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2.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4차 산업 관련 개념도

<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2017년 개설된 <생명평화리더십>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오늘날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제4차 산업혁명은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를 빅 데이터에 통합시키고 경제, 산업, 의료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신기술로 정의될 수 있다.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적 세계의 통합은 O2O(Offline to Online)를 통해 수행되고, 생물학적 세계에서는 인체의 정보를 디지털 세계에 접목하는 기술인 스마트워치 등을 이용하여 모바일 헬스케어를 구현할 수 있다. 현재의 이러한 폭발적인 지식과 기술의 팽창이 예견되었던 1976년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출판하여 지식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본 단상에서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개괄하고 4차 산업혁명과의 관련성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개괄과 역사적 배경
  도킨스는 1941년 3월 26일 영국령인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출생하였다. 1962년 옥스퍼드대학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1966년 틴베르헌 교수의 지도 아래 동물행동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1970년 옥스퍼드대 동물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진화론의 최근 연구 성과들에 대한 대중 과학 저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출판된 후 오늘날까지 블록버스터급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서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진화의 주체가 인간 개체나 종이 아니라 유전자이며, 동물뿐 아니라 인간도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제4장에서는 생존 기계가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 처음 생겨난 후, 점차 동물과 식물 각각이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수한 생활 방식을 진화시켜 왔다고 한다. 제5장부터 제10장에서 이기적 유전자의 목적은 유전자 풀 속에 그 수를 늘리는 것이고,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 기계에 프로그램을 짜 넣는 것을 도와줌으로써 이 목적을 달성한다고 한다. 도킨스는 '마음씨 좋은' 전략이 '사기꾼' 전략보다 진화적으로 어떻게 안정화되어 선택되는 가를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통해 보여 주며, 집단 유전학의 개념에 근거한 유전자 근연도를 활용해 혈연 이타주의의 측면들을 설명함으로써 이 책의 과학적 신뢰도를 증가시킨다. 제11장에서는 인간의 특성은 '문화'로서, 도킨스는 '유전자'와의 비교를 위해 '밈'을 문화 전달의 단위라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밈 풀 속에서 '신의 밈'이 나타내는 생존 가치는 그것이 갖는 강력한 심리적 매력의 결과라고 주장함으로써, 생물학 및 사상계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은 자유의지와 문명을 통하여 이런 유전자의 독재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 출판 이후, 1982년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에서는 표현형의 효과가 자신 및 다른 유기체들의 신체를 포함한 넓은 환경으로 전달됨을 주장하여 또 한 번의 충격을 선사한다. 2006년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에서는 초자연적 창조자가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적 신앙은 굳어진 착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여 종교계와 마찰을 빚었다. 도킨스는 무신론자이고 철저한 인본주의자로서 여러 분야의 대중과학서를 집필하였다.

 

▲ 그림1. 생명의 중심원리

생물학적 측면에서 보면, 진화의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찰스 다윈의 1859년이고, 그레고어 멘델이 『식물의 잡종에 관한 실험』을 1866년에 발표했다. 왓슨과 크리크의 DNA 이중나선 모델이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것은 1953년이며, 유전자를 담는 운반자인 DNA가 상당히 안정한 분자임을 알게 되었다. 1961년에는 '맛있는' 포도당을 먹다가 '덜 맛있는' 젖당을 먹게 된 대장균이 젖당을 이용하는 유전자 군을 켜는 조건에 대한 'Lactose 오페론'설을 제이콥과 모노가 발표하여, 유전자들의 발현 조절이 주변 환경의 신호에 따라 '센스 있게' 변하는 동적인 상호 작용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다.(그림1 참조)   1973년에는 처음 DNA의 잘라진 부분을 다른 DNA 부분에 재결합시키면서, 한 종의 유전자가 다른 종에 조합되어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는 유전자 재조합(유전공학)이 태동하게 되어 전통적 다윈의 진화론에 수정을 가해야 하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도킨스는 동물행동학자로서, DNA 이중나선 모델, 오페론설, 그리고 유전공학의 도래와 함께 다윈의 진화론의 최적자 생존의 주체가 유전자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서둘렀을 것으로 본다.

