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연속기획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란 제목으로 의사소통교육센터의 <세계고전강좌>와 공개 강좌 <글로벌인문학>, 교양 강좌 <생명평화리더십> 강연 원고를 번갈아 싣는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기 바란다. /편집자

 

 

 우리의 주제이자, 샌델의 또 다른 저작인 『정의란 무엇인가』(2009)는 본래 강의를 바탕으로 구성된 책이다. 이 책에서 샌델은 정의에 대한 기존의 중요한 견해들을 검토한다. 아울러서 이 견해들이 우리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도덕적·정치적인 문제들을 둘러싼 논쟁들에 적용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각각의 이론들이 지니고 있는 특징과 한계를 지적하여 공동체주의적 입장이 그 어떤 이론보다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보다 강력한 이론적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의에 관한 주요한 견해들로는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첫째, 정의란 복지의 극대화이다. 이것은 벤담과 밀 등의 공리주의적 사고에 해당한다. 둘째, 정의란 자유의 존중이다. 이 주장에는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적 견해, 칸트의 견해, 그리고 공정성을 강조하는 롤즈의 자유주의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다. 셋째, 정의란 미덕의 배양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매킨타이어 등의 덕 윤리적 혹은 공동체주의적 사고에 해당한다.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모든 도덕적 주장은 도덕의 최고 원칙인 행복의 극대화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한 행복의 극대화란 쾌락의 총량을 고통의 총량보다 많게 하는 것을 말한다. 벤담이 볼 때, 옳고 그름의 기준은 고통과 쾌락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쾌락이나 행복을 가져오고 고통이나 불행을 막는 일체의 행위는 무엇이든 옳은 행위이며, 이런 행위야말로 공리(utility)를 극대화하는 행위이다. 공리의 극대화 원칙은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입법적 차원에도 적용된다. 정부가 어떤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이유는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려는 데 있다. 그러나 공리주의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모든 개인들의 만족의 총합에만 관심을 갖는다. 도덕적 문제조차도 쾌락의 양과 고통의 양이라는 하나의 잣대로만 측정하려 든다.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은 인류의 최대 행복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다수가 소수의 반대 의견을 억압하거나 정부가 자유사상가를 검열한다면, 당장은 공리가 극대화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사회가 불행해질 것이다. 또한 그는 무엇을 하는 우리의 행위와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할 때 우리가 갖는 태도, 즉 인격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밀은 벤담과는 달리 욕구의 질에 따라 쾌락을 고급 쾌락과 저급 쾌락으로 구분한다. 샌델은, 공리주의에 대한 밀의 탐구가 모든 것을 쾌락과 고통으로 나누고 그것을 양적으로 계산하는 벤담의 이론이 지닌 약점을 극복하려는 시도였으나, 오히려 공리와 무관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반영하는 개성을 강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한다. 이제 욕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이 고상하고 무엇이 저급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노직(Robert Nozick, 1938~2002)은 계약의 이행과, 사람들을 폭력·절도·사기로부터 보호하는 제한적 기능에 국한된 최소국가만이 정당화되며, 개인이 누군가를 강요하거나 사기 치지 않고 자유로운 선택으로 시장 경제에서 부를 얻었다면 그것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을 내가 남에게 강요하거나 내가 남으로부터 강요받아서는 안 되듯이, 가난한 사람을 돕도록 부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이 볼 때, 내가 노동을 하여 얻은 소득에 국가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나에게 그만큼의 강제 노동을 시킨 것과 같다. 이것은 국가가 나를 소유하고 있으며, 내가 국가의 노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 몸, 내 생명, 나라는 인간은 국가가 아닌 내가 소유한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것으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내 자유이다. 이런 논리는 자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장기 거래나 안락사의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적용은 우리 삶이 지니고 있는 함축적 의미를 놓칠 뿐이다.

 자유 시장과 관련하여, 모병제와 징병제 간의 논쟁을 살펴보자.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징병제를 강제성을 띤 일종의 노예제로 본다. 공리주의자들은 주어진 보상, 즉 적정 급여와 복리 후생 등을 고려해 스스로 입대 여부를 결정케 하는 모병제를 선호한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군 복무 이외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지원한 경우도 있다. 군 복무의 선택이 한 사람의 취향을 반영한

정언 명법1 :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
정언 명법2 : 자기 자신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인간을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다루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목적으로 다루도록 행위 하라.

결과가 되려면, 괜찮은 직업을 폭넓게 고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병제는 공정하거나 자유롭지 않다. 군인을 고용해 나 대신 전쟁터에서 싸우게 하는 행위는 국가에 봉사해야 하는 시민의 의무를 저버린 잘못된 처사이다. 모병제는 시민의 정치적 책임의식을 약화시켜,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을 해친다.

