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2012년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2017년 개설된 <생명평화리더십>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 정산 송규 종사의 초상(좌)과 <생명평화리더십> 강좌를 진행 중인 이성전 교수(우)의 모습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大同'은 동아시아에서 고대로부터 지녀온 이상사회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대동사회'의 의미는 시대를 따라 변천하여 왔으나 오늘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제시된 정산(鼎山) 송규(宋圭) 종사(1900~1962)의 삼동윤리1)는 우리가 바라는 미래세계 실현을 위한 보편 윤리이며 동시에 그 실현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동윤리(三同倫理)가 지향하는 세계도 역시 대동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대동사회'의 이상은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여기서는 주로 유가적 시각에서 논의된 대동사상의 흐름을 소재로 택하기로 한다. 우리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어온 유가적 시각이 주체가 되면서 체계적인 이상사회상을 제시한 최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근대에 서구 문명이 유입되면서 격랑에 휩싸이는 동아시아에서 '대동사회'의 이상은 새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근거가 되었다. 이 시기에 대동사회 사상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를 살피기 위해 강유위(康有爲, 1858~1927)와 박은식(朴殷植, 1859~1925)의 대동사회 실현 운동에 주목하고자 한다. 강유위는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적극 참여하여 국가를 바로 세워보려는 열망을 지녔다. 이는 기울어가는 나라를 지키려는 열정에 쌓여있던 한국의 박은식에게 영향을 미쳤다. 박은식도 국가를 구하기 위해 유교구신운동(儒敎求新運動)을 제창하고 포부를 실현하려 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흐름은 '인도상(人道上)의 요법을 주체'로 하는 정산 종사의 사상과 근본적으로 많은 부분 접근되고 있다.
 '大同'이라는 개념이 처음 보이는 것은 『서경(書經)』 홍범편(洪範篇)이다. 군주와 조정의 관리와 영적 스승과 국민의 의견이 일치됨을 가리켜 대동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후 문헌에서 대동은 천의와의 합치, 의견의 일치, 자연의 기(氣)와의 동화, 천인합일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내용은 『예기(禮記)』 예운편(禮運篇)에서 종합된다.
 '대동사회'는 대도(大道)가 행해지는 사회이다. 그 성격을 규정하는 대전제는 '공의(公義)가 구현'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시대적 정황에 따라 서로 다르게 드러난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사(私)적인 입장보다 공(公)을 중시하고 둘째, 균등한 사회로서 셋째, 모든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며 넷째,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해치지 않는 사회가 대동사회이다.
 근대에 세계의 패권 경쟁이 치열하던 혼란의 시기에 강유위는 당시 중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개혁에 몰두하였다. 그는 대동사상에 입각해 평등론과 사해동포 천하일가(四海同胞 天下一家)의 기치를 들었다.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욕망이 없이 산다는 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따라서 낙을 추구하고 고통을 취하려는 것(求樂去苦)이 인간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기의 행복을 추구함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즐거움은 사회 전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공동 선을 추구함이 옳다는 주장이다. 공동의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람마다 자립하며 평등해야 한다. 그는 인류의 영구평화론을 주장하는데, 국가의 경계를 허물고 세계를 통합하여 세계정부가 이루어질 때 전쟁이 없는 영원한 평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류의 영구 평화는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적 상태라 할 것이다.
 한국의 박은식은 근대화에 늦은 한국이 제국주의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에 유교사상을 기반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대동의 이상사회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스스로를 유학자라고 지칭하면서도 과감하게 주자학과 유림의 폐해를 비판하고 신학문과 신지식을 받아들여 대응책을 수립할 것을 주장한다. 국가 간의 생존경쟁이 치열하던 상황에서 개인의 삶은 국가와 사회의 운명과 직결될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나와 내 가정의 생존과 평온이 위협받는 위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공덕공리(公德公利)의 실천이다. 그는 과거에는 동족끼리만 살았기 때문에 서로 친목하지 않고 서로 돕지 않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경쟁의 시대를 맞이하여 공덕심과 공리심이 없으면 누구나 생명을 보존키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박은식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지녔음에도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표방한다. 당시는 분열 경쟁의 시대이나 앞으로 연합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세계 인류의 대동 평화를 지향하는 대동사상이 크게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19세기와 20세기는 서양문명이 발달한 시대이지만, 21세기와 22세기는 동양문명이 크게 발달할 것이라고 한다.

 삼동윤리는 정산 종사에 의해 1961년 4월에 발표되었다. 격동의 근대를 지나면서 세계는 전후의 혼돈과 폐허를 딛고 일어설 새로운 질서가 절실하던 시기였다. 삼동윤리는 이러한 시기에 인류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고 미래를 열어갈 '인류 보편 윤리'로 제시된다.
