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는 가능한가?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은 오랜 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정신적 가치와 종교문화를 공유해 왔지만, 19세기 중후반 근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세계정세의 급격한 변화와 유럽 국가의 강압적인 군사력에 의해 대내외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였다. 이에 대한 동아시아 삼국의 대처 방식은 달랐다. 일본은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유럽의 강대국을 모방하여 탈아론(脫亞論)을 내세워, 국왕을 중심으로 대동아(大東亞)를 건설하기 위한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당시 일본의 '동아협동체론'은 일본이 중국·아시아에서 감행한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낸 이론적 산물이었다. 반면, 중국과 한국은 사회체제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이상적 사회를 추구했으나 자체 동력의 부족으로 인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수탈을 당하였다.
동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모두에게 국가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웃 국가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는 평화공동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주어져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역사적 반성과 동아시아의 공공의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 중요하다. 종교문화와 정신문화적 관점에서, 오랜 전통의 토속적인 종교문화는 역사적인 뿌리이며, 유교·불교·도교를 비롯한 동양의 종교는 종교문화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경제적 신자유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의 평화공동체 건설은 가능한 일인가?
동아시아의 대동사상에 나타난 공공성의 가치와 평화공동체를 실현의 가능성에 대해 근대 한국의 민족종교 지도자 중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사상을 주목하고자 한다. 그의 일원(一圓)주의는 대동사상의 한국적 원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의 평화공동체를 위한 사상과 실천운동을 담고 있다.

소태산 박중빈의 일원주의와 평화공동체

소태산 박중빈은 현시대가 "묵은 세상의 끝이요 새 세상의 처음"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거대한 역사적 변천을 '원시반본(原始反本)하는 시대'라고 하였다. 이는 우주의 진리가 무시무종(無始無終)과 불생불멸(不生不滅)로 무한히 돌고 돌아 처음 출발한 근본 원점의 시대로 되돌아올 것임을 예시한 것이다. 선천 시대는 과거 시대로서 밤과 같이 어둡고 폐쇄되어 남북과 지역이 막히고 계급, 남녀, 종족, 지역의 차별 등 불평등의 시대로 서로 상극(相剋)으로 치달아 전쟁과 질병과 기아로 도탄에 빠진 시기라고 설정하는 반면, 후천개벽의 시대는 대낮같이 밝아 계급의 차이나 남녀의 차별이 없고 전쟁과 질병이 더 이상 없는 상생(相生)의 조화로운 세계라 본다.
소태산은 자신의 깨달음을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로 표명하였다. 그는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는 참 문명 세계를 이루기 위해 원불교 신앙의 요체인 '일원상'을 중심으로 사은(四恩), 사요(四要)와 수행의 요체인 삼학(三學) 팔조(八條)를 제시하고 있다. 일원상의 진리에 대한 신앙과 수행을 통해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해원 상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약방문으로 삼아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조화된 참 문명세계를 제시하고 실현하고자 하였다.
소태산은 모든 존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로 규명하고 있으며, 그 관계를 인과보응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필연적이며 원초적 은(恩)임을 강조하고, 그 범주를 4가지인 천지은(天地恩), 부모은(父母恩), 동포은(同胞恩), 법률은(法律恩)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원상생의 은혜로운 세계는 우주 내의 모든 생령뿐 아니라 우주 자체가 총체적으로 연기적(緣起的) 은혜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설정하고 있다. 없어서는 살지 못할 관계이기에 큰 은혜가 됨을 부모은, 동포은, 법률은의 강령에서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원불교의 사은사상은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임을 밝혀 모든 존재 자체가 은혜로운 생명의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소태산의 은사상은 그의 평화사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소태산은 「개교의 동기」에서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樂園)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라고 밝히고 있다. 소태산은 정신문명만 되고 물질문명이 없는 세상은 정신은 완전하나 육신에 병(病)이 든 불구자 같고, 물질문명만 되고 정신문명이 없는 세상은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에 병이 든 불구자 같다고 하여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고루 발전된 세상이라야 결함 없는 평화안락한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원불교가 지향하는 낙원 세계, '참 문명세계'는 물질(物質)문명과 정신(精神)문명이 조화된 세계이다. 일원상의 진리와 사은에 대한 보은의 행위를 통해 인류 공동체가 함께 마음 낙원, 광대무량한 낙원, 참 문명세계를 이루어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

