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질병 현상을 DNA 및 단백질 수준에서 이해하는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의해, 질병의 진단 및 치료를 개개인의 유전자에 맞추어 수행하는 맞춤형(또는 코딩) 의약품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감기나 암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약 종류와 복용량이 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 소고에서는 코딩 의약품의 배경 및 원리와 이에 수반되는 사회·윤리적 논의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코딩 의약품의 배경 및 원리
 1995년 Conroy라는 소년이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항우울제 처방을 받아 치료하다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소년은 항우울제를 대사시키는 효소가 없었음이 밝혀졌다. 이는 하나의 질환에 하나의 표적을 대상으로 하는 획일적 치료가 보편주의적 접근의 큰 오류로 판명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소년의 유전적 특질을 파악하고 유해한 약물반응을 피해 약물을 처방하는 개별주의적 접근을 취했더라면 소년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보편주의로부터 개별주의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발하게 되었다. 미국 국립 게놈연구소의 정의에 따르면, 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은 질병의 예방, 진단, 치료에 관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도구로 개인들의 개별적인 유전적 프로필을 사용하는 새로이 부상하는 의학적 실천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라 권위 있는 과학학술지인 Nature의 표지에는 맞춤형 의약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림이 실리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코딩 의약품을 논의하기 전에 기본적인 분자 생물학의 골격을 개괄해보자.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세포는 불가사의한 생명현상을 수행하기 위해 수천 종류에 이르는 효소들의 복잡한 활동이 필요하다. 이 효소들은 20가지 아미노산이 펩티드 결합에 의해 연결된 단백질들로서, 그 단백질들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라는 정보는 DNA의 일부분인 유전자에 담겨 있다. 마치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엑셀 프로그램이 코딩되어 있는 것과 유사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컴퓨터의 신호는 1과 0으로 두 종류이지만 DNA의 신호는 염기인 A, T, G, C의 4종류로 복잡성을 표현한다.
 인간의 경우, 2만여 종류에 달하는 모든 유전자들이 시작과 끝부분에 신호를 가지고 있어서 그 신호에 반응하는 세포 내의 인자들의 활동에 의해 카피(전사)되어 mRNA를 만들고, mRNA의 정보는 20가지 아미노산이 배열되는 정보로 번역되어 효소 같은 단백질들을 만들게 된다(그림 1). 이러한 유전자의 발현은 필요에 따라 너무 많으면 줄어들고, 너무 적으면 늘어나며(센스쟁이!), 다른 유전자 발현과 상호작용하여 그 정도가 달라지는 복잡한 조절 과정을 거쳐서 최상의 세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 사회의 일면 중의 하나인 '불통 및 단절'과는 극히 대조적으로, 세포는 '소통과 협력' 속에서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지속하며, 소통이 결여된 세포는 '사멸'한다.
 내 유전자 정보의 총체, 즉 유전체(genome)가 당신의 유전체와 그토록 많이 다른 것인가? 그 대답은 '예'이기도 하고 '아니오'이기도 하다. 즉, 어떤 유전자는 꽤 다르지만 어떤 것은 매우 비슷하다. 전자는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나 마취제 분해효소의 경우처럼 사람마다 주량이나 마취 시간이 다른 이유가 된다. Homo sapiens라는 인간 종의 어떤 사람은 기억력이 우수하고, 어떤 사람은 달리기를 잘하며, 다른 사람은 공간 지각력이 우수하다. 지진 등 자연재해에서 살아남는 데 필요한 능력은 그때그때 다르다. 어떻든 살아남기만 하면 인간 종의 절멸은 피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유전체의 다양성은 쥐나 개구리, 대장균 등 지구 상의 모든 종들의 절멸을 피하는 훌륭한 기작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난 너와 좀 달라!"라고 생명체들은 외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후자, 즉 일정성은 DNA를 합성하는 효소처럼 유전자의 서열이 일정하여, 유전자를 카피하여 만든 복사물인 mRNA의 염기 서열이 일정하고, 이를 번역하여 만든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이 일정하여, 결국 중합효소의 공간적 3차 구조가 일정하고 그 기능 또한 개인마다 거의 차이가 없어 생명의 기본 현상을 충실히 수행한다. "중요한 일은 규칙에 따라야 돼!"라고 외치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체는 불변성 속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야누스와 같은 존재들로서, 엔트로피 증가에 의한 무질서와 파괴가 판을 치는 우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진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인간을 포함한 고등생명체 각 개별자들의 유전체는 공통성 속에서도 차별성을 보임으로써, 병원균에 의한 감염이나 발암물질에 의한 암 발생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저항능력이 다르므로 그 치료방법 또한 달라야 한다는 개별주의적 전환이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코딩 의약품 시대를 빛내는 학문 분야는 단연 유전체학(genomics)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각종 생물들의 유전체 염기 서열을 판독하여 염색체 지도와 유전자 지도를 비교 분석하고, 다양한 환경에서의 유전자 발현 패턴을 미세배열(microarray) 등으로 분석한다.
