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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건설 일본의 안도 쇼에키(安藤昌益)에게 발견되는 대동사상과 그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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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8  20: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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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 강좌 <글로벌인문학>, 교양 강좌 <생명평화리더십>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의 공통된 평화공동체구축 사상으로 대동사상을 들 수 있다. 이 사상을 이론적으로 전개한 일본의 사상가로 18세기 중기의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1707-62년)가 있다. 에도시대 중기 도쿠가와 봉건제 하에서는 신분차별과 지배자의 자의적인 억압 통치가 이루어졌으며, 또한 그가 생활하던 아오모리현의 하치노헤에서는 아사자가 1755년에 4-5천 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기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 채 체제를 옹호하는 학자(聖人) 및 승려에게 쇼에키는 매우 분노하며, 이러한 현실을 변혁하기 위해 자연과 일체화된 농경에 기반하여 인간해방의 이론체계를 세우고자 하였다.

 쇼에키에 따르면 인간은 '법세(法世)'(계급사회)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차별이나 억압이 없는 '자연의 세'라고 하는 평등하고 다툼이 없는 세계에 살고 있었다. 자연의 세에서는 자연, 사회, 인간이 자연의 법칙과 동일한 법칙에 따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쇼에키의 자연의 세는    『예기(상)』, 「예운 제9」에 서술되어 있는 이상사회인 '대동의 세'와 지극히 닮아 있다.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박광수 교수가 '「예운편」의 '대동'의 의미는 가족이나 동족 안에서 '사(私)'라는 인식이 없고, 쟁탈도 없는 것, 그래서 치안을 위한 예(禮)의 규제가 필요 없는 소박하고 원초적인 '공(公)'의 상태를 가리킨다'(『リ-ラ-「遊」』 Vol.8, 文理閣, 2014)고 서술했듯이, '대동의 세'란 자기중심주의와 '사', '공'의 대립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를 의미한다.

 '자연의 세'는 이상적인 '대동의 세'였으나, 국가나 권력의 창시자, 횡령계급 및 체제옹호 이데올로그(聖人), 승려들이 비인간적, 차별적인 '계급사회'로 바꿔버렸다고 쇼에키는 비난한다. 이 비판은 「예운 제9」에 보이는 '국가사회의 사물화(私物化) 비판'과 동일하다. 쇼에키의 분노의 화살이 '성인(聖人)', '승려'에게 향한 것은 '이분법'의 입장에 서서, 모든 것을 우열관계의 토대로 치환하여, 만물의 존재를 성립시키는 '자연(상호의존관계성, 운동)'을 철저하게 부정, 파괴하기 때문이다.

 쇼에키의 사회변혁이론에는 '이분법'에 따른 '우월자'와 '열등자'의 사회대립적 현실을 본래의 일원적, 일체적 상호관계로 되돌리는 비폭력적 변혁에 특징이 있다. 이는 현실에서 대립이 성립하도록 만드는 내용을 무력화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구체적인 대책으로 쇼에키는 '잘못으로 잘못을 없애는' 방법을 제기한다. 그 방법으로서 쇼에키는 지배자가 소유하는 모든 전답을 '최고통괄자'의 관리하에 두고, 일족의 생활을 조달할 수 있는 정도의 면적으로만 한정하며, 민중과 마찬가지로 농경에 종사할 것을 제기한다. 물론 '최고통괄자'도 다른 지배자와 마찬가지로 전답을 필요 이상 소유하지 않고 농경에 종사한다. '최고책임자'의 임무는 지배자들이 경작의무를 게을리할 때 그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배와 피지배라는 '계급사회'의 '잘못된 구조'를 이용하여 '계급사회'를 '자연의 세'로 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의 기저에서는 권력을 빼앗더라도 아무런 부를 얻을 수 없으므로 권력투쟁이 일어날 수 없다고 쇼에키는 주장한다.

 안도 쇼에키의 이러한 주장의 기초에 있는 것이 '호성묘도(互性妙道)' 개념이다. 쇼에키에 따르면 자연이란 '토활진(土活眞)'이라는 '근원적인 하나'의 자기운동을 의미하는데, '토활진'이라 불리는 자연은 운동인 동시에 서로 상호 대립함에도 불구하고 일체성, 비분리성, 상호의존관계를 내포한다. 쇼에키의 '호성묘도'를 살펴보면, 자연은 '호성'으로 정의되고, '호성'은 사물의 비분리성, 상호의존관계를 의미한다. '묘도'의 '묘'는 '일체성, 비분리성'을 의미하며, '도'는 '호성의 감(感, 운동)'이라고 서술되어 있듯이, '일체가 된 것'의 자기운동, 전개를 의미한다.

