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 인문학진흥사업단≫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 전문가 양성사업팀>에서는 지난 2017년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3박 4일 일본 해외문화학술답사를 다녀왔다. 사업 책임을 맡은 필자와 정은경 교수(이상 문예창작학과)의 인솔 아래 학생과 조교 등 모두 33명의 일행이 참여한 이번 답사는 프라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어 많은 기대와 설렘 속에 시작되었다. 단순히 일본의 문화와 유적지를 견학하고 관광을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예술적 감각을 기르고 열띤 창작으로 이어지게 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계획된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첫째, 해외 탐방과 특강을 통해 글쓰기를 하나의 콘텐츠로 자기화해 나가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수단이자 진로로서의 확신을 다질 수 있는 동기가 필요했다. 둘째, 매일 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는 일상을 벗어나 다양한 문화를 보고 느끼며 협소한 시야를 확장해 나가고자 함이었다. 문화예술 콘텐츠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사업 취지를 실현하기에 학교라는 환경은 비좁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보고 느끼는 것 또한 제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아쉬움을 해소하고 꿈을 향해 한발 다가서기 위해 모두는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오후 7시 15분에 도착한 간사이 국제 공항은 입국 수속을 기다리는 각국의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처음 보는 광경에 학생들은 상기된 얼굴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고베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타국에서의 첫날밤, 한국과 비슷한 풍경이지만 모든 게 새로웠다. 침대도, 이불도,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도 새롭기만 한 일본의 밤, 학생들은 각자의 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길 나누며 곯아떨어졌다.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되었다. 고베에서의 첫 일정은 외국인 거주 거리 이진칸 거리 방문이었다. 이진칸[異人館]은 일본에서 바쿠후시대[幕府時代] 말기부터 메이지시대[明治時代]에 주로 서양인이 주택으로 건설한 건물이다. 고베항이 내려다보이는 기타노정[北野町] 주변에 1천 채 가깝게 지어진 이진칸은 현재 30여 채만이 미라처럼 보존되어 있다. 표정을 잃어버린 듯 늙어버린 이진칸, 겉은 견고해 보여도 무수히 많은 손길이 헤집어 놓은 그 속까지 다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메모리얼 파크로 향했다. 일본은 자연의 움직임이 크고 다채로운 나라다.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파손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메모리얼 파크에서 다시금 인간은 작고 연약한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떠한 운명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을까, 메모리얼 파크에 기록된 기억을 가슴에 담아 모두는 오사카로 걸음을 옮겼다.
 오사카 성은 10만 인부들의 한이 담긴 곳이다. 16세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 통일을 달성한 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무려 10만 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지어진 성으로, 완공 당시에는 금박 장식이 뒤덮인 호화로운 성이었지만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했다. 지금의 모습은 1931년에 콘크리트로 복원된 것이라 한다. 낡고 헐어가는 시간을 부여잡는 사람들의 손길, 그 아쉬움 때문에 시간은 여러 곳에서 저마다 다른 층위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겨온 시간을 80여 년 째의 두께로 버티는 오사카 성 앞에서 우리는 앞으로 어떠한 시간을 밀어내고 당기며 살아갈지 고민했다.
 셋째 날은 우리 답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미시마 유키오의 장편소설 금각사 (1956년)의 소재인 금각사를 견학하고 우리나라의 시인 윤동주, 정지용의 시비가 있는 도시샤 대학 탐방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금각사 는 1956년 1월부터 10월까지 잡지 신죠[新潮] 에 연재되었고, 같은 해에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이 작품은 실재 사건인 로쿠온지[鹿苑寺] 방화사건을 다룬다. 절정의 아름다움이 주는 배신과 절망을 특유의 문체와 치밀한 구성을 통해 보여 준다.
 금각사 앞에 서니 “존재의 불안이란, 자신이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치스러운 불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신록에 싸인 조용하고 평범한 듯한 눈앞의 풍경에도 지옥의 흔적이 있었다.”, “남들이 보는 나와, 내가 생각하는 나와, 어느 쪽이 오래 지속되는가… 어느 쪽이든 멈추지.”등의 대목에서 작가가 수없이 오갔을, 미와 추 사이의 무수한 갈림길이 그려진다.
