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조상은 동굴에 간단한 그림을 그려서 의사를 표현했고, 이후 한자가 들어오게 되면서 지명, 인명 등을 한자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앞으로 몇 주에 걸쳐서 선조들이 우리말을 표기하려 한 방식에 대해 훑어보고, 나아가 세종대왕의 우리말에 대한 인식까지 알아보려 한다. /편집자
 
 지난 호에서는 '신라의 시조는 혁거세로 불리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다뤘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있을 듯하다. 관련되는 공무원 시험 문제를 아래에 제시하기로 한다.
 (문제) 다음 글을 잘 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에는 '새말'이라는 마을이 많다. 특정 마을에서 분파되어 나오면 거기가 새말(새마을)이 되는 셈이다. '새말'은 바로 '新村(신촌)'이나 '新里(신리)', '新洞(신동)'의 다른 이름이다. '새말'과 비슷한 또 다른 마을 이름으로는 '신기(新基)' 혹은 '신기촌(新基村)'이 있다. '新基'라 적고 '새터'라 읽었으며, '新基村'이라 적고 '새터말'이라 읽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이제는 알 것이다. 서울 2기 지하철(5∼8호선) 역명 중 일부는 이러한 석독(釋讀)의 정신과 관계된다. 성북구 석관동(石串洞)의 '돌고지역', 은평구 신사동(新寺洞)의 '새절역', 서대문구 '아현동(兒峴洞)'의 '애오개역'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① 영규 : '漢陽(한양)'이라 적고 '서울'로 읽었을 확률이 높겠군.
 ② 수철 : '모래내'라는 지명이 많이 보이는데 그것을 석독하면 '사천(沙川)'이 되겠군.
 ③ 희선 : '大田(대전)'이라 적고 '한밭'으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한밭'이 바로 석독이군.
 ④ 미진 : 광해군 때의 상궁 '김개시(金介屎)'가 있었는데 그 '개시'가 바로 '개똥'이야. '개똥'은 음독자로 이해해야 하는군.
  ☞ 정답 ③ : 필자가 출제함.
 
 관련 내용이 공무원 시험에도 출제된 적이 있으니 공무원 시험을 대비하는 원광인이라면 이 정도의 글은 읽어낼 수 있어야겠다. 지난 호에서는 고유명사 표기 중 인명, 지명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어서 관명(官名)으로 넘어가 보자.
 신라에는 '角干(각간)'이라는 관직명이 있었다. 과연 어떻게 읽혔을까? 음독을 하면 각간이지만 '혁거세', '신촌' 관련 표기들로 미루어 볼 때 '각간'으로 읽혔을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김유신은 角干(각간), 大角干(대각간), 太大角干(대대각간)을 거치게 된다. 진성여왕이 '각간 위홍'과 '대구화상'에게 삼대목을 편찬케 했다는 기록도 있다. 본격적으로 『삼국사기』에 병치된 기록, '각간(角干)', '서발한(舒發翰)' 등을 통해 그 독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角干 或云舒發翰, 或云舒弗邯
 角干(각간)은 '뿔 각', '방패 간'이다. '干(간)'은 '翰(한)/邯(한)'과 병치되어 있다. 사실 干은 칭기즈칸, 쿠빌라이칸의 '칸', '가한' 등 우두머리를 뜻하는 것이다. 15세기 '슬'을 표기한 것이 '舒發(서발)/舒弗(서불)'이다. 그러므로 '각간'은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른 '스블한' 정도로 읽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각간'을 '酒多'로 표기한 사례도 보인다. '술 주', '많을 다'이다. 술의 고어는 '수 ', '많다'의 고어는 '하다'이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여라'에서 '하'는 '많이/몹시'라는 뜻이다.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한비 들으쇼셔 한비 들으쇼서'는 '많은 비/큰 비 떨어지게 하소서'라는 뜻이니 '酒多' 역시 '수불한/스벌한/서벌한'과 비슷하게 읽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관직명, 우리가 잘 아는 '이사금(尼師今)'도 '치질금(齒叱今)'과 병치되어 있다. '치질금'이 어감이 안 좋은 듯하다. 처음부터 '치질금'이라고 했다면 우리 입에 '이사금'은 오르내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齒叱今(치질금)'의 첫 글자는 '니 치'이므로 '치질금'의 '치'는 뜻, '니'로 읽은 것이다. 그러니 '니스금' 정도로 읽혔을 확률이 높다. 즉, 두 가지 표기는 오로지 하나로만 읽혔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닛금'인 것이다(叱은 고대국어에서 ㅅ을 표기한 것이다). 15세기 이전에는 '닛'을 지금처럼 발음하지 않았다. ㅅ을 종성에서 발음했다는 증거는 많다. 그러니 '닛금'은 '니스금'과 비슷해진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명, 지명, 관명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런 식으로 우리 선조들은 한자를 이용해 표현 욕구를 어느 정도 채워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만족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문장 단위로 표현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은 자명하다. 다음 호에서는 구결, 이두, 향찰에 대해 학습하기로 한다. 

임석규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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