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를 아는가? 그곳에는 죽은 아이를 안고 울부짖는 사람, 미쳐 날뛰는 말, 그 밑에 부러진 검을 쥔 채 널브러진 병사가 그려져 있다. 피카소 고유의 입체주의적 표현법은 그림 속에 처절함과 혼란스러움을 가미해 주는 듯하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번에 필자가 소개할 영화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배경 역시 스페인 내전이다.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 그러나 속으면 안 된다. 이 안에는 처절함과 혼란스러움은 물론, 기괴함까지 숨어있다.
 주인공 오필리아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다. 그녀의 어머니 카르멘은 정부군 소속의 비달 대위와 재혼했다. 그는 산속에 진을 치고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반군을 진압하고 있었다. 카르멘은 임신 중이었는데, 비달 대위의 요구로 산속까지 무리하게 거처를 옮기게 된다. 오필리아는 이사 가는 차 안에서 한 이야기를 읽는다.
 
 거짓도, 고통도 없는 지하왕국에 인간세상을 동경하는 모안나 공주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지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공주는 햇살을 맞는 순간 모든 기억을 잃었고 결국 추위와 질병으로 죽고 말았다. 지하세계의 국왕은 공주의 영혼이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다.
 이를 시작으로 오필리아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곤충 요정을 만나고, 부대 근처의 숲 속에서 미로를 찾게 된다. 미로 가운데에는 지하왕국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그곳에서 오필리아는 숫양의 머리를 한 요정 판의 환영을 받는다. 판은 오필리아를 모안나 공주라고 부르며 지하왕국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제의 내용은 거대 두꺼비를 죽이고,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사는 곳에서 단검을 찾아, 순수한 피를 얻는 것이다. 오필리아는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결국 과제를 완수한다. 그리고 그녀는 따뜻한 빛이 감도는 지하왕국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있다.
 세 번째 과제는 죽음으로써 완수됐다. 그녀는 지하왕국 가족을 만나는 동시에 현실에서 미소를 띠며 숨을 거둔다. 정말 지하왕국에 도착했다면 그녀가 괴로워하는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필리아의 모험은 전쟁 속에서 소외된 아이가 만들어 낸 상상이 아닐까? 벌레를 보고 요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무화과(無花果) 나무에서 꽃이 피는 것도, 남들에게는 요정 판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게르니카」와 이 영화는 매우 닮았다. 피카소는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했다. 「게르니카」가 외국 순회전시를 마치자, 그는 '그림은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회복된 후에만 스페인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선언했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도 전쟁의 비참함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전쟁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들, 쓰러진 반군을 확인 사살하고 고문하는 모습, 살갗을 꿰매는 모습 등을 여과 없이 비춰냈다. 결정적으로 영화 역시 자유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폭력적인 행위는 주로 비달 대위에게서 나타난다. 그리고 영화 속 인물은 비달 대위를 따르는 자와 거부하는 자로 나눌 수 있다. 그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는 자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대위의 지시에 따른 병사들은 물론, 오필리아의 어머니 카르멘까지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다. 반면, 그에게 대항하고 정부의 독재를 거부했던 저항군은 승리했고, 살아남았다. 그들은 자유를 열망했으며, 죽음이 난무하는 전쟁을 버텼다. 총과 칼도 그들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영화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은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아는 자들에게만 보인다고 한다'라고 말해준다. 신념이 총이나 칼보다 강하듯, 한없이 약해 보이는 것도 큰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신뢰가 될 수 있고, 인문학이 될 수도 있으며, 복지가 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시선을 똑바로 하지 않으면 비달 대위를 따르던 이들처럼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는, 나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조윤지(경영학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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