되지 않은 과거(사실)가 객관적이다. 역사가는 과거가 말하는 것을 듣는 자이지 말하는 자가 아니다. (과거)사실은 스스로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반발로, 20세기 전반기의 콜링우드는 모든 역사가 사유(해석)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역사가에 의해 경험되고 선택·해석되고 재구성되는 역사다. 역사의 사실들은 처음부터 주관적으로 기록되므로, 역사란 하나의 해석인 사실(기록)을 역사가가 자신의 해석으로 재현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은 과거(사실)가 아니라 현재(역사가)다.
 19세기의 사실 숭배와 20세기 전반기의 현재주의는 모두 일방적인 말하기(선언)일 뿐이지 대화가 아니다. 카는 이와 달리 역사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대화, 즉 서로 말하고 듣는 과정으로 본다. 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끊임없는 대화다. 그것은 잠정성을 전제할 때 가능하다. 계속 말하고 들으면서 구체화되고 교정되고 변화될 수 있도록 과거 사실도 현재 역사가도 이미 확정되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 역사가는 과거 사실에 대해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해석으로 무엇을 연구할지 사실들을 잠정적으로 선택하며, 잠정적으로 선택된 사실에 의해 기존의 해석이 다시 잠정적으로 (재)해석된다. 역사가와 사실은 이렇게 지속적으로, 즉 잠정적인 선택과 해석을 통해 상호작용을 한다. 말하고 들으면서 변화될 수 있음을 전제한 지속적인 이야기가 대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화의 시작과 주도가 역사가(현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과거)은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가 허락할 때에만 이야기한다. 결국 역사가는 자신이 선택한 사실과 대화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역사가와 사실'이 아니라─ '간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의 대화
 
 "역사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카의 인용은 대개 여기서 멈춘다.『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지 않은 사람은 카가 그 다음에 무슨 말을 더 했는지 모르기 때문이요, 책을 읽고도 이 명구만 되풀이하는 사람은 2장 이후의 의미를 간과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만큼이나 중요한 내용이 2장에서 역시 결론으로 언급된다. '역사는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의 대화다'라는 문구다. 여기서는 대화의 주체가 '현재와 과거'로부터 '현재 사회와 과거 사회'로 구체화된다. 그것은 대화가 역사가가 속한 현재 사회와 사실을 낳은 과거 사회 사이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카는 개인과 사회를 분리할 수 없고, 아무리 위대한 개인(위인)이라도 역사 안에 있으며 '역사가'도 '사실'도 그 당시의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모든 개인은 시대와 사회라는 큰 틀 속의 일원이다. 역사가가 살고 있는 현재 사회가 위치한 지점이 과거에 대한 시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현재 사회의 문제에 대한 통찰이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시야를 조명한다. 역사가는 그가 속한 사회를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이다. 마찬가지로 역사가가 연구할 과거 사실도 과거 사회의 산물이다. 모든 개인이 그 사회의 산물이므로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실들 역시 그 사회의 제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역사가는 다수의 문제가 된 사실, 사회적 힘의 작용에 의한 사실을 선택한다. 그러므로 '현재와 과거의 대화'인 역사란 '현재'를 낳은 '현재 사회'와 '과거' 사실을 낳은 '과거 사회' 사이의 대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대화
 
 카는『역사란 무엇인가』의 세 장에서 역사를 세 차원의 '대화'로 설명하고 있다. 앞의 두 '대화'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것은 곧 시간적 전후 사이의 인과관계를 논하는 것이다. 앞의 사실이 어떤 원인이 되어 뒤의 사실에 어떤 결과를 남겼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가의 주요 임무다.
 인과관계란 합리적인 전후 관계의 설명을 말한다. 그러므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원인과 비합리적이며 우연한 원인을 가려내야 한다. 합리적인 원인이란 다른 나라와 시기와 조건에서도 적용 가능하여 교훈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연한 원인은 그러한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바로 역사에서 미래의 의미와 연결된다. 즉 미래(의 목적)가 과거해석의 열쇠를 제공한다. 과거가 미래를 밝혀주고(과거의 연구에서 미래의 목적을 발견한다.) 미래가 과거를 밝혀준다.(미래의 목적으로 과거의 인과관계가 규명된다.)
 그리하여 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던 것을 '역사란 과거의 사건들과 서서히 등장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들 사이의 대화'로 보강한다. 새로운 목표들이 서서히 출현함에 따라 과거에 대한 해석이 발전하는 것이다.
 
 
   E. H. 카와 그의 사회
 
 카는 "역사책을 읽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역사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낳은 사회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지침은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카가 누구인지, 카를 낳은 사회가 어떠한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카는 1892년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82년까지 거의 한 세기를 살았다. 그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한 뒤 외교관과 학자로서 러시아혁명, 제1·2차 세계대전, 냉전을 직접, 그리고 가까이서 경험한 현대사가다. 그는 19세기 역사학의 전통에 따라 객관적인 역사연구를 위해 시간적으로 먼 거리가 보장된 옛날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가 살고 있는 당대, 즉 현재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가다. 그것은 주관성이라는 부담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주관성을 전제하고 당대의 역사에 해석을 가하려는 시도였으며, 곧 역사 참여였다. 그는 1916년부터 일하기 시작한 외무부의 관리로서 1917년 러시아혁명을 알았고, 특히 1925년에 라트비아의 리가 주재 영국 공사관에 근무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했다. 러시아혁명과 그 이후의 내전과 스탈린체제, 그리고 2차대전 이후의 소련은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게 냉전기에 공적으로 확정된 적대적 대척점이었으며 이러한 자세는 모든 분야의 학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동서의 대립으로 주관성이 첨예한 20세기 현대의 한복판에서 카는 오히려 자신의 주관성으로 주류의 주관에 도전했다고 할 수 있다.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의 중요성은 무엇보다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준 영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현재'를 강조했고, 저자는 러시아 및 소련사를 연구한 자였다. 그것은 권력에 의해 금서로 탄압되기에 충분한 빌미가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이념적 의미를 떠나서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들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일깨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은 이 책이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출간되고 번역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입증하고 있는 바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시대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대두가 카를 극복해야 할 근대성의 일부로 보게 하고 있고, 그의 근대적 진보관이 보다 다원적이고 개인적인 탈근대 시대에 시의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과는 별도로 그러하다.
 
 
  이병철 교수(연세대학교)
<필자 소개>
연세대학교 독문학과 학사, 동 대학원 서양사 석사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독일현대사 박사
대표 역서 :『역사학의 거장들』
대표 논문 :『주거 문명화의 사회사』,『독일 68세대의 학생문화』,『중부유럽에서 영토와 정체성의 문제』,『독일 제3제국과 기독교의 저항』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