 또한 종교적 측면에서는, 그의 자서전에서 언급했듯이 러셀의 영향을 받아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가 무신론자로 변하게 되었다. 이 과정은 "신은 죽었다"라고 하며 그 위치에 초인(Ubermensch)을 대입한 니체의 종교적 측면과 유사하다. 러셀이 그 천재성을 찬탄했던 비트겐슈타인이 '논리철학 논고'에서 "기존의 철학, 특히 형이상학이나 도덕학에서 신이나 자아, 도덕과 같은 것들은 실제 그것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없어서 의미(Sinn)가 없으며,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라고 언명한 것에 도킨스는 상당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이기적 유전자』의 의미성 및 4차 산업과의 관련성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이 이미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대에서, 새로운 분자 생물학적 지식들의 급속한 축적이 진화의 단위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환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출발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종(species)의 개념은 대체로 같은 유전형질을 나타내는 개체군의 포괄집단으로서, 서로 교배하여 생식가능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단위였다. 유전자형(genotype)과 그 표현형(phenotype)에 대한 단순한 멘델 법칙과 유전자 풀의 변화에 대한 집단 유전학적 수식들은 장기간의 진화적 변화를 설명하는 데 아직까지도 효용성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1950~70년대의 분자 생물학의 급속한 발전은 유전자 복제와 발현의 놀라운 정확성과 효율성이라는 이기적인 모습들을 다양한 수준에서 규명하였으며, 급기야 1973년의 유전자 재조합은 새로운 종의 탄생이 신도, 자연도 아닌 인간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문화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자의 위치를 점하게 되면서,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를 진화의 단위이자 모든 생명체를 주관하는 실체로 인정해야 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존경하는' 과학자인 자크 모노는 오페론설뿐 아니라 『우연과 필연』의 저자이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필연'적으로 디자인된 합목적성을 유혹하나, 모노는 철저히 '우연'의 연속으로 파악한다. 이는 많은 과학적 증거들을 충족하는 이론으로서, 저자인 도킨스도 적극 공감한 듯하다. 창조적 지위를 얻게 된 우연의 산물인 인간이 비트겐슈타인적인 '검증 불가능하여 의미 없는' 형이상학의 산물인 창조적 또는 윤회적 신을 배제하고, 니체적인 '초월적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다소 충격적인 단어인 '이기적인' 유전자의 개념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기나긴 우연의 축적에 의한 인간이 새로운 종의 창조자로서 어쩔 수 없이 등극하게 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직시하고, 오히려 인간의 고귀함과 자연에 대한 책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인간만이 유일하게 자기복제자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신이라는 밈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으로 향후 과학적 충격이 주는 수없는 도전들을 극복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우주의 어떤 곳에서든지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를 '불멸의 자기복제자'로 언급함으로써, 향후 있을 수 있는 운석 충돌 같은 지구적 대재앙에 대비한 계획이나 우리보다 고등한 지적 생명체와의 교류에 대한 일들까지도 대비하도록 암시하는 느낌이다.

 오늘날의 제4차 산업혁명은 사물 인터넷을 통해 생산기기와 생산품 간 상호 소통 체계를 구축하고 전체 생산과정의 최적화를 구축하는 특징을 갖는다. 이러한 기술들은 수십억 명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웹에 연결하고, 산업 및 조직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며, 더 나은 자원 관리를 통해 자연 환경을 재생산할 수 있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개인 맞춤형 시대이므로, 자신의 유전자 및 의료 정보를 빅데이터와 인공 지능이 잘 관리하여,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질과 수명이 대폭 향상될 것이다. 또한, 3차원 프린터를 이용하여 본인에게 맞는 인체조직을 만들 수 있고 멀지 않은 장래에 피부, 혈관, 위, 내장, 간 등을 주문 제작하고 자동차 부품처럼 교환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빅데이터가 지구를 향한 대운석의 충돌을 정확히 예보함으로써 제2의 지구를 개척하기 위한 유전자 재조합 '신인류'를 탄생시키는 기술이 급박하게 요구될 가능성도 존재하며, 이러한 혁명적 기술들은 전통적 형이상학 및 종교와의 많은 마찰과 논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기술의 폭발적인 팽창은 생명과 진화의 단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 패러다임은 수많은 과학적 증거들로 지지 받고 있다. 도킨스의 원시 수프와 자기복제자의 개념은 이미 실험적으로 증명되었고, 유전자 운반체인 덜거덕거리는 '생존 기계'도 그 타당성이 폭넓게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이기적 유전자의 폭정에 대항할 수 있는 자유의지로써 '필연이 무너진' 세계에서 자기 결정의 존엄성과 윤리성을 지키며, 끝없는 지식과 빅 데이터 혁신을 통해 맞춤형 치료를 통한 삶의 질과 수명 향상, 지구 생태계 보존 및 제2의 지구 개척 등의 막중한 임무를 띠는 '우연히 던져진, 그러나 지속적으로 현명해지는 존재자'가 된 것이다.(그림2 참조).

  박종군 교수(생명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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