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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제56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 당선작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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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5  09: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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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와 문예창작학과가 공동 주관한 제56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이 지난달 26일 60주년기념관 아트스페이스홀에서 진행됐다. 이번 백일장에는 총 319명의 고등학생들이 예심에 참여했으며, 예심을 거쳐 176명(운문 85명, 산문 91명)의 학생들이 26일 본심을 치렀다. 본심에 참여한 학생들은 제시된 '가방', '그림자', '사진', '이름'을 글감으로 작품을 써냈다. 공정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해 운문과 산문 각 부문별로 장원 1명, 차상 1명, 차하 5명, 입선 8명 등의 입상자를 가렸다. /편집자"

 

 

 [운문 부문 장원]

여름의 가방
  맨종아리 드러내고 여름이 왔다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왔다
  소리 내어 한글공부 하던 일층 할머니가
  굽은 등 더 굽혀 찔레꽃 앞에 앉아 계신다
  긴 한숨이 꽂향기에 섞여들어간다
  아이들이 땀 흘리며 줄넘기 숙제를 하고
  고양이가 벽에 매달린 무당벌레를 보고 길게 운다
  이름 모를 벌레에게 발등을 물리고
  뒤늦게 꺼낸 얇은 이불을 덮은
  동생이 밤새 뒤척인다
  집 나가려다 잡힌 옆집 할머니의 가방에는
  지분홍색 잠바뿐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렇게 열심히 꼬매입던 늘어진 속옷은 놔두고
  어디에 가려 하셨는지 모르겠다며,
  치매 걸린 어머니를 둔 아주머니가
  엄마를 붙잡고 오래 우는 소리를 듣는다
  밤이면 하늘이 주머니를 열어
  별자리를 크게 펼쳐놓았다
  멍든 다리 드러낸 맹인 여자가 안내견과 가만히
  장미 앞에 앉아있다
  모두 여름이 꺼내놓은 장면이다
  밤새 뒤척이던 나는 이불에서 나와
  여름의 가방을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겼다
 박서린(고양예고) 
 
 
[운문 부문 차상]
헌옷 수집함
 우리는 약지손가락에 박힌 굳은 살처럼 볼품없었지. 흐릿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앞에 일렁이며 우는 아스팔트와 서로 눈을 맞췄고, 그렇지? 느리하게 지나다니던 햇빛들과 눈알들. 우리는 서로 곁눈질을 하며 언제나 그렇듯이 입을 열었지. '그르릉' 소리를 내며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손바닥에 능숙하게 구토를 했어. 어디선가 듣던 고양이 소리가 아닐까. 설아, 덜그럭거리며 제 딴엔 열심히 돌아가던 선풍기를 기억해? 그곳에는 치장을 마친 귀족 부인 같은 우리들이 즐비했잖아. 그것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었지. 때 아닌 설한에 우리는 두려움에 떨었잖아. 혹시라도 초록색으로 서투르게 페인트칠 되어있던 그 방에 들어갈까 봐. 그 날의 우리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며 위태로운 팔을 삭혔지. 나는 등굣길에 흘려들었던 일기예보를 후회했어. 구겨트린 순백의 교복 셔츠와 순간들. 기계처럼 토해지던 학원 강사의 목소리와 누군가의 숨결. 설아, 우리는 이제 그런 멍청한 걱정은 누가 주어도 거절하잖아. 푸석거리던 팔이 '투둑' 소리를 내며 끊어지던 날, 나는 네가 영영 그 초록의 방에 들어가 헤어지는 것으로만 알았어. 다정하게 파고들던 은빛 바늘을 기억하니? 삐뚤삐뚤, 팔을 수놓으며 우리를 더 볼품없게 하던 그 바늘 말하는 거야.
 화려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앞에 우리 둘만 볼품없어도 좋아. 우리,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구토를 능숙하게 마치자.
 이채연(이리남성여고) 
 
