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존재에게 근본(根本)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고, 필요한 것이며, 중요한 것이다. 참된 근본은 굳이 근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모든 존재가 근본을 토대로 삶을 영위하여 간다. 풍수지리 용어인 회룡고조(回龍顧祖)라는 말의 의미는 산의 지맥이 뻗어 내려오다가 본산을 돌아다보는 형국, 즉 그 근본을 잊지 아니하고 돌아다보므로 그 지기(地氣)가 매우 좋은 곳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우주 만유 및 모든 유정물 그리고 인류와 각 단체는 근본을 중요시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자기 근본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이 말은 너무나 지당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말 어디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없으나, 이 근본의 가치가 이데올로기화되어 근본주의(根本主義)가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근본주의란 본래 18세기의 근대주의적 경향에 반대하면서 19세기 후반에 생겨나기 시작하여, 20세기 초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비교적 새로운 시대사조를 말한다.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기독교의 용어이지만 종교학적으로 볼 때, 모든 종교에는 근본주의가 태동될 수 있으며, 모든 조직과 단체 내에서도 근본주의가 발동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근본이 근본주의가 되는 과정은 자기만의 절대적인 도그마를 앞세우며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불관용과 배타적인 독선 표방에서 시작된다. 더욱이 근본주의는 자신을 절대적 진리·정의·선(善)으로 간주하고, 적대적 타자를 절대적 거짓·불의·악(惡)으로 규정하여 억압하고 제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선악 이분법적 믿음을 더욱 강하게 키워 간다. 이런 믿음이 강해져 근본이 근본주의가 되는 순간, 한 개인과 단체의 생각과 사상을 지배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부류끼리 세력을 형성하며, 마침내는 상대편을 증오하게 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된다.
 모든 조직과 단체 내에는 보수파와 진보파가 존재한다. 보수파는 나름의 가치로 조직과 단체의 이념을 지키고 실현하고자 하며, 진보파는 조직이 나가야 할 이상적 방향에 대한 지적을 통해서 조직의 건실한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나 각각의 영역에서 근본주의가 싹이 트면, 특정한 가치를 도그마 속에 경색시켜 그것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통로를 막으면서, 스스로 외부와의 소통을 끊고 고립의 길을 가게 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근본주의로 흐를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본다.
 첫째, 모든 선입견이나 상(相)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머물지(住)도 않아야 한다. 그래야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주어져 있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그것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불교 선가(禪家)의 가르침이 내 앞에 놓여있는 그 어떠한 전제도 타파하고 무전제에서 출발하라는 말씀이다.
 둘째, 근본의 근본주의가 되지 않으려면, 근본의 근본인 본래적 근원을 추구하고 염원하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 근원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염원하기 위해서 임의적으로 설정해놓은 상징과 말씀에 매몰되지 않고, 항상 그것을 통해서 본래 근원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셋째, 근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타자의 생각에 대하여 열려있고, 근본에 대하여 열려있고, 진리에 대한 인식에 열려있는 '열린 근본주의'가 요청된다. 근본에 대한 절대성을 부여하여 의문을 제거하면 근본주의가 되고, 근본에 대하여 상대성을 부여하면 상대주의의 역설에 빠져 회의주의 혹은 허무주의에 빠져 버릴 수가 있다.

 근본은 아름답지만, 근본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김도공 교수(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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