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잊히지 않는 한 이미지가 있다. 택배원이 무심하게 건넨 젖은 택배와, 모래알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캐리어, 그 안에서 젖은 옷을 꺼내자 터지듯이 나오는 울음, 이윽고 바가지에 비눗물을 채운 뒤 옷들을 넣어 발로 열심히 밟고, 퉁퉁 부은 눈으로 햇볕에 옷들을 말리던 어머니, 학교에서 새로 준 깨끗한 학생증과 캐리어에서 나온 녹슨 학생증을 한참 만지던 아버지. 예전에 세월호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그 벅찬 빨래가 내 일상에 불쑥불쑥 올라온다. 햇볕은 쨍쨍하고 옷들은 다 말랐지만 세월호는 아직 다 마르지 않았다.
 아무리 세상이 이기주의로 가득 찼다지만, 어쩜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세월호 관련 기사에 달린 일부 댓글을 보며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보고 싶지 않아도 보이고,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정보들이 과포화 수준으로 퍼진 상태다. 근데 그 수많은 정보 중 '굳이' 노란 리본이 보기 싫고 세월호의 '세' 자가 듣기가 싫단다. 차라리 말로만 그러면 다행이다.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은 굳이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던 유족들 앞에서 피자를 폭식하며 조롱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그날, 국가수장으로서의 진두지휘는커녕 7시간을 잠적해놓고 부스스한 올림머리로 나타나 대뜸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고 물은 대통령은 탄핵 당했다. 이제 대통령이 받아야 할 심판의 범위는 세월호 7시간을 넘어, 인명사고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올려놓았던 '국정농단', '부정부패'로 확장된다. 국가는 국가로서 행해야 할 구조의 의무를 민간 잠수사 등의 국민들에게 떠넘기기까지 했으며, 파시즘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신념으로 무장한 세월호 혐오 세력을 방관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 깊이 쌓여있던 적폐의 결과물이다. 일본에서 18년이나 바다를 떠돌았던 낡은 배와, 비정규직 선장과 사고 전날 입사한 일등 항해사와 조기장,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손을 뿌리친 해경과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 방송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세기 동안 우리를 짓눌렀던 안전 불감과 부정부패, 빈익빈 부익부에서 비롯된 사회 구조적 문제의 얼굴이다. 이러한 단어들을 빼놓고 우리나라 현대사를 설명할 수 있을까.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던' 한국 현대사가 빚어낸 사고다.
 이는 1995년 삼풍백화점 사건과 맥락을 같이한다. 삼풍백화점은 건설 당시부터 무리한 설계 변경과 하중 계산을 무시한 채 부실공사를 했으며, 완공 후에도 억지로 확장 공사를 시행하고 기둥 둘레를 줄였다. 붕괴 며칠 전부터 벽에 금이 가고 천장에서 시멘트 가루가 떨어지면서 건물이 기우는 등 무너질 징조가 있었으나 경영진은 영업을 계속하게 했다. 붕괴 당일, 간부들은 종업원과 고객들에게 대피 안내를 하지 않고 5층만 폐쇄한 채 탈출했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안에 있던 937명이 다치고 50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6명이 실종됐다.
 인과적 사고는 되풀이되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지난해 '펑' 소리와 멈춘 4호선 지하철에는 어떠한 대피 안내도 없었다. 승객들은 비상문 개폐 꼭지를 열어 스스로 탈출했고, 서울 메트로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며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했다. 지진이 일어난 경주에서는 일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자습을 강요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2, 제3의 세월호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에서 우리는 또 어떤 형식의 진보에 도전해야 하는가.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 것만 같은 각자의 상처 입은 감정들이, 그래도 탄핵이라는 줄을 붙잡는다. 끌어내리고 끌어내리다 보면 희망과 만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은 명백히 우리의 새로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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