   
▲ 제56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 시상식 장면
 [제56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 입상자 명단]
▶운문 부문
 <차하>
 변유빈(창문여고), 황주연(경산여고), 박이나(안양예고), 이준(서울광문고), 신원경(고양예고)
 <입선>
 최혜주(살레시오여고), 이서현(광주경신여고), 정새얀(안양예고), 김기범(경일고), 안휘(안양예고), 이소명(현일고), 서주영(서초고), 신하은(고양예고)
▶산문 부문
 <차하>
 이원희(중앙대사범부속고), 윤수빈(안양예고), 황보영(한국삼육고), 이세인(해룡고), 김선아(금옥여고)
 <입선>
 조아현(고양예고), 이예원(고양예고), 오세영(숭덕여고), 김가현(대광여고), 김도현(서울경문고), 지하늘(안양예고), 이희은(명덕여고), 구지영(검단고)
 
[당선 소감 - 운문 장원 박서린(고양예고)]
   
 
 엄마는 저녁마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려 나가십니다. 고양이들이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다며 해가 지자마자 사료 한 통, 물 두 통 챙겨서 서둘러 가십니다.
 가끔 저도 공부가 안되거나 시가 안 써지면 엄마를 따라가고는 합니다. 집에서 공원으로 가는, 그 짧은 길에 저는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태어난 지 고작 일 년 된 길고양이가 새끼를 가졌다거나, 차에 치여 죽은 길고양이가 도로에 그대로 있었다거나, 어제는 누군가 사료를 엎질러놓고 갔다거나, 슬프기도 화나기도 하지만 저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저는 크면서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아프다는 저만의 정의를 내렸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약자들의 이야기는 항상 저를 슬프고 무력하게 느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런 이야기들에게서 아예 피하기도 했습니다. 모른 체하고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압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수상작은 더 많이 알고 더 자세히 알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이해하자는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심사위원 분들께서 저의 생각에 동의를 해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선 소감 - 운문 차상 이채연(이리남성여고)]
   
 
 안녕하세요. 감사하게도 '원광 전국 고교 현상문예 백일장' 운문부에서 차상을 수상하게 된 이리남성여고 1학년 이채연입니다.
 홀로 예고 문창과를 준비하다가 비싼 학비 때문에 포기하고 인문계에 들어왔던 터라 감회가 더욱 새로운 것 같습니다. 예선을 통과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서 하루 종일 기분을 주체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차상이라는 값진 결실까지 보게 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대학 문창과, 나아가서는 시인으로 향하는 계단을 하나 올라선 것 같습니다. 상을 받았다고 해서 나태해지거나 교만해지지 않고, 많은 경쟁자들과 소통하고 대화하고 고치면서 열심히 시를 쓰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값진 상을 주신 심사위원 분들과 저를 끝까지 믿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운문 부문 심사평]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시로 포착하는 진실함 돋보여
 백일장 심사를 하다 보면 서투르거나 빈약한 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지적된다. 막연히 남의 시나 생각을 흉내 냈다든지, 상투적인 표현이 많다든지, 절제나 균형감 없이 사족이 많다든지, 지나치게 조작적이라든지, 시적 어휘의 운용이 어색하다든지 등등이다. 이에 반해 심사위원의 손길을 오래 붙드는 시편들은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논리나 질서를 뒤집고, 그렇게 물구나무선 현실의 질서 속에서 자기만의 시적 논리로 빛을 발한다는 공통된 특징이 발견된다.
 심사위원들은 일차적으로 신원경(고양예고)의 「회귀성 금붕어」와 박이나(안양예고)의 「그림자」, 이채연(이리남성여고)의 「헌옷 수집함」, 박서린(고양예고)의 「여름의 가방」에 주목했다. 이 중 「회귀성 금붕어」와 「그림자」는 언어의 선택과 시행의 구사가 안정적이었지만 지나친 시적 수사나 표현의 과잉이 오히려 시를 상투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 일부 지적되어 아쉽게 선자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들은 「헌옷 수집함」과 「여름의 가방」을 두고 고심했다. 「헌옷 수집함」의 경우 헌옷 수집함을 통해 은유화되는 일상의 풍경이 담담하게 묘사되고 있는 작품이다.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손바닥에 능숙하게 구토"를 해대는 헌옷 수거함은 오히려 능숙하므로 서툴기만 한 우리네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또한, "다정하게 파고들던 은빛 바늘"을 기억하는 헌옷 속에서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기억과 일상이 구토로 상징화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여름의 가방」은 얼핏 보면 단순하고 밋밋한 작품으로 읽힌다. 하지만 '한글공부 하던 할머니'와 '이름 모를 벌레', '치매 걸린 어머니', '멍든 다리 드러낸 맹인 여자'로 이어지는 은폐되고 소외된 자아들은 "모두 여름이 꺼내놓은 장면"으로 귀결된다. 그 풍경을 전체적으로 관조하고 있는 '나'는 "이불에서 나와/여름의 가방을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놓는 역설적 시선을 통해 시적 사유의 열림과 닫힘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한순간 시로 형상화해내는 담백함이 장점이다. 덧붙여 다소 서툴지만 시의 구절마다 묻어나는 고교생다운 진실한 사유가 사뭇 기특했다. 이에 최종 장원을 「여름의 가방」으로 결정했다.
 이 밖에 일일이 열거하지는 못했지만 백일장에 참가한 작품들 중 심사위원들의 입에 오래 머문 작품들이 여럿 있었음을 밝혀둔다. 그들 모두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강연호(시인, 문예창작학과 교수), 배귀선(시인), 나혜경(시인), 김정배(시인, 교양교육대학 교수), 서덕민(시인, 교양교육대학 교수)

