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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봐] 새벽 기적소리에 마침표 찍던…원광문학 태동…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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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9: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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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우리대학 출신 작가들. 1 박범신(소설가)  2 윤흥길(소설가)  3 양귀자(소설가)  4 안도현(시인) 출처 : 위키백과, 뉴스줌
 우리대학 인문대 프라임사업팀은 가을에 '익산학'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지역학 연구는 지역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일. 이에 익산과, 익산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많은 박태건 교수(교양교육대학)의 글을 연재한다. /편집자
 
"이것은 오는 것이다. 구수한 즐거움에,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백석, '국수') 
 국수는 한밤중 은근한 기다림 끝에 먹는 별식이다. 늦게까지 깨어 있어 본 이들만이 출출한 밤에 먹는 국수의 맛을 안다. 이것은 이 특별한 맛을 유난히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P는 익산 '국수계'의 대모다. 젊었을 때는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말았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출근해서 P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큰 양철통에 육수를 끓이는 것. 밤이 깊어야 먹을 수 있었던 P의 국수는 술꾼들에게 유명했다. 국수를 먹기 위해서 일부러 술을 마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가격도 저렴해서 밤늦게까지 일하는 노동자와 술꾼들이 단골이었다.
 어느 날 P는 포장마차를 접고 국수가게를 열었다. 새벽에야 끝나는 장사도 힘이 들었지만, '맛있는 국수를 낮에도 먹을 수만 있다면 매상은 걱정 말라'는 단골들의 허풍도 일조했다. 대박이 났냐고? '전설의 국수'는 개업한지 얼마 안 되어 '쪽박'을 차게 되었다. 밤에는 그렇게 맛있던 국수가 신기하게도 낮에는 별 맛이 없었던 것. 가게 임대료까지 내고 나면 P의 손에는 별로 남지 않았다. 애당초 술꾼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P의 잘못이었다.
 P를 부추긴 손님 중에선 작가들도 있었다. 원래 작가란 허풍을 빼고 나면 별 볼일 없는 법. 작은 지방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익산은 인구 대비 작가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 가람 이병기가 씨를 뿌렸고 백릉 채만식이 새싹을 피운 익산문학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것은 6.25전쟁 직후. 전쟁이 끝나고 일자리가 부족했던 시절, 장순하, 조두현, 홍석영, 이동주, 최학규 등의 문인들이 남성학원의 교사로 부임하면서 익산의 1세대 문인그룹이 형성됐다.
 대부분 교사였던 1세대 문인은 퇴근을 하면 술집으로 몰려갔다. 핑계는 많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흐려서, 원고를 완성해서, 글이 잘 안 써져서…. 술집은 작가들에게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이자 토론장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시대와 불화하며, 외롭고 높고 쓸쓸한 자존감을 위로받았다. 루이스 코저는 『살롱, 카페, 아카데미-지식인과 지식사회』에서 지식의 사회적 유통방식을 18세기 살롱, 카페에서 찾는다. 밤늦게까지 포장마차를 돌며 지적 교유를 하던 이들이 원광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원광대학교에도 문학이 태동하게 된다.
 1세대 문인들의 열정은 정양, 이광웅, 박범신 등 남성고 출신 문인 배출로 이어졌고 이들이 최기인, 윤흥길, 양귀자, 안도현 등 원광대학교 출신 작가들과 어울리며 익산 지역의 문화적 자장이 넓어졌다. 어쩌면 한강 이남의 최고 문인사관학교라는 원광대학교의 별칭도 문인들의 술집 순례와 새벽 국수 전통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익산의 문인들은 사실 좀 나이브하고 소심했다. 시대의 무게를 짊어질 만큼 치열하지도 용기를 내지도 못했다. 그러나 시대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소시민적 삶에서 치열하게 꿈꿨다. 그래서 밤새 술을 마신 후에도 새벽 기적소리를 들으며 원고지에 마침표를 찍는 작가정신이 있었다.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그렇다고 거리를 두지 않으며 불의에 저항하는 것. 그것이 작가들의 유일한 저항이었다.
 그래서 P는 어떻게 되었냐고? 작가들이 좌절과 도전으로 글을 완성했듯이, P도 실패의 눈물을 삼키며 육수의 맛을 내는 데 도전했고, 드디어 '비밀'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새벽 기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던 가난하고 외롭던 사람들을 "구수한 즐거움에,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던" 진정한 국수를 만들게 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태건 교수(교양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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