 유전체학의 동생뻘인 단백질체학(proteo mics)은 다양한 환경에서의 단백질 발현 패턴을 2차원 전기영동 등으로 분석하고, 발현된 단백질의 구조를 NMR, X선 회절 등으로 분석함으로써, 환경에 따른 단백질들의 발현과 그 기능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들 형제는 충실한 비서인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의 도움을 받아 DNA와 단백질의 서열정보 및 3차 구조 분석을 수행하고, 다양한 종류의 신약을 개발하는 데 막강한 도구로 활용된다. 요즘 출시되는 항암제, 항생제, 그리고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들은 그 대표적인 결과물들로서, 단백질의 어떤 부위에 어떤 방식으로 결합해서 세포의 어떤 기전을 차단하는지를 명확히 선언하지 않으면 시장을 지배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에도 분자생물학을 활용한 유전체학 및 단백질체학과 컴퓨터 빅데이터를 활용한 생물정보학의 융합적 노력이 맞춤형 의약품을 개발하는 데 필수적임을 그림에서 잘 표현하고 있다(그림 2).
 더욱이 최근에는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뇌경색 등 신체의 손상 부위를 치료하는 데 성공한 사례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난자를 파괴하는 배아 줄기세포가 윤리적 문제로 제기되는 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체세포에 유전자를 주입함으로써 유도만능줄기세포를 형성하는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낡은 피부, 심장, 간 등을 떼어내고, 자신의 줄기세포로 맞춘 것들로 대체하여 사람의 수명이 경제력에 따라 차별화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전망되고 있다. 한마디로 유전이면 장수요, 무전이면 단명인 괴상한 세상이 올 것이고, 젊어서 아껴 쓰고 저축하느라 시장 경제가 왜곡되는 흐름까지도 쉽게 예측된다.
 코딩 의약품 시대의 논의들
 코딩 의약품 시대의 논점들 중 가장 비인간적인 것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의료혜택 차이에서 기인되는 행복추구권의 불평등이다. 현재 80세 근방인 평균 수명이 미래에는 그 두 배 이상 늘어날 수도 있는데, 문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수혜가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유한한 삶의 평등성을 기반으로 했던 형이상학과 종교의 큰 축은 인간의 발명품인 돈에 의해 변형될 것이며, '신이 너희를 사랑하사…'란 말은 '신이 일부를 편애하사…'로 바뀌게 될지도 모른다. 윤회론적 관점에서 보면 '다른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야 할 시간이 돈에 의해 결정되는' 희극적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평등성의 우울한 예측은 차치하더라도, 코딩 의약품 시대에는 많은 논란점이 내포돼 있다. 효율적인 치료를 위한 개인의 유전자 정보와 의료 정보들은 슈퍼컴퓨터에 보관되고 각 의료기관과 공유될 것인데, 이때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자기결정권과 신속한 치료를 위한 개방의무론이 상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정보 제공은 환자나 가족의 동의하에 이뤄지도록 해야겠지만, 가뜩이나 허술한 전산망에 해커가 침입한다면, 그 범죄 행위의 피해는 끔찍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를 치료하는 행위와 피부 미용 등 사치스러운 치료를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이고, 내 유전자는 '신이나 자연이 준 것'이 아니라 '내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도 되는가? 자연이 생명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만든 유전체들 간의 차이점이 인간의 인위적 관점에 의해 한두 가지로 통일되었을 때, 소위 '우수한' 유전자만이 남았을 때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절멸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요즘, 합성생물학의 도움을 받아 두 가지 종 이상의 특징을 나타내는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예컨대, 인간의 암세포 표면 단백질을 인지하는 항체가 부착된 대장균이 대장암 조직을 찾아가서 결합하여 파괴하도록 말이다! 이러한 휴머니스틱한 암 치료제를 구실로 하여 끝없이 새로운 합성생명체를 탄생시킬 경우, 이는 창조론적인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므로 당장 폐기되어야 하는가? 새로운 생명체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연구됐다 하더라도 그 안전성마저 대대손손 적극 보장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사는 지구 역시 언제까지나 안전할 수 없다. 혜성 충돌이나 우주 방사선에 의한 극단적인 위기 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으며, 천문학의 발전에 힘입어 최소한 100억 개의 항성계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음(사이언스 2014년 11월호)이 알려지고 있다. 수백 년 내에 극단적인 지구 위기가 도래한다 했을 때, 새로운 행성에서 살 수 있는 초인생명체를 만들기 위한 유전적, 세포적 조작은 종교 또는 다른 형이상학적 입장에서 거부돼야 하는가? 그렇다면 그 거부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위에서 제기한 많은 논점들을 포함하여 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의한 개념 추종과 윤리적 판단이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이 발전의 철학적, 사회적, 경제적 충격들을 효율적으로 완화하고, 과학기술계에 신속한 피드백이 가능한 글로벌 과학사회 융합조직의 필요성이 급히 대두되고 있는 현실이다. 즉, '발전하고, 알고, 알리고, 서로 사는 공동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박종군 교수(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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