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INISM PERFECTS DEMOCRACY(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지난달 8일, 세계 각국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외쳤다. 이날은 109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여파로 인해 집회 규모가 전년 대비 더 확대된 양상을 띠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는가 하면, 직장 여성들이 자체적으로 파업을 하기도 했다.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의하면, 미 동부에서만 수십여 곳의 학교가 하루 휴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사의 약 75%가 여성인 상황에서, 그들이 대거 파업에 동참해 수업 진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여론을 인식한 모양인지, 이날 자신의 SNS에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과 전 세계 여성의 역할을 존중하자"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폴란드에서는 수만 명의 시민이 여성 폭력을 방치하는 보수당 정권에 대한 항의와 남녀 임금 차별 해소, 낙태 권리 인정 등을 요구했다. 스페인에서는 4만 명의 시민이 시위에 참여했고, 터키에서도 행진이 진행됐다. 이외에도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에서도 여성들이 권리를 외쳤다.
 
   정치권에 부는 페미니즘 바람
 우리나라에서도 곳곳에 여성주의를 상징하는 보라색 풍선이 거리를 채웠다. 한국여성의전화는 광화문 광장과 신촌 대학가,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에서 시민에게 장미 1만 송이를 나눠 주는 '빵과 장미' 이벤트를 진행했다. 빵과 장미의 상징성은 1908년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빵과 장미를 달라"며 시위한 데서 유래됐으며, 각각 여성 생존권과 참정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노동계는 광화문 광장에서 출산휴가·육아휴직 실효성 강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직장 내 성희롱 기업주 책임 강화, 임금 하락 없는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등을 요구하는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행사를 열었다.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최로 제33회 한국여성대회 기념식이 열렸다. 30여 개의 회원단체는 최근 여성운동의 성과를 공유하고, 성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모색했다. 1987년부터 해마다 시상하는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음란 사이트 소라넷 폐쇄운동을 성공시킨 '디지털 성폭력 아웃 프로젝트'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혐오 범죄로 인해 무고하게 살해당한 여성에게 추모 쪽지 3만 5천여 개를 남긴 여성들에게는 '여성운동 특별상'이 돌아갔다.
 이날 자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차기 대선 주자들이 참석해 여성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또한 성별과 연령, 계층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장받는 사회를 약속했다. 미취학 자녀의 부모가 임금 삭감 없이 하루 6시간만 근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10 to 4 더불어 돌봄 정책'을 비롯해, 성별 격차 해소, 안전사회 구축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여성학자인 권인숙 명지대학교 교수를 경선캠프에 영입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권 교수를 "사회적 관계에서 성폭력을 분석하고, 여성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차별 없는 공정국가 건설을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의 성평등 정책을 확대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한 뒤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성평등 교육 실시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에 소위 성소수자가 30%를 반드시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주요 골자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성평등 실현을 위한 국가 대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여성 정치인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내각의 여성 비율을 OECD 평균 수준인 30% 수준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를 성평등인권부로 개편하는 방안 ▲국무총리 산하 양성평등위를 대통령 직속 국가성평등위원회로 강화하는 방안 ▲성평등 임금 공시제 ▲돌봄 가족 휴식일 도입 ▲돌봄사회기본법 제정 등이 주요 골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비례대표를 늘려서 여성 정치인 비중을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공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높이는 프로그램 운영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여성 정치인 공천을 30%로 권고하는 규정을 의무제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눈 감고 귀 막는 사람들
 이처럼 정치권에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지만, 일부 시민들은 여전히 색안경을 쓰고 여성운동을 바라보고 있다. 대형 포털 사이트에 게재된 여성의 날 행사 보도와 관련해 일부 네티즌들은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철회한다'(pras****), '과연 신체 구조상 남녀가 평등해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hrms****), '여자들, 군대나 가고 말해라'(kkb3****) 등의 댓글을 작성했다. 심지어 일부 댓글은 집회 참가자들을 두고 '미개한 것들'(only****), '일당 6만 원'(jula****)이라고 비꼬는 뉘앙스를 띠기도 했으며, '여성의 날이면 성매매 업소 영업 안 하냐'(rlad****) 등의 인신공격적인 내용을 담기도 했다.
 이러한 시선의 문제는 페미니즘에 대해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일명 '눈 감고 귀 막는' 형식이다. 실제로, 우리대학에서도 지난해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수많은 학생이 이를 완강하게 '비난'했다. SNS상에서 학생들은 추모 포스트잇을 '국어교육과 막걸리 사건'에 비유하면서 "이 사건과 맞먹는 학교 망신"이라고 주장했다.
 페미니즘과 여성문학을 강의하는 정은경 교수(문예창작학과)는 극복되지 않은 성차별을 비판하며, "남녀평등을 통해 성차별이 없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법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남녀차별이 당연히 생각됐지만, 현대에는 많은 여성이 사회로 진출하면서 남녀평등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페미니즘이 대화의 화두에 올라 더 이슈가 돼 남성도 여성을 인정하고 공감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세계 여성의 날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한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여성의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에서 시작됐으며, 1975년에는 UN에서 공식적인 기념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후 109년간 세계 각국에서 집회가 벌어졌으나, 정작 대중적으로는 인지도가 낮아 할 수 있는 역할에 한계를 갖고 있다.
 본지 기자가 열 명 남짓의 학생들에게 세계 여성의 날에 관해 물어본 결과, 과반수의 학생이 모른다고 대답했다. 알고 있다고 대답한 김소영 씨(도시공학과 2년)는 "교양 수업 중에 교수님이 말씀해 주셔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여학생회 측은 올해 여성의 날에는 별도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로 탄핵됐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첫 걸음이다. 보다 완벽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성평등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박서영 기자 hisyiya@wku.ac.kr
 김하영 수습기자 hamadoung13@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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