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 중 누가 선한지 생각해보자. 대다수의 사람은 작고 왜소한 다윗이 선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누가 선한지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는 다윗이 무릿매질로 골리앗을 이겼지만 그렇다고 다윗이 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결투에 나선 두 인물을 승자와 패자로는 나눌 수 있어도 선과 악으로 나눌 수는 없다. 
 사회적 약자와 사회적 강자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우선 누구의 편을 들기 전에 싸움이 난 원인을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유도 듣지 않은 채 무조건 약자의 편에 설 때가 많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약자만을 생각하는 것을 바로 '언더도그마'라고 일컫는다. 힘이 없는 사람이나 단체는 그 이유로 선하며, 힘이 강한 사람이나 단체는 그 이유로 몰매를 맞아도 합당하다는 것이 바로 언더도그마다. 이는 좌, 우의 개념이 뒤집힌 것이다. 세상을 가진 자는 '오버도그', 세상을 갖지 못한 자는 '언더도그'로 구분 짓는다. 양쪽의 힘이 대립했을 때 언더도그가 늘 선하지만은 않다.
 쉬운 예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중소기업이 선하며, 대기업은 악하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기업을 향한 반(反) 정서는 사실상 반(反)대기업 정서에 가깝다. 언제나 선한 중소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손발을 묶어야 하고,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팽배하다. 만약 중소기업이 발전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고, 대기업이 된다면 반(反)대기업 정서로 인해 수백 가지에 이르는 규제에 시달려야 한다. 오버도그가 된 기업은 다시 언더도그마주의자들에게 비난받는 형국이 되고 만다.
 언더도그에게 맹목적인 동정심을 보이고 오버도그에게는 반감을 느끼는 사례는 이스라엘이 대표적이다. 유대인들이 수천 년간 조국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던 시절에는 동정의 대상, 즉 언더도그였다. 그러나 세계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염원하던 나라를 세우고, 강대국으로 성장하자 이스라엘은 오버도그의 인식을 갖게 됐다. 테러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이스라엘이 쌓은 장벽은 '이스라엘 판 인종정책'이라고 비난을 가했다. 그러나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같은 이유로 장벽을 쌓을 때는 '자국민 보호의 상징'이라고 옹호했다.
 이와 관련해 2007년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의 조지프 반델로는 간단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를 가와 나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대립을 양측의 시점으로 게재한 한쪽 분량의 글을 읽게 했다. 그런 다음 가 그룹에게는 팔레스타인보다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고, 나 그룹에는 이스라엘보다 팔레스타인이 더 커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다. 유일한 차이점은 지도의 크기였고, 같은 국가에 대한 같은 정보를 이야기해줬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어느 쪽이 약자로 보이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이스라엘이 커 보이는 지도를 받은 본 참가자들은 70%가 팔레스타인을 약자로 선택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이 더 커 보이는 지도를 받아 본 그룹은 62.1%가 이스라엘을 약자라고 판단했다. 이스라엘이 큰 지도를 본 가 그룹의 53.3%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고, 팔레스타인이 더 커 보이는 지도를 받은 나 그룹은 76.7%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언더도그와 오버도그 사이에는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한, 언더도그라는 이유를 앞세워 자신이 잘못됐음에도 오버도그를 비난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약자의 손을 들어줘서는 안 된다. 사건의 경위와 원인을 따져 본 이후 결과를 내려도 늦지 않다. 진정한 약자를 돕기 위해서는 언더도그마주의자의 시선을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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