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은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말 그대로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주로 경험적 접근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분석적, 비판적, 사변적인 접근을 용인한다.

 그러한 인문학이 서양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대별로 유행하기도 했으며, 요즈음에는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강의가 되었다. 특히 인문학만을 강의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 등의 실용학문과 접목시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방편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과거에 인문학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기도 하다.
 동양의 공자의 『논어』 등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전개했던 도올 김용욱 교수가 있는가 하면, 요즈음에는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가 강의하는 르네상스 미술은 또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서울대학교 오순희 교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강의 주제들은 우리가 어릴 적에 한두 번은 들어본 것들이다. 우리 학교에서 수행하는 후마니타스 사업에서도 독후감을 시상하는 제도가 있다. 과거 대가들의 문학작품을 읽고 그 소감을 피력하는 내용을 심사하는 것이야말로 미술의 입장에서 보자면, 중국의 남제 시대의 화가 겸 이론가였던 사혁(謝赫)이 『고화품록(古品錄)』에서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여섯 가지 항목 중에'전이모사(轉移模寫)'라는 것과도 유사한 경우이다. 즉 어느 화가든지 유명해지려면 스스로 독학하는 경우도 가능하지만, 그보다는 과거 대가들의 그림을 모방함으로써 그의 필법뿐만 아니라 그의 사상이나 철학도 자연스럽게 체득함으로써 비로소 더 유명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듯이 현재 사람이 과거 사람의 것을 모방하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요,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방편인 것이다. 예를 들어 공자의 『논어』가 당대의 사건이나 상황을 소재로 기술한 것이지만, 그것은 그러한 특수(特殊)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보편(普遍)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도 하나의 수학공식에 상황에 맞는 수치를 대입하여 필요한 결과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요즈음의 인문학 강의에서는 새로운 시도가 시선을 끌고 있다. 인문학을 인문학의 관점에서만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수요층에 따라 알맞게 각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도'STEAM 교육'이라 하여 제 과학과 예술을 접목한 새로운 학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즉 새로운 21세기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겸비해야만 한다는 명제 아래서 이러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는데, 양자를 접목해주는 주요한 수단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인문학 강의들은 과거의 어느 교재를 대상으로 하든지 거기에는 해석학에서 요구하는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접근이 교차된 견해들이 등장한다. 하나의 과거 사실이나 이야기가 수직적, 수평적 접근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이정표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흥미를 끄는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그 강의들에서 우리의 삶에 필요한 에너지를 끌어내도록 해야만 한다. 인문학 강의를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보면 거기에는 거의 예외 없이 부제가 첨가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현재를 빗대어 조명해보려는 용어들인 것이다.
 이렇듯이 과거의 소재들을 끌어들여 전개하는 인문학 강의들은 현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로 우리의 삶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어떤 인문학 강의를 듣더라도 그 강의의 결론은 바로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가 바로 요즈음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새롭게 우리 스스로를 뒤돌아보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되는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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