평화공동체를 향한 과제와 새로운 도전

우리는 한민족의 홍익인간 정신에 담긴 인간존중과 생명존중사상을 통해 현대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와 사회의 병적 현상을 치유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 우리는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인류의 평화공동체가 안고 있는 문제는 다양한 차별 제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의 민족종교 지도자들은 조선시대의 계급질서 속에서 소외되고 억눌려 온 농민·여성·천민 등 피지배계급의 실존 상황에 주목하면서 그들의 존엄성을 구현되어야만 진정한 후천선경(後天仙境)의 시대인 상생(相生)의 시대가 전개될 수 있다고 보았다.
타인의 인격, 인권, 존엄성, 가치 자율성의 자각에 의해 진정한 평등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은 후천개벽사상의 중요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의 티베트 침략에 의한 다람살라 지역의 티베트 망명정부와 해외에 흩어져 정착하고 있는 티베트인들, 베트남 전쟁 이후 오갈 데 없는 '보트피플(boat people)',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내전으로 인한 파키스탄 지역으로 유입되어 산악지대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 중동의 극단적인 IS(Islamic State)와 관련한 시리아의 내전으로 인한 유럽에 유입되는 난민들, 아프리카의 내전으로 인한 난민들 등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수많은 난민들에겐 생존 자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기본적 인권보호와 생명 보존을 위한 세계인의 공동 대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해외 노동자에 대한 척박한 대우와 이들에 대한 미약한 법적 보호는 그들로 하여금 제2시민, 또는 어디에서도 천대받고 배척당하는 시민으로 전락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해외 이주노동자와 난민 등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보호와 생명존중이 필요한 시대이다.
둘째, 국가 단위의 민족중심주의에서 범민족적 보편주의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내에 '다국적 민족공동체(multi-national ethnic community)'를 형성하고 있는 외국인 거주자 또는 다문화 가정들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일본의 한국인 혐오(嫌韓)시위, 중국과 한국의 혐일(嫌日)시위 등 갈등의 고조는 민족적 배타주의를 양산할 뿐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상호 간의 성숙한 의사소통과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동북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의 공동체의식 공유는 민족과 국가 간의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전제로 평화를 실현하는 토대가 될 것이라 여겨진다.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의 힘의 우열이 아니라, 국내 및 국외의 구성원 상호 간의 조화롭고 유연한 협동적 「연성공동체(軟性共同體)」를 추구해 가야 한다. 공동체에 있어서 「협동적 의사소통(collaborative communication)」은 유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다양한 민족의 문화가 체제 이념의 도구화가 아닌 문화 소통(cultural communication)의 연성적 형태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적 정서와 감정을 공유하는 탈정치적 유연한 문화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은 영화와 음악 등 대중문화에 있어서 매우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대중문화가 정치적 이념과 민족의 차이를 넘어 아시아인의 민족적 정서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 본다.
한국인의 일본과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인 또는 중국인이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 동아시아 삼국이 각각 건강한 공동체 의식을 확보해 국가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도 이웃 국가와 선린 관계를 유지하며 평화적 공동체를 모색하는 길은 동아시아에 주어진 과제이다. 근·현대 한국, 중국, 일본의 서양문명 수용 양상과 정신문화적 가치의 특성을 이해하고 아시아의 종교문화에 담긴 사상과 보편윤리적 공공성을 발견하고 실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다문명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아시아적 정신문화의 가치를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세계시민정신과 관련한 대동사상과 종교문화에 대한 조명은 오늘날 현대인이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교훈을 재발견하게 할 것이다. 배타적인 자민족중심을 넘어선 범민족주의, 국가 이기주의를 넘어선 호혜주의, 배타적 종교의 근본주의를 넘어선 열린 종교와 열린 문화의 교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인류 사회가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다문명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평화 문명의 정신적 가치 실현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박광수 교수(종교문제연구소장, 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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