 쇼에키의 '호성묘도' 개념은 현존하는 사회체제, 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 않으며 상대적인 것으로 한다. 이 개념은 만물의 상이한 것들의 일체성, 상호관계성, 상호의존성과 자기운동을 합한 개념이다. 인간의 존재방식을 살펴보면, 쇼에키는 '인간'은 남과 여라는 상이한 존재의 일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일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남'과 '여'인데, 이 둘은 차이는 있으나 상하관계가 아니고 평등하다고 주장한다. 쇼에키는 '호성묘도' 개념의 '일체성', '상호의존성', '평등성'을 일관되고 철저히 함으로써, 계급사회의 '상하'관계의 적대적 내용을 '무화'하는 비폭력적 사회변혁에 따른 상생사회를 구축하고, 이로써 '자연의 세'라는 '대동의 세'의 실현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에 '이분법'에 바탕한 '구미형근대'를 넘어서는 현대적 의의가 존재한다.

 원광대 박맹수교수는 안도 쇼에키의 사상에서 '자연'의 근원적 개념 '(토)활진'과 동학사상의 '천'개념,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시대' 비판과 쇼에키의 '법세' 비판에는 큰 공통항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성인(聖人)'비판에서는 최한기(1803-77년)와도 공통항이 있음을 조성환 박사도 지적한다(『公共的良識人』 248호). 이처럼 '호성묘도' 개념에는 비폭력에 의한 아시아공동체 구축에 있어서 현재에도 배워야 할 많은 공통항이 있다.

 

 아시아의 평화공동체 구축을 방해하는 '야스쿠니문제'

 메이지 초기의 자유민권운동활동가였던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 1856-92년)에게도 대동사회로 연결되는 사상이 있다. 그는 구미식민지주의에 저항하는 아시아 민족들이 평등한 입장에서 추진하는 연대를 통한 유토피아적 세계의 실현을 든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성은 천황제국가의 확립과 아시아 침략 속에서 짓이겨져 간다.

 일본 근대 '국민국가' 형성에서는 종교의 '제사전례'를 국가에 가지고 들어와, 이를 통해 '종교성을 입은 근대국가'의 '영광화와 권위지속화'를 도모하고, '목숨을 바치는 순교적 충의(忠義)'를 국민에게 강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국가체제와 일체화된, 모든 종교의 위에 선 초월적 종교가 '국가신도'인 것이다. 1879년에는 '천황과 군과 신사를 직결한 특이한 종교시설(무라카미 시게요시[村上重良])'로서 '별격관폐사(別格官幣社) 야스쿠니 신사'가 설립되어, 국가신도적 영혼관, 위령관을 민중 차원으로 보급, 침투하게 된다.

 이러한 근대천황제국가의 방향성에 대해서, 일본 종교교단의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협력, 가담하여 침략전쟁의 길을 걸었다. 정토진종 교단에서 침략전쟁 가담의 이론이 된 것은 '진속이제(眞俗二諦)'론이다. '진제'란 종교적 진리를 의미하는데, 현실에서 신앙, 신심은 '마음속에서만 한정된 세계의 진실'을 대상으로 한다. '속제'란 사회적, 정치적 진리를 의미하는데, 현실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세속권력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진속이제'론은 정토진종의 개조인 신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상이다. '진속이제'론은 근대천황제국가 확립 속에서 진종교단의 자기존립의 근본 원리로 자리매김하였는데, '속제'= 천황제권력에 대한 정치적인 완전복종, '진제'= 천황과 아미타여래의 일체화로 파악되어, 목숨을 빼앗는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국가신도 시설인 전쟁 추진의 야스쿠니 신사는 전후에 종교법인으로 되살아났는데, 이 신사가 큰 문제가 된 것은 1969년 6월 30일 자유민주당에 의한 '야스쿠니신사법안'의 국회 첫 제출이다. 이 법안의 목적은 『야스쿠니의 전후사』(岩波新書, 2007)에서 서술하듯이, '야스쿠니 신사를 별법인(別法人)으로 하여 내각총리대신이 관할한다는 것에 있는'데, 내용적으로는 ''국가, 천황을 위해' 전사한 사람들을 신으로 모시는 '영령현창(英靈顯彰)'이란 야스쿠니 신사가 가진 국가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관철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 전 해인 1968년에는 전일본불교회, 신일본종교단체연합회가 법안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1969년 2월에는 정토진종 본원사파종회가 전회일치로 야스쿠니 신사 국가보호 반대를 결의하였으며, 전국 30여 개 곳에서 야스쿠니법안반대 집회가 열렸다. 정토진종에게는 '진속이제'론의 극복과 결합된 것이었다. 이 법안은 1969년 8월 5일에 폐안되었으나, 이후 1973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집요하게 제안된다. 하지만 모두 폐안되어 1975년에는 야스쿠니추진법이 전략을 '공식참배' 노선으로 변경하고,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야스쿠니국가보호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이를 철저히 했던 것이 1985년 8월 15일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의 '공식참배'였다. 나카소네 수상의 '공식참배'에는 자유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항의, 유감 성명 등을 내놓았고, '종교계에서는 전일본불교회, 진종교단연합, 일본그리스도교협의회, 일본가톨릭주교협의회, 일본침례교 연맹, 일본신종교교단연합회 등이 항의, 반대, 요청 등을 내놓았다. 이들의 내용은 다양하지만, '공식참배'는 일본헌법 위반이므로 반대한다는 취지는 일치했던' 것이다(고이즈미 수상 야스쿠니 신사 참배위헌 규슈, 야마구치소송단 편, 『したら違憲』, 明石書店, 2004년).

