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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벌 단상] 반복이 가능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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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06  19: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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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미 교수(영어영문학과)
 어릴 때부터 맛있는 것을 좋아해서, 오직 먹을 것을 위해 유별난 일을 많이 했다. 장대비가 내리는 날 덩킨 도넛 하나를 먹기 위해 신림동에서 여의도까지 가기도 했고, 좋은 밤이 드문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알밤 같은 딱 그런 밤을 사기 위해 학교에서 아주 먼 동네를 버스로 다녀오기도 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웬만한 고생은 감수하는 사람은 또 그 맛있는 것을 처음 먹은 날을 아주 생생히 기억한다. 30여 년 전 농익은 거봉 포도를 처음 맛본 날의 감동은 지금도 뭉클하다. 얇은 식빵에 도톰한 햄을 얹고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듬뿍 발라 커피와 먹은 날 역시 내 20대의 하이라이트였다. 유학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 역시 도착한 다음날, 검붉은 색의 거대한 체리를 처음 깨문 그 시각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또 한 번, 아니 아주 여러 번 다시 먹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지 20년 만에 모교에 다시 간 적이 있다. 교수님과 친구들도 보고 정든 교정도 거닐었지만, 정말 돌아왔다고 느낀 것은 두 친구와 같이 다니던 식당에 모여 그 집의 유명 메뉴인 어니언 수프를 맛본 순간이었다. 뜨거운 도기 그릇에 담긴 치즈를 살짝 밀치고 그 진한 국물과 달큰한 양파를 먹었을 때, 옛날에 나눈 수많은 대화와 즐거운 순간들이 모두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반복을 요구한다. 평생 단 한 번 누려도 좋은 즐거움도 있겠지만, 대개의 기쁨은 반복과 지속을 생명으로 한다. 비평가 H. L. 멩켄(Mencken)은 자기 취향에 따라 섬세하고 부단하게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delicately and un-ceasingly amused according to my taste") 바로 행복이라고 말한 바 있다 (『Prejudices: Third Series』, Alfred A. Knopf, 1922, p.      12). 신경과학자들에 의하면 고전음악의 즐거움 역시 근본적으로는 학습된 어떤 기대가 반복적으로 충족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Robert J. Zatorre & Valorie N. Salimpoor, "Why music makes our brain sing," 『International New York Times』, June 13, 2013, p. 9). 그리고 그럴 수 없을 때 우리의 영혼은 불행하다. 아무리 오묘한 기쁨일지라도 단 한 번으로 끝난다면 그런 불행이 없을 것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 행복은 모르고 지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해마다 봄이면 딸기 타르트를 먹으며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웠던 소공동 레스토랑, 단짝과 같이 가던 광화문의 커피숍, 멋진 문구류와 양서들로 가득한 서점, 언제 들러도 좋았던 익산 중앙시장의 고전음악실… 이 모두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매년 이맘때 나오는 『베스트 아메리칸』 시리즈 책들 (1915년~), 매주 최고의 시와 단편을 선보이는 『뉴요커』 매거진 (1925년~),  『뉴욕타임스』 (1851년~), T. S. 엘리엇, 버지니아 울프, 이탈로 칼비노, 밀란 쿤데라, 오르한 파묵의 글을 게재했던 『TLS (Times Literary Supplement)』 (1902~)를 평생 읽고 싶다. 광화문의 커피숍에서 만나던 그 친구를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다. 그처럼 가슴 뛰는 지속, 그처럼 달콤한 반복이 가능한 사회가 되면 좋겠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기억의 형성과 패턴화된 축적에 다름 아닌 각자의 정체성 덕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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