[산문 부문 장원]
이름 없는 돼지
 나는 108번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나를 돼지라고 부르죠. 나는 김 씨 할아버지의 돼지 농장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108번입니다.
 "옆 동네 돼지들 정말 이사 간 걸까? 너무 부러워."
 옆 동네 최 씨 아저씨의 돼지들이 일주일 전부터 보이지 않아요. 소문으로는 더 커다란 농장으로 이사를 갔다던데 덕분에 내 친구 109번은 요즘 부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109번은 원래 활발한 돼지였는데 옆 동네 돼지들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 밥도 잘 안 먹고 기운 없이 늘어져만 있어요. 아마 부러워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 돼지들은 그런 병에 걸릴 일이 없다니까!"
 밖에서 할아버지의 큰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옷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들어와 우리를 검사하기 시작했어요. 차례로 입을 까뒤집어 살피고 발을 살피던 사람들이 109번 앞에서 한숨을 쉬더니 밖으로 나갔어요. 그 모습을 보던 할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멍하니 109번만을 보고 있어요.
 할아버지의 저런 표정은 처음이 아니에요. 일주일 전 최 씨 아저씨네 돼지들이 모두 이사 갔던 날에도 할아버지는 이런 표정을 지었어요.
 "망할 자식들 살려달라고 기어 나오는 것들을 눈 하나 꿈쩍허지 않고 삽으로 찌르고, 아주 천벌을 받을 끼여. 말 못하고 이름 없는 짐승이라고 혀도 그렇지. 그게 인간이 할 짓이여?"
 할아버지는 화난 목소리와는 달리 슬픈 표정이었어요.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시작했어요. 200명이 넘는 돼지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기 때문에 오래 걸렸지만 나와 109번은 신나는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사람들이 다녀간 후 밤에 우리를 찾아왔어요. 우리를 한참이나 보던 할아버지는 이내 들고 온 매직으로 우리 앞의 번호를 지우고 우리의 새로운 이름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는 108번 대신 희망, 109번은 행복, 200명이 넘는 돼지들의 이름을 다 쓴 할아버지는 불쌍한 내 새끼들이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젖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우리는 할아버지가 우는 이유도 모른 채 할아버지를 따라 꾸에엑 같이 울었어요.
 다음날 아침 우리 농장에는 거대한 포크레인과 어제 왔던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우리도 더 큰 농장으로 이사 가나봐!"
 109번 아니 행복이가 들뜬 목소리로 말하자 다른 돼지들도 기뻐했어요. 포크레인이 우리를 들어 올려 커다란 구덩이 안으로 쏟아 넣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그제야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하얀 옷의 사람들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기어 나오는 돼지들을 삽으로 다시 밀어 넣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이름을 계속 중얼거렸어요.
 "희망이 행복이 기쁨이 소망이……."
 돼지들이 모두 구덩이 안으로 들어오자 우리 위에는 흙이 덮어졌어요. 이제 겨우 이름이 생겼는데 그 이름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저는 더 이상 이름 없는 108번 돼지가 아닌 희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점점 눈이 감기네요. 이제 잠이 들 시간인 것 같아요.
 김희주(신서고) 
 
