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공동체론과 문명전환시대의 생명평화 실천과제

생명평화리더십(아시아공동체론)'강좌를 개설하며
. 글로벌화의 급속한 전개와 함께 다양한 문명의 대립과 충돌, 안전에 대한 위협이나 갈등의 현상이 세계 곳곳에 확장되고 있다. 세계의 각국에서 남과 북, 동과 서의 분단에 의한 평화에 대한 위협, 소외문제에 의한 인간의 자연과의 괴리나 자살의 급증, 경제적 불평등에 의한 격차의 심화, 공권력과의 관계적 부조리에 의한 부패 현상 등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명전환의 시대에 생명존중과 평화공존의 인류사회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문명충돌과 사회의 다양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 시스템에 입각한 이기적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공동체의식을 확대하며, 인류공동체의 '하나됨(同)'을 이루어 가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이를 이룰 수 있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이며, 생명과 평화를 이루어 가는 지도자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한국사회와 더불어 인류사회가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길을 학생들과 공유하고자 '생명평화리더십(아시아공동체론)'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한국, 일본, 중국, 영국 등 국내외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매주 특강 형태로 진행할 예정이다.
 
대학사회는 '생명평화학'을 정립하고
실천하는 학문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우리들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문학적 이론과 방법을 제시하고 생명과 평화를 존중하는 사회를 이루는 실천적 학문으로 정립된다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생명평화의 리더십을 강조하고자 하는가? '평화학'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시작한 학문 분야로서 주로 국가 간의 폭력과 갈등의 해결을 중심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는 '국제관계학'의 한 분야인 셈이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생명과 평화를 합친 '생명평화학'을 제창하고, 그 근원을 아시아의 전통사상으로부터 추출할 수 있다. 생명평화학이란 '생명존중에 의거한 평화의 실현'이라고 하는 의미로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 옛날부터 전해지는 '도'인 것이다. 예들 들면, 중국의 유교에서는 '평천하'의 출발이 되는 '인(仁)'을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으로 정의했다. 이것은 만물을 생성하는 자연의 움직임에 근거한 세계평화의 실현을 의미한다. 퇴계 이황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존중하는 삶을 영위하였다. 또한 자생적 근대를 개척했다고 평가되는 한국의 동학(東學)에서는 모든 존재에 깃들어 있는 우주생명을 기르고 공경하는 것에 의해 '물살생(勿殺生)'이라는 평화윤리를 제창하였다. 생명존중의 삶의 방식은 사회 전반에 걸친 사회병리적 현상에 대한 새로운 치료방식이다.
 
