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에서 매번 시사적인 문제만 이야기해왔지만, 이번엔 사회문제를 벗어나 내가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1 살바로드 달리의 '기억의 지속'. 중학교 때 우연히 봤던 작품으로,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주는 원동력이 됐다. 그래서 이 작품을 사랑할 정도로 좋아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취미로 했던 만큼 그림과는 절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신문사에 들어온 후 여가를 누릴 시간은 없었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그림 그리는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초현실적 세계를 표현한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이 깊이 뇌리에 박혀 몇 달 전 이젤, 캔버스 등을 구입해 미술 준비를 했으나 결국 방치하고 말았다. 신문사 생활 막바지, 그림은 그릴 수 없지만 대신 '기억의 지속(신문사 처음 생활을 생각하며)'을 글로 표현해 봤다.
   #2 밤을 지워가며. 나는 글을 빨리 쓰는 체질이 아니다.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한 단어를 쓰더라도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편이다. 글 쓰는 방식이 달랐던 탓에 시간에 쫓기는 신문사 생활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또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에게 말을 걸기 어려울 정도로, 유화적이지도 않았다. 몇 달 뒤 신문사 생활은 위기를 맞았다.
   지금의 내 모습은 작품에 등장하는 고혹한 환경, 흐물거리는 시계와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서 힘든 순간을 극복해보고 싶었다. 밤을 새가며 스스로 기사 작성 공부를 했고, 매일 30여 개의 기사를 읽어봤다. 여기서 주저 않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여느 날처럼 '밤을 지워가던' 때 양수호라는 동료 기자가 늦은 시간에 신문사를 찾아왔다. 그때가 기회가 돼서 그 일 이후로, 밤마다 신문사에서 서로에 대한 고민, 관심사 등을 이야기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보지 못 했던 부족한 점을 고칠 수 있었고, 배울 점이 많은 친구기 때문에 좋은 점도 배워가곤 했다. 또 밖에 나가 놀다 오거나 바람을 쐬기도 했는데 스트레스나 긴장을 풀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한동안 혼자 끙끙 앓던 위기의 신문사 생활을 신문사 동료 기자 덕분에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즐거운 기억이다.
   #3 '피카소 작품의 해석이 다르듯이'. <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시계는 과거 자신(살바도르 달리)이 억눌렸던 욕망을 표현한 것으로, 그의 가족사와 성적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을 본 나는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생각했다. 사람마다 각자의 세계관과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보고 느끼는 것도 다르다. 글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써도 사람마다 해석하는 데 차이를 보인다. 신문사 생활에 안착했을 시기, 학교와 관련된 문제점 보도를 쓰게 됐다. 이것이 고쳐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던 글은 '피카소 작품의 해석이 다르듯이'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해석되기도 했다. 나는 우리대학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제점은 고쳐졌으면 한다. 그러나 그렇게 썼던 글이 교육부나 다른 관리자에게 보였을 때 그 대상은 큰 곤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 대상을 비판하는 것은 그 대상에 어느 정도 애착과 동시에 아쉬움이 있기에 글을 쓴 것인데, 내 글이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것이다.
   #4 신문사를 떠나며. 평소 비판적인 글을 즐겨 써왔기 때문에 내심 신문사 생활에 기대가 많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육부 장관에 바란다'에 현 교육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올린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이런 행동이 언젠가 불이익이 될 것이다'고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런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기자 생활 2년 반을 돌아보니 시원섭섭하다. 비록 대학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다루지 못해 아쉽지만, 앞으로 내가 밖으로 나갈 세상은 더 넓고 자유로울 거란 걸. 나를 한층 더 성장시킨 신문사 생활을 오래 간직할 것이다. <기억의 지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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