 
[산문 부문 차상]
형의 그림자
 마을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형사가 있었다. 성인이 되는 날, 마을 주민은 무조건 마을 뒤편에 있는 달맞이 산을 찾아가서 그곳에 있는 것을 마주하고 돌아와야 했다. 산에 있다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으나, 소문에 의하면 아주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마을 청소년이라면 대부분 산에 있는 미지의 무언가를 두려워하면서 지내다가 산에 오른다. 그리고 얼마 후 산에서 내려온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겁에 질렸거나, 아니면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들은 발 밑에 전에는 없던 그림자를 매달고 있었다. 그건 우리 일족에게 있어서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였다.
 그러나 아직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형은 그림자를 달고 있었다. 이례적인 일이었으나 마을 어른들은 형을 그럴 때마다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굽혔다. 형의 그림자도 그 행동을 똑같이 따라 했다. 나는 형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형과 행동을 같이 하지만 빛의 각도나 세기에 따라서 너무도 쉽게 형태가 변하는 모습은 왠지 기괴하게 느껴졌다.
 형과 동년배지만 생일이 이른 J가 산을 오르는 낮이 되었다. J는 조금 겁먹은 표정이었으나 촌장님이 막대기를 쥐여주자 애써 평정심을 찾으려는 듯 심호흡을 하며 막대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산의 입구를 지나 천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형은 내 옆에서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덧 파랗던 하늘이 붉게 물들고, 서서히 어두워지며 마을 굴뚝에서 연기 냄새가 올라왔다. 형은 드물게도 여기서 J를 기다리고 싶다며 낮에 나를 돌려보냈기 때문에 나는 도로 산 앞을 찾아가야 했다.
 J는 하산해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못 보던 그림자가 들러붙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J형, 어땠어? 나는 짐짓 친한 척 그에게 물었다. 음, 아무것도 없었… J는 그렇게 말하려다가 옆에 서 있는 형을 힐끗 바라보곤 말을 멈추었다. 원래 이거 말하면 안 되는 건데… J는 말 끝을 흐리며 난처하다는 듯이 웃었다.
 형, 아무것도 없다는 건 무슨 말이야? 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밤, 나는 내내 석연치 않게 생각하던 J의 말에 대해 질문했다. 그림자를 달고 있는 형이라면 이유를 알고 있을 터였다. 형은 나를 바라보았다. 표정 변화 없는 시선이 한동안 내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단체로 마을에 살잖아. 침묵 속에서 형이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혼자 남을 일이 거의 없어. 그래서 그런 거야. 단순히 예측일 뿐이지만, 아마 J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길을 계속 걸어 올랐을 거야. 좀 컸다고 혼자가 되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거지. 우리가 언제까지나 함께 하지는 않을 거잖아. 아무래도 나중에 외딴섬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에 절망하기 전에 미리 체험이라도 시키는 것 같아. 평소보다 말을 많이 한 탓인지 형은 살짝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자라는 말을 남기곤 슬쩍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나는 복잡한 생각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한동안 형이 나간 문을 힐끔거렸다. 그림자의 의미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잔잔히 가라앉아있던 형의 눈에서 그 의미를 읽어냈다. 어둠 속에 형의 그림자가 녹아들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형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정좋은(이대부속고) 
 
당선 소감 - 산문 장원 김희주(신서고)
   
