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교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정호(程顥)의 초상

  동아시아 세계와 한자문화권:

대동(大同)과 대동단결(大同團結)의 의미
 
  대동(大同)이란 말은 많은 사람이나 여러 집단이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하여 크게 하나로 뭉친다는 뜻으로,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하여 크게 하나로 뭉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현대어로 말하면, 공동과 공동체 및 사회통합이라는 개념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이처럼 대동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용어답게 21세기가 된 지금의 시점에서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동은 화합하고 조화롭게 하되 '더불어 같이 하자'는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하더라도 인정하고 배척하지 말자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는 갈등과 대립도 있어야 한다. 물론, 거기에는 모순도 있을 것이다. 단지, 그런 것들을 최소화하자는 것뿐이다. 유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결국 유토피아적 상상일 수 있다. 『논어』에서 말하는 인(仁)이라는 것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서게 하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다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려의 마음이다. 대동론(大同論) 또한 거대 학술 담론이다. 동아시아 역사발전의 각 단계에서 유교의 영향력은 지대하였고, 유교에서 그리는 최고의 이상사회가 대동사회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오늘날 '대동'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의미야말로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장구한 유교사상사 속에서 10세기 이후 주자학(넓게는 주자[朱子] 이전의 이정[二程]을 포함한 정주학)과 양명학으로 대변되는 신유교(Neo-Confucianism)의 시대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신유교 계열 유학자들이 제시하는 대동세계 구상 및 신유교 가운데 특히 양명학의 대동사상 등에 관하여 생명사상적 입장과 평화라는 키워드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양명학은 고대 선진유가에서 공자의 핵심 개념인 인(仁) 개념을 대동세계의 주요한 이념으로 수용하면서 인의 공동체 구상을 전개하였다. 양명학적 시각에서 보면, 그것은 다름 아닌 만물일체지인(萬物一體之仁)의 생명사상으로서의 공동체 구상이며, 이 '만물일체지인' 개념은 대동사회 구현의 이념적 준거이자 평화 공동체론이기도 하였다. 양명학이 주장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 대한 생명 중심의 철학이다.
 
 신유교의 이상사회론과 평화적 대동사회
 유교에서의 인(仁)은 인간의 최고 도덕과 윤리 개념이다. 『논어』에서 인은 하나의 문장으로서 명백한 개념으로 정의되지 않았으나, 대체로 어짊, 박애(博愛), 도덕(道德), 선(善) 등의 광범위한 뜻을 지니는 심오한 휴머니즘의 표현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정명(正名, 이름을 바르게 하고)이었고, 그에 따라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책임과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결국, 공자가 생각하는 인은 인간의 최고 도덕과 윤리 개념이었다. 그 후, 인은 장구한 유교사상사 속에서 인간과 사회, 우주만물을 가장 잘 조화롭게 표현하는 절대적 최고 이념의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신유교(10세기 이후)에서의 '인'은 천지만물일체로서 생명과 평화의 절대정신을 의미한다. 정호(程顥, 1032~1085)는 '인'을 천지만물일체로 이해한다. 그의 인설(仁說)은 후대 신유교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호가 말하는 인의 최고 정신 경지로서의 특징은 자신과 우주 만물을 긴밀히 연관되는 하나의 전체로 간주하고, 우주의 모든 부분을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자신의 일부분이라고까지 여긴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 이해하는 '나' 또는 '자기'란 결코 개체적인 소아(小我)가 아니다. 오히려 만물이 모두 '나'의 일부분이다.
 정이(程 , 1033~1107, 정호의 동생)는 "인이란 천하의 공(公)이자 선(善)의 근본이다"고 말한다. 즉, 인이란 공공성의 최고 개념이자 공동체의 최우선시되는 덕목으로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 지닌 선(善)의 근본이 되는 것이었다. 이처럼, 11세기 무렵 주자학의 선구자인 북송대의 신유교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인은 이제 인간의 도덕적 영역을 넘어 그 정당성의 근거를 찾는 작업으로 더 넓은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바꿔 말해, 인의 영역은 인간의 덕성 혹은 윤리 관념에서 자연과 우주의 이법으로서의 도(道)라는 개념까지 확대된 것이다.
 양명학의 이상사회론은 일종의 생명사상이다. 그것은 중국 선진시대의 유학이 추구한 대동사회적 이상사회론 및 주자학의 인 개념을 매개로 하면서도, 그 구체적 방법론에 있어서는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왕수인(明代 王守仁, 1472~1529)은 신유교(송대 이후의 도학)의 학술적 전통 하에서, 특히 북송대 정호(程顥)의 만물일체설을 계승하면서 이상적 인간사회로서 유기체적 대동사회를 추구한다. 왕수인은 천지만물이 하나의 생명체이고, 따라서 인간사회 구성원들은 상호 간에 자신의 신체를 기준으로 인위적으로 서로를 분리할 수 없으며, 더욱이 서로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다고 하여 서로를 분리시켜 자신과 무관한 존재로 취급할 수 없다고 전제한다. 또, 이를 근거로 하여 왕수인은 우주, 또는 지구의 한 부분으로서의 인간사회를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의 관계망으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만물일체의 인'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하나의 생명 현상으로 연결시켜 주는 교량이 되는 동시에, 유기적인 생명체로서의 인간사회를 온전하게 유지시켜 나가는 생명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만물일체의 인을 회복하여 실현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가 인간사회를 온전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관건이 되는 셈이다.
 