대학사회는 세계보편적 공공(公共)의
가치와 윤리를 실천하는 교육의 장이다
인류사회에 지속되고 있는 배타적 지역주의와 민족주의로는 민족의 안전과 주체성은 확보할 수 있어도 세계 시민의 보편적 가치는 제공하지 못한다. 인류 역사는 자민족과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타민족과 타국에 대한 침략과 수탈을 당연한 수단으로 여겨 왔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모든 자연과 생명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여겨 왔고, 모든 자연과 생명은 인간에 의해 개발되고 착취되었으며, 이로 인한 자연 파괴는 오히려 인류를 위협에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현대 인류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인간과 자연과 종교 간에 강·약의 구조 속에서 상극과 대립의 구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국제사회의 경우, 근대시기인 18-19세기에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강대국들은 약소국에 대한 침략, 경제적 수탈, 살상과 강제적 인권유린을 세계 곳곳에서 자행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년)은 서구의 문명과 사수입하고 정치 체제 또한 서구의 제국주의를 모방하였다. 외부적으로 일본의 '대동(大同)'사상은 '대동아(大同亞)'를 건설하기 위한 사상으로 체계화하여 일본제국주의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남아시아로 확대한 침략전쟁의 사상적 기저가 되었다. 서구유럽과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는 자국민 또는 자국을 위한 국수주의적 공공성(公共性)에 기저를 두고 이웃 국가 침략과 수탈을 일삼았다. 일본은 부국강병책을 통해 침략국가로 변모하였고, 한국은 약소국가로서 일본의 지배를 당하는 역사적 위기상황을 맞았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서로 다른 사상체계가 국가정책에 어떻게 수용되느냐에 따라 국가와 민족의 방향을 설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역사적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근대 유럽사회가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침략적 제국주의의 군사적 충돌과 함께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현대사회는 강자/강대국과 약자/약소국과의 군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강자/강대국과 약자/약소국 간의 종속적인 세계질서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한 역사적 반성과 새로운 정신운동이 전개되지 않고는 인류사회의 강약 지배의 구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문명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강자와 약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닌 서로 의지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기에 상호 조화와 발전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종교적 신념의 차이를 넘어서서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자 하는 종교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현대사상계가 추구하는 '공공성(公共性)'의 보편적 가치는 우선적으로 주체적 자아(自我)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인간 개개인의 고유한 인권의 평등성은 자아의 주체성에 대한 인식에 기반한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불성(佛性)'과 '일원(一圓)'사상에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 개인주의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 자아에 대한 주체의식과 개개인의 소중한 가치를 드러내어 인권의 평등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보편적 타자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즉, 그것은 '시민(市民)' 중심의 인권평등사상이 어떠한 사상적 기반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는지를 주목하게 한다.
 현대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생명평화의 소명의식과 실천을 요청한다.
 평화란 일반적으로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는 인류 상호 간의 살상의 가능성마저 사라진 상태, 즉 서로 돕고 위하는 화(和)의 원리가 이상적으로 실현된 세상을 의미한다. 인류의 이상적 사회를 이루기 위한 공동체의식 공유는 가능한 것인가? 세계의 냉전체제가 종식되고 이념의 대립, 민족 간의 갈등적 구조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민족과 국가 간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게 될 때, 인류의 평화공동체 실현은 가능해진다. 갈등의 역사적 관계와 민족과 국가 간의 대립적 구조를 극복하고, 이를 교류와 협력을 통한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의 관계로 전환하여 민족들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공동체(cultural community)'를 형성할 때, 인류 보편적 가치와 평화적 문화형성도 가능하게 된다.
 대학사회는 대학 본연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병리현상에 대한 연구와 대처방안 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원광대학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의 개교정신에 바탕하여 설립되었기에 공교육기관으로서 한국사회와 인류사회의 정신문명을 주도적으로 펼쳐야 할 소명을 안고 있다.
 물질적인 면에서 우리는 현재 엄청날 정도의 풍요를 누리고 있으나, 물질의 발전이 정신적인 풍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신주의와 이기주의의 병폐로 우리사회가 황폐화하게 된 데에는 잘못된 우리의 근·현대사가 자리하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물질의 개벽이 정신의 개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물신화의 늪에 타락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우리사회의 지금의 모습은 분명 우리가 숨 가쁘게 걸어온 결과로서, 우리는 최근의 발자취를 되돌아봐야 한다.
 대학은 단순히 직업을 얻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인류사회가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해결하고자 하는가를 반문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수많은 난민들의 유럽행은 세계의 관심사가 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개인에게 엄격히 적용되는 '도둑질' 또는 '살인' 등에 대해 강력히 제재하는 국가 법률은 인류 역사의 세계질서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강대국의 약소국 침략과 식민지 건설, 전쟁을 정당화하는 살인적 행위 등은 올바른 인류의 문명이라 볼 수 없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여 치료를 하는 것과 같이, 문명전환시대에 인류사회의 문제인식과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과 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다양한 전통에서 생명·평화의 공공(公共)가치를 찾아 공유하는 작업은 인문학의 기반이 된다. '생명평화리더십(아시아공동체론)' 강좌를 통해 한국과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도덕적 실천운동을 실현하는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대학사회를 희망한다.
 박광수 교수(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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