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에 발행된 중등교과서에 '명절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자료 사진이 실려 있었다. 거실에 한복을 입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푸짐한 차례상에 차례를 지내는 모습, 성묘를 가거나, 단란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 등이 찍힌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명절의 모습'은 어떨까? 차례, 성묘, 식사 이외에도 여행을 가거나, 가더라도 오래 머물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집에서 쉬기도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추석 차례 여부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주부 패널을 통해 599명을 조사한 결과, 2016년에는 74.4%가 '차례를 지냈다'에 응답했으나, 2017년에는 71.2%로 3.2% 감소한 모습을 보였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강산이 변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명절 문화는 확실히 변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명절 문화가 점차 간소화돼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절음식, 이젠 구매한다
 명절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명절 음식이다. 먹는 사람이 있으면, 만드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재료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이즈음 전통 시장, 대형 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시장부터, 인터넷 쇼핑몰과 같은 온라인 시장도 명절 특수를 누린다. 많은 가게 사이에서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있다. 전 가게, 반찬가게와 같이 차례 음식과 관련된 가게들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재료를 사던 과거에 비해서 완제품을 사는 고객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특히, 만드는 데 많은 수고가 들어가는 전과 부침은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손님이 몰린다.
 향이나 제기 같은 제사용품을 파는 곳은 예전부터 흔히 보였다. 그러나 차례상을 통째로 파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최근 이런 상품이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대부분의 음식들을 조리해 택배로 보내준다는 구성인데, 소비자들은 수고도 덜고, 가격대도 다양해서 '대체로 만족한다'는 평이다.
 
 
 해외로, 해외로, 왜?
 '간소화'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걸까? 자료들은 크게 두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2인 가구가 늘어나는 '가족 체계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간소화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향은 '스트레스'를 지목하고 있다.
 앞서 사람들이 오늘날 명절의 모습 중에 '여행을 떠난다'는 말처럼 어딜 가나 막히는 국내여행보다는 상대적으로 쾌적한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달 29일부터 9일까지 11일간 모두 206만 3천 666명이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한 것으로 추산됐다고 밝혔다. 공사에 따르면, 연휴 기간에 하루 평균 공항 이용객 수는 역대 연휴 가운데 최다를 기록했다고 한다. 당초 공항측이 예상한 195만 명보다 무려 10만 명 가량 많은 수치다.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왜 여행 이야기로 빠졌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스트레스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만 좀 하세요! 저도 힘들다고요
 2016년에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가 20~50대 남녀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이 중 전체 응답자의 50.1%가 "명절 스트레스 때문에 추석 여행을 계획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각 세대별로 꼽은 스트레스 요인도 흥미롭다. 20대는 '취업, 결혼 등에 대한 잔소리'를 꼽았고, 30대는 '명절 음식 장만'을, 40대는 '교통체증'에서 가장 많이 꼽았다. 통계만 놓고 보면 2명 중 한 명은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명절에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다.
 취업이나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피해, 명절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취준생도 적은 편은 아니다. 고향집에 가느니, 차라리 연휴 기간 동안 비싼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김하늘 씨(토목과 3년)는 백화점에서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소보다 고객이 많아 힘들었지만, 일당이 높기 때문에 용돈벌이가 됐다"고 말했다. 취업 공부를 하고 있는 김홍태 씨(산림조경학과 3년)는 "취업 공부하는 것을 가족들 모두가 아는 데, 질문 공세를 받을 것 같아 독서실에서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고 한다.
 취준생이 정신적으로 힘들다면, 육체적으로 힘든 사람도 있다. 바로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까지는 여성이 요리나 뒷정리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유교가 특히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뿌리 깊게 박혀있는 사고방식이었다. 하루 종일, 가족 규모가 크면 클수록 만들 음식은 많아지고, 해야 할 일들도 늘어난다. 심지어는 직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명절 준비에 들어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노동도 스트레스지만, 가족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 속에도 스트레스를 자극하는 소재들은 너무나도 많다. 몸무게, 입시, 취업, 연봉, 음식, 정치뿐만 아니라, 아는 사람 아무개 씨와의 비교와 같이 생각만 해도 가시방석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명절 문화는 변하고 있다. 앞서 말한 가족 체제의 변경, 스트레스 이외에도 다른 요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와 닿는 부분은 역시 '스트레스'다. 명절이 끝나고 이혼하는 부부가 평소의 2배가 넘는다고 한다. 부부 각자가 가지고 있던 평소 쌓인 서운함이 엄청난 가사노동, 교통체증이나 원하지 않는 술자리에서 얻은 불만과 합쳐지면서 폭발한 결과다. 조상을 모시고,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갈등과 낭비만이 있다면, 이 자리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명절간소화는 지금까지 쌓여온 거품을 빼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중에서도 '과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물질적 풍요보다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 과시하기 위한 상차림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과시'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엄청난 가사노동도 줄일 부분이 많다. 정확하게는, 일을 줄이는 것보다 일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여자만이 음식을 만져야 하는 시대 또한 지나갔다. 지금은 '함께하는 시대'기 때문이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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