 그는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지금 세상의 정도는 어두운 밤이 지나가고, 바야흐로 동방에 밝은 해가 솟으려 하는 때'라고 한다. 과거의 시대를 밤의 시대에 비유한다면, 미래사회는 대낮과 같은 밝은 시대다. 밝은 미래의 시대는 첫째, 인지가 고루 진화하고 둘째, 주의 주장이 밝고 원만해진다. 셋째, 서로 소통하고 만나 넘나들며 활동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세상에는 사람들은 '모든 편견과 편착의 울 안에서 벗어나 한 큰 집안과 한 큰 권속과 한 큰 살림을 이루고, 평화 안락한 하나의 세계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길' 것이라는 전망이다. '삼동윤리는 곧 앞으로 세계 인류가 크게 화합할 세 가지 대동의 관계를 밝힌 원리'이다.
삼동윤리는 구체적으로 동원도리(同源道里), 동기연계(同氣連契), 동척사업(同拓事業)이다.
인지가 발달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그 근본은 다 같은 한 근원의 도리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이 인류의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각 종교들은 각자의 주장과 방편을 따라 교화를 펴오고 '종지에 있어서도 이름과 형식은 각각 달리 표현'되어 왔으므로 긴 역사 속에서 서로 이해되지 않은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인류의 정신을 깨우치고 세상을 바르게 인도하려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입장에서는 '모든 종교가 대체에 있어서 본래 하나인 것'이다.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는 '큰 정신'으로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교회가 다 한 집안을 이루어 서로 넘나들고 융통하게 될 것'이며 서로 '대동 화합'하게 될 것이다.
 모든 존재는 다 같이 한 근원의 형제인 한 권속이다. '하늘의 기운 하나가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우주 만유를 생성'하는 것이므로 모든 존재는 한 기운의 산물이다. '모든 인종과 생령이 근본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 화합하자는 것'이다.
 세상에는 여러 인종, 민족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각자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아왔고 그에 따라 서로 간격이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근본에 있어서는 '다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는 것'이므로, 열린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한 형제이다. 인류뿐 아니라 금수 곤충까지라도 본래 한 큰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천하의 사람들이 다 같이 이 관계를 깨달아 크게 화합하는 때에는 세계의 모든 인종과 민족들이 다 한 권속을 이루어 서로 친선하고 화목하게 될 것이며, 모든 생령들에게도 그 덕화가 두루 미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원리를 체득하고 마음에 '일체의 인류와 생령을 하나로 보는' 것을 그는 '큰 정신'이라고 명명하고 이러한 정신으로 '인류를 평등으로 통일'하자고 한다.
 그는 문명 긍정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륜하는 인간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나 다양한 주의 주장과 활동에서 유래된 혼란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모든 활동들이 '이 세상을 더 좋은 세상으로 개척하자'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악한 것까지라도 선을 각성하게 하는 한 힘'이 된다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안목에서 볼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안목에서 보면 '서로 이해하고 크게 화합'하게 되고 결국 인간의 현실적 행위의 최선의 가치 표준인 '중정(中正)의 길로 귀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사업을 하나로 보는 '큰 정신'을 지닐 때 이는 실현될 것이다.
 성숙한 큰 정신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인류 진화의 길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가장 우선되는 가치는 '公'과 '和'이다. 그는 '공심이 지극하면 자연의 도움'이 있고 '화(和)가 지극하면 천하의 기운이 따라서 통해진다'고 한다. 정산 종사는 결국 인간의 정신세계의 진화에 희망을 건다. 인간의 '큰 정신'이 이러한 이상의 대동세계를 이루는 주체가 된다고 한다. 즉 마음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며, 일체의 인류와 생령을 하나로 보며, 모든 사업을 하나로 보는 성숙한 인간의 정신이 이루어내는 세상이 이상의 낙원세계, 참 문명세계, 대도의 세계, 태평의 세계라고 할 것이다.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다양하게 논의되었던 이상사회의 청사진은 천하가 공의로 운영되는 균등한 사회이다. 강유위와 박은식 등이 국가의 생존과 동양사회의 존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동사회론에 근거하여 희망을 찾았다면 삼동윤리는 오늘날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조절하고 인류가 함께 평화로운 세상을 일구어갈 보편 원리로 제시된 것이다. 이미 하나의 문명권으로 화하는 과정에 있는 세계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인 셈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이 혼연일체가 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려는 대동사회의 정신이 실현되는 사회가 희망의 미래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전 교수(원불교학과)

1) 정산(鼎山) 송규(宋圭) 종사는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대종사의 뒤를 이어 원불교 초대종법사로 재임하였으며, 원광대학을 설립한 분이다. 그는 『건국론』(1945년10월)을 지어 한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삼동윤리(三同倫理)를 통해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원리를 제창하였다.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