 양명학과 생명의 대동공동체 
 신유교의 '만물일체지인' 관념과 대동사상은 신유교의 두 주요한 유파가 그 학문적 방법론에서 미세한 차이점을 보임에도 불문하고, 주자학파와 양명학파 양 진영 모두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유교의 생명공동체 의식의 하나였다. 특히, 양명학파에서는 생명공동체로서 '만물일체지인'의 관념이 대동사회의 실현과 연관되어 강한 실천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 관념은 말 그대로 인간과 만물 모두에 인(仁)이 깃들어 있으므로 일체가 된다는 생명사상이며, 중국 북송대의 정호가 체계화하였고, 명대에 이르러 왕수인이 한층 더 발전시킨 것이었다.
 안연의 인에 관한 물음에 공자는 "(사사로운) 자기를 이기고 예(禮)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사로운) 자기를 이기고 예로 되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니, 인을 실천함은 자기로 말미암지 남으로 말미암는 것이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즉,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이라는 구절이다. 결국, 유교사상 속에서 사적 영역으로서의 기(己)를 극복하고, 공적 영역으로서의 인을 발휘해야 함은 공평하고 공정한 공동체사회의 가장 중요한 공적 가치가 되는 셈이다. 공(公)과 인(仁)의 결합은 신유교, 특히 양명학파의 '만물일체지인' 사상으로 더욱 발전하였다. 그것은 인과 양명학의 핵심가치인 양지(良知)와의 결합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의 유기체 내지는 물체이기에 타인의 고통은 자기 스스로의 고통이며, 만물 속에 인이 깃들어있다는 것은 만물이 양지(良知)를 가지고 있음과 동일한 논리이다.
 왕수인의 만물일체론은 인간, 금수, 초목, 와석을 포함한 천지만물이 하나임을 직각하는 일체론이기도 하지만, 인간세계의 정치적 내지 사회적인 하나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양명학의 경우 만약 인(仁)을 단순한 가족주의에만 국한한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이기심의 발로이지 양지(良知)의 진정한 발현이 아니다. 그러므로 양명학의 대동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기 부모만 부모로 여기지 않으며,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타인과 나, 그리고 자연 만물에 깃든 양지 내지는 인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때 화합과 조화, 평화로운 대동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동이라는 명칭으로 체계화되지 않았던 대동사상의 완결판이 근대 중국에서 다시금 등장한다. 강유위(康有爲)는 『대동서(大同書)』에서, 그는 유교사상뿐만 아니라, 도가와 불교 심지어 서양사상까지 포괄한 대동세계를 구상하고 있다. 그는 맹자가 최초로 말한 불인지심(不忍之心)을 바로 인(仁)으로 풀이한다. 강유위는 그의 공동체 구상에서 공맹의 인(仁) 개념에 근거한 정치 및 대동의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한다. 즉, 불인지심에 근거한 인의 공동체가 그의 대동공동체이자 대동사회의 청사진이었다.
 근대 한국의 양명학자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은 양명학의 핵심 이념을 만물일체지인으로 이해했으며, 이에 근거하여 대동사상을 체계화하였다. 박은식은 강유위와 마찬가지로 유교 전통의 인(仁) 개념을 바탕으로 양명학파의 '만물일체지인'에 의거한 대동사회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박은식의 대동세계 구상은 양명학의 만물일체지인의 관념에만 함몰된 이론적 주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선진유가 공자 시기의 대동론과 명대 신유교의 양명학 대동론 및 중국 근대기 강유위의 대동사상 등의 영향을 받아 대동사상의 현실적 구현으로서 대동교 운동까지 전개한다.
 게다가, 박은식의 대동사상은 당시 서양에서 들어온 진화론(물경천택[物競天擇])을 '천지만물일체'라는 양명학의 사상에 결합시켜 세계 평화주의를 표방한다. 이 대동 원리는 사덕사리(私德私利)를 극복하고 공덕공리(公德公利)를 추구하여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사상이었다. 치열한 경쟁 시대에 그는 종교에서 세계 평화의 기초를 찾은 것이다. 불교의 널리 구제함[普度]과 그리스도교의 박애는 유교의 대동과 함께 평화주의가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각 종교의 가르침을 외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그 내적인 정신을 살펴보면 유불야교(儒佛耶敎) 모두 평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말이다. 박은식은 그와 같이 자신의 양명학에서 유교, 불교, 야교(耶敎=그리스도교)의 삼교 합일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종교 간의 대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결국, 양명학의 만물일체지인의 사상은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의 유기적이고 상보적인 관계망 속에서 인(仁)과 양지(良知)라는 인간 도덕의 근원적 보편성, 근본적 생명성의 사회적 실현을 통해 완성되는 평화 공동체론이다. 그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평화롭고 평등한 대동공동체 실현의 이념적 준거 틀로 자리매김되었다.
  신현승 교수(상지대학교)
<필자 소개>
주요 경력 : 중국 천진사범대학 법학석사학위, 일본 동경대학 동양철학 전공, 상지대 인문사회과학대학 조교수
주요 저서 : 『제국 지식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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