 
 사실 입선이나 차하만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끝까지 내 이름이 불리지 않아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원에 익숙한 학교의 이름이 불리고 내 이름이 들리자 너무 놀라서 상을 받으러 가는 길 내내 떨었던 것 같다. 받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아 얼떨떨했다.
 구제역을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지만 글감에 맞게 글을 푸는 게 너무 어려워서 항상 다른 주제로 글을 썼었다. 이번 원광대학교 백일장 글감을 보고 이번에도 구제역을 주제로 쓰긴 힘들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계속 미루다가는 절대 이 주제를 써보지 못할 것 같아서 과감하게 도전해 봤다. 글감은 이름을 선택하여 돼지 시점에서 글을 썼다.
 이번 대회에서 상을 받게 되어 정말 뿌듯했고 고생해서 온 만큼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경쟁할 수 있어서 기뻤다. 다른 학생들도 백일장에서 상을 받지 못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당선 소감 - 산문 차상 정좋은(이대부속고)
   
 
 제56회 원광 전국 고교 현상 문예백일장에서 차상을 수상한 정좋은입니다. 이 상을 받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상당히 당황했습니다. 지금 이 수상소감을 작성하고 있는 순간에도 조금 얼떨떨합니다. 예선에 통과했을 때도 놀랐는데 이렇게 상을 받을 줄은 예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항상 백일장 같은 곳에 가면 긴장해서 구상한 이야기를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마치고 나왔는데, 이번 백일장에서는 다행히 제 마음에 드는 스토리를 생각해 내서 그나마 자신이 만족할만한 내용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제가 덜 긴장할 수 있게 편안한 분위기로 안내 말씀을 해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 제가 마음에 드는 글을 썼기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네 개의 글감 가운데 저는 그림자를 선택하여 창작을 했습니다. 저에게 그림자는 등을 돌린 사람입니다. 객체인 동시에 외로움을 품은 존재죠. 그리고 그림자를 어른의 증표로서 설정하고 외로움을 표현했습니다. 약간 터무니없는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차상에 당선돼 기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산문 부문 심사평]
공식 버리고 황무지 앞에 서 있는 상상
 '원광 고교 백일장' 산문부문 작품들은 기대 이상으로 다양했다. 물론 절반 정도는 10대 후반이 가질 수밖에 없는 체험의 한계와 주제의 피상성을 드러냈지만, 그 외의 작품들은 기성 문인들에게서 볼 수 없는 싱그러움과 에너지, 진솔함과 활달함을 내뿜고 있어 심사를 하는 동안 설렘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구성이 엉성하고 표현은 서툴지만 감정과 열정의 순도만큼은 어느 기성 전문작가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호소력 있는 창작품에 동일하게 해당되는 원칙이 있다. 독창성과 표현력, 그리고 문제의식. 이 수준을 성취하기 위한 왕도가 따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과 세상을 맞대면하려는 '리얼리티'의 정신이다. 이런 측면에서 훌륭한 작가가 되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은 획일적인 '대중문화'와 기성품의 '모방'이다. 문학적 감동은 공식이나 장르적 관습에서 오지 않는다. 해마다 백일장 심사를 앞두고, 우리 어린 문학 지망생들이 그동안 학교에서 배운 익숙한 모든 공식과 기술을 버리고 완전한 황무지 앞에 서 있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본다. 하지만 몇몇 작품들은 해마다 지적을 받고 있는 고질적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문장을 가지고 와서 백일장 주제에 억지로 맞추어 손질을 한 작품들이 적지 않았음은 글을 쓴 당사자인 학생들뿐 아니라 현재의 글쓰기 교육 시스템마저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글은 단순히 문장 겨루기가 아니라 글에 담긴 생각과 감정, 그리고 그 진정성을 겨루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만들어진 기성품의 문장들은 진정성과 신선도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다음 심사평에서는 다시 이러한 지적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좋은 것은 안 좋은 것을 덮기에 충분하다. 이번 원광 고교 백일장에서도 좋은 작품들은 빛이 나는 작품들이다. '빛이 나는' 문장과 '빛이 나는' 상상력이 있었다.
 장원에 뽑힌 김희주의 작품이나 차상에 뽑힌 정좋은의 작품 등은 구제역 파동과 생명 문제, 그림자와 성인식 등의 소재를 자신의 시각과 감각으로 재구성해내어 감동을 전달하고 있다. 두 사람과 함께 차하, 입선 등에 당선된 이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더 눈부신 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의 말과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상복(평론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영길(소설가, 문예창작학과 교수), 정은경(평론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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