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학기 첫 수업시간이 되면 학생들에게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의미를 전합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어원은 옛 페르시아의 우화 『세렌디프의 세 왕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난 세 왕자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는 뭐 그런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18세기 영국의 문학 애호가였던 호레이스 월폴이 이 단어를 편지에서 처음 사용했다고 하니, 4년 전 겨울 이 문장을 처음 마주한 저도 어쩌면 월폴이 보낸 편지의 우연한 수혜자인 셈인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세렌디피티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필수요건이며, 대학 생활 중 반드시 만나야 하는 애인 같은 존재라고 저는 애써 강조합니다.
 학생들은 어느새 호기심이 어린 눈빛과 의심 섞인 눈빛을 동시에 보냅니다.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신주사의 원리를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와 푸른곰팡이 속에서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 그리고 성냥을 발명한 프랑스의 샤를 소리아의 이야기를 연달아 전하면서, 세렌디피티 효과가 인류의 삶에 어떤 공헌을 했는지도 설명해줍니다. 물론 세렌디피티는 4차산업 혁명시대의 창의적 인재가 반드시 지녀야 할 요건이라는 잔소리도 덤으로 남겨줍니다.
 이쯤 되면 학생들은 교과목의 성격과 목표 그리고 교수자의 정체성까지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분위기 전환의 뜻으로 저는 세렌디피티는 스리랑카의 옛 지명이라고 칠판에 또박또박 적어줍니다. 한눈을 팔거나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는 친구를 똑바로 바라보며 창의적인 사람은 오만가지 잡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칭찬 아닌 칭찬도 곁들여 줍니다. 그게 바로 '코기토 에르고 숨(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이며, 자신의 기원(origin)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귀띔도 해줍니다.
 그 사이 저도 모르게 스리랑카에 가고 싶다는 속마음을 학생들에게 들키기도 합니다. 동시에 스리랑카 동부 초원 사바나 그 태고의 초원을 마냥 걷고 싶다고 고해성사까지 해댑니다. 어느샌가 저는 교단에서 오른발을 떨어트리며 스리랑카의 이름 모를 초록의 숲속에 발을 내딛는 착각에 빠집니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가 찍은 발자국에서 길의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확인합니다. 발자국을 뜯어먹는 사슴의 머리 위로 뿔이 자라고, 그 뿔을 바라보며 생의 한 순간을 다해 뒤쫓는 사자의 뒷다리의 근육을 상상하다 화들짝 놀라 다시 신입생이 가득한 강의실로 성큼 되돌아옵니다.
 이 말이 끝나면 첫 수업의 오리엔테이션도 끝이 납니다.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제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 싹을 틔웁니다. 몇몇 친구는 떡잎 같은 손을 번쩍 들어 또랑또랑 질문하기도 합니다. "교수님, 교재는 어디에서 사야 하나요? 가격은 얼마인가요? 시험은 어떤 형식으로 치러지나요? 리포트 분량은 얼마고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나요? 등등."
 질문을 듣고 있다 보면 저도 모르게 꼰대(?)의 정신이 즉각 발휘됩니다.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교재는 어디에서 구매하면 되고, 가격은 얼마이며, 시험은 중간과 기말을 합해 60점이며, 리포트는 제출기일을 지켜야 한다"고 받아쓰기를 하듯 학생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러면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갑니다. 그제야 저는 세렌디피티는 '뜻밖의 행운이지만, 노력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말을 다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 학생들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 뒷모습에서 20여 년 전의 제 모습을 문득 발견합니다. 학생들이 제게 해주는 새 학기 청춘의 오리엔테이션입니다. 이들에게 희망을 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정배 교수(교양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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