 야스쿠니문제의 세 번째 조목은 2001년 여름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이다.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는 이미 1991년 1월 '총리의 공식참배는 위헌'이라고 한 센다이 고등법원의 판단 및 1992년 7월 오사카 고등재판소의 판단을 무시한 것이고, 아시아 각국이 반복해서 일으키는 반발을 무시하는 것이다.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서 '2002년 9월까지 재일외국인이나 재한, 재미 전몰자 유족들을 포함한 약 2천 명이 국가, 고이즈미 수상, 야스쿠니 신사 등을 피고로 하여 전국    6개 법원에 '고이즈미 수상 야스쿠니참배 위헌소송'을 제기하였다. '야스쿠니문제'에서 민중이 '국민'의 경계를 넘어서 공동피고가 되어 위헌소송을 제기한 것은 유례가 없다(『靖の後史』)'고 한다.

 원고 중에는 전후에 태어난 정토진종 승려도 있었다. 이들의 진술서를 보면, 정토진종의 전쟁책임, 참회의 행위로서, 신앙에 기반을 둔 '야스쿠니문제'에 대한 대처 자세가 명확히 드러난다. 또한 불교인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는 운동은 다른 종교인, 특정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 재일한국인도 포함한, 타인과의 연대에 기반을 둔 것으로,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실현을 향한 새로운 방향성이 생겨나고 있다.

 

 맺음말

 2004년 4월의 후쿠오카 지방법원 판결은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헌법 20조 3항(국가 및 그 기관은 종교교육, 그 밖의 어떠한 종교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고이즈미 수상의 야스쿠니참배 이후 반야스쿠니운동은 정토진종 승려, 문도(신자)에게는 정토진종의 2개 교단이 행했던 전쟁협력에 대한 자기비판, 책임고백(정토진종 본원사파는 1991년 1월, 진종 대곡파는 1990년 4월)에 바탕을 둔 평화실현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근대의 어려운 시기에도 여순형무소의 간수인 지바 도시치와 안중근이 인간적으로 교류한 사실이 있다. 오늘날 한일 관계에서는 인권, 인도, 개인의 존중, 법치주의 등 공통항이 존재하며, 한일 기업 간에는 경쟁과 협력의 자유로운 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가 생겨나고 있음을 니혼게이자이신문(2013년 3월 24일)은 지적한다. 나 자신도 2012-2013년에는 한국연구자와 공동연구에 깊이 관여하여 지금도 공동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대학 교육 차원에서도 2014년도부터 규슈와 한국 6개 대학의 '아시아 태평양 칼리지'가 시작되었다. 반야스쿠니 운동을 포함한 종합적인 운동 안에 쇼에키의 '호성묘도'가 살려져 있다. 한일교류와 대화가 깊어지면 문화, 사상의 공통항이 명확해지고 연대가 강화되어 아시아평화공동체 실현이 가속될 것이다.

  기타지마 기신(北島義信)

  욧카이치대학(四日市大學) 명예교수

번역 : 송영은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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