 자유 시장과 관련하여, 돈을 주고받는 대리 출산의 사례도 살펴보자.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계약이 선택의 자유를 반영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리 출산 계약에 찬성한다. 공리주의자들은 계약이 전체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그것을 지지한다. 그러나 칸트적 견해는,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과 존엄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인간이 물건처럼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를 들어 대리모 출산에 반대한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는, 어떤 사회적 행위의 규준을 찾으려면 그 행위의 특수한 목적이나 목표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에 반대한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따르면, 이성에서 나오는 법칙, 즉 그 자체로 도덕적·절대적 명령을 내리는 실천 법칙인 정언 명법에 따라서 자율적으로 행위 하거나 그것에 지배될 때만 나의 의지의 자유는 보장된다. 내가 스스로 부여한 법칙으로서의 정언 명법은 다음과 같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 존중의 의무는 사랑·공감·연대감·

제1원칙 : 언론 및 종교의 자유 같은 기본 자유가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주어져야 한다.
제2원칙 : 불평등한 사회적·경제적 배분은 (a)사회 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동료애 등 때문에 인간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인간 그 자체와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존중의 의무일 뿐이다. 또한 그는 어떤 행위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를 '의무동기'라고 부르며, 자기 이익·자신의 바람·욕구·기호·식욕·동정심 등과 같은 동기를 도덕적 가치가 결여된 '경향성 동기'로 간주한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성을 경향성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자유로운 성관계, 돈을 위해 자신의 치아를 파는 행위, 매춘 행위 등에 반대한다. 그리고 사회는 행복에 대한 어떤 특정한 생각 하나만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할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 롤즈는 분배적 정의의 문제를 미덕이나 도덕적 자격에 대한 포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원칙에 따른 합법적인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권리의 문제로 본다. 그래서 그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정의의 원칙을 선택할 것을 제안한다. 원초적 입장에는 합의 당사자들 간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힘을 모르는 것으로 간주하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장치에는, 소득과 기회의 분배는 출생·서로 다른 출발선·타고난 자질 등의 우연성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는 도덕적 주장이 전제되어 있다. 원초적 입장에서 도출한 정의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정의의 문제에서 롤즈가 묻는 것은, 부자들의 재산이 그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사회 체제에서 형성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잘살게 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은 차등의 원칙[제2원칙 (a)]에 부합한다. 이 원칙에는 사람들의 타고난 재능은 공동 자산이므로 그 재능으로 얻은 이익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축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322)는 정의에 관한 논쟁을 영예·미덕·좋은 삶의 본질에 관한 논쟁으로 이해한다. 정의는 자격 있는 사람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그들에게 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공직과 영예의 분배에 대한 문제에 앞서 정치의 목적부터 해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치의 목적은 시민들이 좋은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시민을 양성하고, 그들의 좋은 자질을 배양시켜, 공동선을 고민하게 하고, 판단력을 기르게 하며, 시민 자치에 참여케 하고, 공동체의 운명을 보살피게 하는 등의 폴리스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고 공직이나 영예는 적합한 사람, 즉 시민의 미덕에서 가장 뛰어나면서도 공동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 1929~   )에 따르면,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 즉 서사적 존재다. 내 삶의 서사는 내가 속해 있는 이야기들과 내가 친숙해져야만 이해될 수 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이나 딸이며, 사촌이거나 삼촌이며, 어떤 도시의 시민이면서 어떤 조합이나 전문가 집단의 한 사람이고, 어떤 친족이나 부족과 나라에 속한다. 이것은 내가 속해 있는 가족·도시·친족·나라 등의 과거로부터 내가 다양한 부채·유산·정당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도덕적 책임이 발생하며, 이것은 '연대의 의무' 또는 '구성원의 의무'에 근거한다.

 샌델은 연대의 의무와 관련하여 애국심을 논한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말처럼, 애국심은 감정의 범위를 제한하여 동지 원칙을 강화하는 것이므로, 동일한 정치 공동체 속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시민들은 서로에게 의무와 책임을 갖게 된다. 그런데 연대와 소속의 의무에는 동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지는 의무 말고도 그 공동체가 범한 역사적 잘못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도 포함된다. 역사적 잘못에 대한 도덕적 책임, 즉 집단적 사죄와 보상의 실천은 자기 나라에 충성을 맹세하는 방법이자, 진정한 애국적 자부심을 갖게 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명예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자격 있는 사람들에게 배분한다. 여기에는 좋은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하며, 도덕적·종교적 가치판단이 언제든 개입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 의식 또한 필요하다. 공동체 의식은 사회 전체에 대한 시민들의 염려와 공동선에 대한 그들의 헌신으로 형성된다.

홍성우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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