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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미워도 다시 한 번, 정의
박서영 부편집장  |  hisyiya@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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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1.18  20: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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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봤던 날을 생각하면 주머니에 손을 넣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날 새벽의 한기와 패딩 점퍼와 담요와 코코아와 히터와 보온도시락은 모두 추위와 한 몸이었다. 국어 시간 때만 해도 극심한 긴장감 때문에 손을 덜덜 떨며 마킹을 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고서는 히터 온기에 속아 그만 나른해지고 말았다. 친구와 버스를 타고 돌아와서는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사 먹었다. 컵라면은 뜨겁다기보단 따뜻했다. 친구와 헤어진 뒤 거리에 늘어진 가로등을 보았을 때는 그 빛이 추워서 놀랐다. 쓸쓸하고 허무한 마음 뒤편에는 초·중·고등학교 12년이 서 있었다.
 올해 수능 날에는 예전보다 더 선명한 한기를 느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정유라의 성적 특혜에 관해 '교육 농단'이라고 명명하고 졸업 취소를 심각하게 검토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다음 날이었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구정물처럼 썩었다. '빽'도 '권력'도 없는 일반 학생들은 이 구정물 안에서 12년 동안이나 필사적으로 수영한다. 살기 위해서다. 저 앞에는 로비, 압력, 폭언 따위의 오물을 뿌리는 배가 있다.
 초등학교 바른 생활 시간에도 나온다.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땐 횡단보도를 건너지 마세요.' 알고 있으면서 건너는 사람, 물론 많다. 초록 불이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도, 누군가 한 명이 무단횡단을 하면 다들 군중심리로 합일돼 우르르 건너가기도 한다. 내가 본 무단횡단의 절반 이상은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였다. 그들이 건너가는 동안, 나는 무슨 오기가 생겨서 초록불이 될 때까지 가만히 버티고 서 있곤 했다. 이것은 그들과 나의 도덕성 차이가 아니라 삶의 두께 차이일 뿐이다. 그들이 만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정의롭게 사는 사람이 매장당하는 구조로 진행돼왔다. 신호를 지키는 것에 냉소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아직은 규율을 지키는 게 훨씬 익숙한 세대─그래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수동적으로 움직여온 사람 중 하나다.
 나와 같은 선상에서 달렸던 아이들이 떠났다.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가만히 있었고, 죽었다. 침몰한 배는 다시 뜨지 않았고 납작하게 구겨진 정의도 다시 펴지지 않았다. 이런 정국에 일명 윗분들은 최저시급은커녕 담뱃값이나 올리고 있다. 열정페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러면서 정유라한테는 풍파를 견딜 나이가 아니란다. 정말이지, 너무나 춥고 그래서 안녕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지난 5일에는 후배와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 촛불시위를 취재하러 갔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에서 개최한 집회 바로 옆에서 중·고생연대가 개최한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대한 규모였다. 학생들은 서로들 웃고 떠들면서 집회를 즐기고 있었다. 선생님한테 불려서 혼날 때처럼 단독적인 개체가 아닌, 여럿이 결집했다는 점이 학생들을 보다 강하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에서도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요. 하지만 가만히 있다간 우리의 권리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당당하게 요구할 자격이 있어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역시 학생을 '교복 입은 시민'이라고 칭했다. 억압의 상징이었던 교복이 결속력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은 이날 기득권 세력이 정해놓은 규율을 깨고 크게 소리쳤다. 스스로의 판단 하에 움직인 깃발. 그건 분명 정의였다.

  장갑이 없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어야만 하는 시간이 길 수도 있다. 아니, 길 거다. 역사는 불공평한 것일수록 길었고 공평한 것일수록 짧게 끝나는 식으로 이어졌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빨간 불에 무단횡단을 하지는 말자. 세상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다 못해 스스로에게도 냉소적으로 굴지는 말자. 수능 본 그날 내가 보았던 가로등의 빛은 진짜 빛이 아니었듯 그들이 가진 권력도 진짜 권력이 아니다. 미셸 오바마의 연설 중 한 마디를 빌려 말하고 싶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시린 손일수록 더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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