 『금각사』에서 ‘나’는 아름다움을 추종하지만, 아름다움이 주는 절대적 소외로 인해 질투하고 번뇌한다. 즉 아름다움은 애증의 대상이다. 절대적 완전성 앞에 선나 는 절망하고 금각사의 추악하고 더러운 이면 앞에서 분노한다. 그리고 그 더러운 아름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을 불사르는 것, 즉 ‘나’를 없애 버리는 것이라는 결론과 마주한다. ‘나’를 버리는 것으로부터 ‘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소설 속의 메시지는 “오직 절망만이 우릴 구원할 수 있다 ”던 아도르노의 말과 이상의 날개 등 많은 것들을 생각나게 했다. 어쩌면 예술이란 이처럼 희망을 위해 절망하며, 쌓아 온 현재를 불태우고 절망으로 다시 서는 현재가 아니던가. 복잡 미묘한 마음을 추스르며 도시샤 대학으로 향했다.
▲ 일본 도시샤 대학 윤동주 시비 앞에서 추모 묵념
 도시샤 대학에는 우리가 잘 아는 시인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비가 마련되어 있다.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갔는지 시비 앞에는 꽃들이 놓여 있었다. 정지용 시인이윤동주 시인보다 선배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먼저 생겼다고 한다. 정지용 시인의 시비는 옥천군, 옥천문화원, 정지용 기념사업회에서 이곳 모교에 시비를 세웠단다. 조각된 시는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압천 이다. 그리고 한 10m쯤 옆에 나란히 윤동주 시비가 있었다. 윤동주시비는 도시샤 교우회 코리아 클럽이 발의하여 그의 영면 50주기인 1995년 2월 16일에 건립되었다. 윤동주 시비에는 한글로 된 서시 가 새겨져 있었다. 이들의 죽음을 빛나게 하는 것은 죽기 위해 싸운 투쟁이었다. 살기 위해먹고, 먹기 위해 일하는 우리네 하루가 순조롭게 죽음으로 가고 있는 것과 달리 이들은 죽음을 재촉하는 굳센 목소리로 삶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짧은 묵념은 이들의 혼을 기림과 더불어 한없이 작은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반성의 일축이었다. 우리나라의 두 시인의 시비가 비록 가까운 이웃나라이기는 하지만 외국의 대학 내 교정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게 했다. 더구나 역사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그리 가깝게 여겨지지만은 않는 일본에 세워져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마지막 날, 오전 일정은 아시야 대학을 방문하여 한국인으로서 이곳에 재직하고 있는 김세덕 교수의 특강으로 진행됐다. 아시야 대학이 소재하고 있는 아시야 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10대를 보낸 지역이기도 하다. 답사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오전이라 피곤할 법도 한데 학생들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특강의 주제는 뉴커머로 살아가기였다. 뉴커머 란 말 그대로 새로운 사람을 뜻하는데, 정확하게는 1965년 한 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에 건너가 정착한 한국 주민등록 소지자를 의미한다. 특히 1988년 해외여행자유화 이후로 일본에 건너가 정착하기 시작한 사람을 일컬어 뉴커머 라 부르기 시작했단다. 김세덕 교수의 성장과 뉴커머로서의 삶에 대해 들으며 학생들은 기성품 지도를 지우개로 쓱싹쓱싹 지워 나가는 것 같았다. 태어나기도 전 완성된 지도 안에서 헤매며 불안하고 조급해 하던 이 시대의 청춘들이 스스로 그려 가는 지도를 곧 볼 수 있지 않을까. 하필 14일이 4학년 수강신청일과 겹쳐 아시야 대학의 와이파이를 빌려 수강신청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이날의 특강도, 수강신청도 무사히 새로운 길을 그려 나가고 있었다. 불안한 현재가 있는 덕분에 젊은이들은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고 맞설 수 있을 것이다. 해외문화학술답사 는 학업적 성과와 인생의 성찰도 함께 선사하는 값진 선물이었다. 그래서 평소관심을 가졌던 문화예술 콘텐츠 분야에 대한 고민은 어느 사이엔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지도에 대한 사유로 길게 펼쳐져 있었다.
▲ 일본 아시야 대학 김세덕 교수 특강 후 기념 촬영

강연호 교수(문예창작학과, 프라임 융복합 문화예술 콘텐츠 사업 책임교수)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