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가 위치한 전라북도 익산시는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 문화권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 유적으로는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가 위치하고 있다. 왕궁리 유적은 '왕궁리 성지'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 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 해지기도 한다. 익산 기양리에 위치해 있는 미륵사지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고자 지은 호국 사찰로 백제가 망할 때까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2015년 익산시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가 '백제역사 유적지구'의 하나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러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다른 지역에 비해 큰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세계문화유산을 활용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선진적 문화유산 관리와 활용 방법을 모색하고 탐구해야 한다. <융복합 문화유산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은 이번 일본답사를 통해 일본의 세계문화유산의 활용과 과거 백제와 일본의 교류에 대해 알아보고 우리 문화유산에의 적용 방안 등에 대하여 탐구하고자 하였다. 일본 간사이 지방으로 향한 답사는 3박 4일의 일정으로 지난 2월 1일부터 2월 4일까지 진행되었다.

▲ 기요미즈테라(淸水寺) 입구에서 찍은 단체 사진

 2016년 해외답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된 이번 답사의 주제는 '고대 한ㆍ일 문화유산 교류 현장을 가다!'였다. 3박 4일의 일본답사에서 다음 두 가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먼저, 문화유산을 대하는 일본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문화재의 개방과 보존 방법이었다.
 일본에 도착한 후 바로 시작된 첫날의 일정 중 하나였던 평성궁터 답사는 문화유산 개방의 좋은 예를 보여준다. 평성궁은 일본 최대 규모의 국제 수도이며, 당나라의 장안성을 참고로 하여 건설되었다. 면적은 약 120~130ha 정도인데, 대부분이 국가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8년 '고도 나라의 문화재' 중 하나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아직 발굴 진행 중인 평성궁터는 지역 주민들의 여가의 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덕분에 아직은 썰렁할 수 있는 궁터에 지역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는 익산의 왕궁리 유적이 관람객이 없는 평소에는 한적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한, 평성궁터는 초석 위에 세워져야 할 기둥을 콘크리트 대신 나무로 대체하여 자연과 어우러지며 주변 경관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셋째 날 방문했던 니조조 역시 적절한 개방과 보존의 좋은 예이다. 니조조는 에도 막부 시대에 '쇼군'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조라쿠' 행사 기간에 교토를 방문 할 때 거주할 곳을 마련하기 위해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궁과 비슷한 개념의 니조조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 니조성 내부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고, 정해진 관람로를 따라서만 관람해야 하지만, 일반인에게도 건축물 내부를 전면 개방해 건축적 예술적 특징을 직접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문화재 접근성이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 니조성 앞에서 진행된 학생 발표

 마지막 날 방문했던 오사카성 역시 문화재 개방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사카성은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 시가 일본 통일을 달성한 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성으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공격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20년 도쿠가와 막부가 소실된 성을 재건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현재의 오사카성은 191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시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의 양식이 혼재되어 재건축된 것 이다. 오사카성은 내부를 전시실로 꾸며 민간에 개방하고 있다. 또한, 전통 의상 체험과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 하고 있다. 오사카 성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은 전시실 관람 및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본래 역사적으로 권력의 상징이었던 공간을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 서 개방의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도요토 미 히데요시 시대와 막부 시대를 거치며 잦은 문화재 소 실이 있었고, 서로 다른 시대의 문화재가 공존하여 역사적 고증에 오류가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이외에도 나라국립박물관을 비롯한 일본 대부분의 문화재들이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고 엄격한 통제 속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이렇듯 일본 정부는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보호하고 있다. 반면, 문화재 보존의 테두리 안에서 개방을 통해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었다.
 둘째 날 답사한 곳 중 '고도 교토의 문화재'의 일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뵤도인에서는 문화재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를 잘 볼 수 있었다. 천당을 보려거 든 이곳으로 가라 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뵤도인은 일본의 10엔짜리 동전의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특이했던 점은 입장료를 내고 뵤도인 내에 있는 봉황당에 들어가는 데 또 관람료를 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진 촬영도 불가하고 입장 시간도 정해져 있어 기다려야 하는데 '누가 굳이 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까?'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문화재 입장료가 저렴하지 않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은 답사지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 교토불교대학 박물관 우에무라 타쿠야 연구원의 특강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는 이미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온전한 보존과 더불어 문화재를 활용한 부가 가치 창출 에도 관심을 가지고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 익산 세계문화유산의 남겨진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그 토대에는 문화 재의 특징에 맞는 적절한 보존과 개방 그리고 더 나아가 문화유산의 홍보와 활용, 지역 주민들의 관심 등이 필요 하다.
 지난 3박 4일 동안 간사이 지방을 답사하며 관찰한 일본은 문화유산의 전통은 보존하며 현대적인 흐름에 발맞춰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이 문화유산을 보존해 활용하는 모습과 일본인들이 문화유산을 대하는 태도를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킨다면 진정한 의미의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 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의 매개체가 바로 문화유산이며, 우리는 문화유산을 단지 유물이나 전통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과 현대의 활용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문화유산의 적절한 활용과 역사적 사실들을 타산지석으로 삼는다면 현재를 더욱 내실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민지홍(신문방송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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