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란 그에 의해 각자가 자기의 것을 취하며, 법이 정하는 바대로 하는 미덕"이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명언 같아 보이는 이 말은 커다란 맹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그'가 무엇인지 확실히 적혀있지 않다. 그리고 '법의 절대적 강제성'만을 강조하며 '법이 공정한지'에 대해 평가해야 함은 들어있지 않다. 우리가 '권선징악'과 비슷하게 생각했던 '정의'와는 확연히 다름이 느껴진다.
 롤즈에 이르러서야 '정의'가 우리가 아는 개념과 비슷해진다. 롤즈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정의란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표현이다. 어느 정도의 자유와 어느 정도의 평등이 있어야 '정의'가 된다는 것일까? 마치 난센스 퀴즈와 같은 '정의' 개념은 여전히 인간 사회의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정의'에 대한 논란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당방위의 범위이다. 정당방위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로 정의된다. 또한 형법 21조에서 '정당방위'는 처벌하지 않기로 명시돼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긴 것은 정당방위 자체가 아닌 그 범위의 문제다.
 올해 6월에 한 남성이 만취해 흉기로 자신의 전 부인을 해하려 한 사건이 있었다. 그의 전 부인이었던 44세 조 모씨는 그가 난동을 부리다 바닥에 엎질러진 술을 밟고 쓰러진 틈을 타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리고 조 모씨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모씨는 "전 남편 문 씨의 반복되는 폭력과 살해 협박으로부터 자신과 자녀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며 "전 남편으로부터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당해 우울증을 앓아 처벌 시 참작 사유인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에서도 대법원은 '심신미약'만을 인정했으며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문 씨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침해 행위는 일단락돼 적어도 그 단계에서는 정당방위의 요건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한 20대 청년이 자신의 집에 침입한 강도의 머리를 알루미늄제 빨래 건조대로 내리쳐 뇌사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강도는 9개월 후에 사망했으며 이때에도 이 청년은 '상해치사'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빨래 건조대를 '흉기'로 취급했던 것이다. 당시 박민식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법이 도대체 누구 편인지를 말하고 싶다. 이 빨래 건조대를 검찰과 법원에서 위험한 물건, 즉 흉기로 의율해 실형을 선고했다"며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발생하자 약자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방위'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도된 것이 아닌 방어 행동이었다면 어떨까. 특히나 먼저 자신에게 살의를 드러내는 사람을 우리는 신사적으로 대할 수 있는가.
 우리의 '정당방위'는 그러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심지어 형법에서 '정당방위'는 자신의 도발에 의해서 발생하면 안 되며, 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은 안 되고, 자신보다 가해자가 더 큰 상해를 입거나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어도 안 된다. 또한 오로지 방어행위에만 국한돼야 한다. 즉, 가해자가 폭력을 멈추면 자신도 폭력을 멈춰야 한다. 이 정도 되면 거의 '경찰 도착할 때까지 평화롭게 있으세요'로 들릴 정도다.

 '정의'가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행법이기에 '정의'를 위해 만들어진 우리의 '법'은 아직 미숙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손익,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에 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조정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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