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이다. 2017년 가을학기를 맞는 마음은 여느 때보다 진중하다. 지정학적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남북의 대립각이 미국의 국내외 문제 및 동북아에서 힘겨루기 양상과 얽혀지면서, 국제사회에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부각되었다. 아울러 새 정부의 개혁정책과 평가지표, 학령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 담론은 대학의 구조개혁, 학제개편, 전공자율화, 대학 간 적자생존과 교류 등의 필연성을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핵심 척도가 되는 것이 경제논리, 산업논리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우리의 상황은 유수한 대학들이 이상으로 삼는 르네상스 시대와 묘하게 닮아있다. 역사적으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되면서 학문과 문화예술 부흥기를 열었지만, 그 배경에는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 등 공국들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있었다. 하지만 수 세기 후에도 우리가 시공간적으로 머나먼 그들을 반복학습하며 선망하는 이유는 그 구성원들이 위기와 역경이 점철하는 생존경쟁 속에서 그토록 절실했던 경제와 장사의 논리를 중시하면서도 이에 휩쓸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양한 문화와 학문 간의 소통과 융합을 이루면서, 일이 년 내의 이익창출에 급급하지 않고 훗날 전 세계에 파급될 새로운 혼종(hybridity)의 온갖 문물들을 창출해 냈다.
   이 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상·학문·문화·견해의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톨레랑스(tolerance)의 정신이다. 구성원들 간의 개성·의견·입장의 차이에 대한 관용을 토대로 배양된 것이 르네상스 문화와 학문이다. 외교적·군사적 각축전을 벌이는 급박한 현실 속에서도, 문화적·학문적 민주주의를 일찍이 병행하여 수백 년 후 낯선 땅 대한민국의 대학 캠퍼스와 대중들 사이에서도 회자되는 문예부흥기를 연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도처에 만연하는 구태의연한 행정주의적, 관료주의적, 성과중심적 치리에 연연했다면 그 문화와 학문은 질식하였을 터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이 수직구조적 지식전수를 위해 비싼 등록금을 치르던 시절은 갔다. 격변하는 시대에 물고기 잡는 법 대신에 잡힌, 죽은 물고기를 건네주는 방식으로 대학이 유지되던 때도 지났다. 이제 대학생과 교수자는 학제개편, 전공자율화, 대학 간 교차학점제 등에 직면해 각자 신중한 선택 및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 구성원의 잠재력에 주목하고 이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현재 소유한 학문적·문화적 자산의 경제적·산업적 가치와 이를 자본화하기에 연연할 때, 결국 국내 대학의 '학문산업'과 '문화산업'은 본전까지 잃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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