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9일, 탄핵과 촛불, 광장과 갈등을 넘어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철학자 칼 포퍼는 "다수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민주주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지난 일주일, 문재인 정권의 행보를 보면 과거 노무현 참여정부의 세 가지 국정 운영 키워드가 생각난다. 사람 중심, 지역 중심, 역량 중심. 그중에서도 지역 중심의 삶과 복지를 추진하려는 노력이 가장 눈에 띈다. 지역 주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복지 서비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제공하기에 지역사회가 최적의 단위이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복지는 광대하지만 서비스 효율성이 낮고 주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가정과 친족의 비공식 보호는 친근하지만 계층별 편차가 크고 제도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지역사회는 적절하게 제도적이면서도 적절하게 친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적어도 얼굴을 맞대면서 지낼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지역사회를 매개로 하는 복지체제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다. 지역을 희망으로 보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서울 공화국이다. 지방분권화를 그렇게 외쳐 왔지만 중앙정부의 지배력은 더욱더 강고해지고 있다. 사회 서비스의 효율성을 위해 중앙의 복지사업을 지방으로 대거 이양했지만 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 차이 때문에 오히려 블랙홀 같은 서비스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재정자립도 꼴찌인 전남에 수급자 비율이 가장 많아 어르신 밥 한 끼 먹이는 경로식당 예산까지 삭감해야 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이유는 단 한 가지. 한국의 시민사회가 너무나 허약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조직화된 힘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복지체제는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 지난 2008년 집권한 철저한 시장주의자 이명박 정부는 천문학적인 4대강 사업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역복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2013년 집권한 자칭 복지주의자 박근혜 정부는 태생적으로 시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에만 관심을 가졌다. 어렵게 추진되고 있는 지방분권화 또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사회적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지역사회복지는 주민의 참여로 시작되고, 파트너십으로 완성된다. 여기에 실질적인 지방분권, 신뢰와 호혜의 가치, 시민사회의 성숙, 살아있는 지역조직, 실천가의 적극적인 사회 행동이 촘촘히 박혀 있어야 지속가능해진다. 그렇지 않다면 지역 중심의 복지체제 구상은 국가복지의 허약성, 정권의 반(反)보수성을 은폐하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지역복지의 꿈과 희망이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