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종이. 그 위로 빼곡히 새겨진 검은 글자들. 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아마 책이 떠오를 것이다.

 책은 한 나라의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라고도 한다. 그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는 자국의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해낼 수 있는 책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출판문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출판문화는 점점 침체되고 있다. 국내 출판사 전체 매출액이 점점 줄어들고, 영업이익이 감소하고, 단행본 출판사의 1/4이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왜 유독 우리나라 출판문화에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돈의 문제도, 노력의 문제도 아닌, 관념의 문제일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 등단제
 책을 내기 위해선 작가가 필요하다. 책은 글로 이뤄져 있고, 글은 작가가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아무나 책을 낼 수 없다. 외국에서는 책을 출판한 사실을 등단으로 여겨 작가로 인정해주지만, 우리나라는 정식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지 않으면 문학계 내에서 문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거나, 문학상에서 수상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을 통과한 새로운 작가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작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등단 작가의 약 70%가 등단 후에 활동을 이어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등단제의 부실한 면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최근 등단제에 대한 비판의 입장이 많아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신경숙 표절 논란과 문단 내 성폭력 폭로 파문으로 인해 문단 내 시스템에 대한 자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계간 문예지 「21세기문학」은 "그동안 심심찮게 제기됐던 등단 제도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반성하는 과정으로써 신인상 제도를 폐지한다"며, 올해부터 신인상 제도를 폐지했다. 이어 시 전문지 「모든 시」는 "기존의 모든 문학지들이 등단 제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문단 권력 등 부작용도 많은 상황"이라며, "유럽·남미 등 외국의 경우에는 등단제 자체가 없다"고 입장을 밝히고, 등단제 폐지에 이어 자유 투고제를 선언했다.
 우리대학 정영길 교수(문예창작학과)는 "현재 등단제는 과도한 다양화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해마다 새로운 작가가 계속해서 발굴되면서 과거에 비해 등단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이다"라며, "등단제 폐지에 관한 의견은 앞으로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 문학계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등단제가 오랜 세월 끝에 변화의 국면을 맞이했다. 사실 그동안 등단제는 문학계, 그리고 출판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문인들과 출판업계 종사자들이 등단제의 이모저모에 대해 얘기해왔다. 그리하여 지금, 과거부터 이어져 온 등단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이것이 우리나라 문학계에, 나아가 출판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도 변화가 필요해
 우리나라 출판문화가 침체기를 겪게 된 것은 사실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 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독서량만 봐도 알 수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각 국가별 한 달 독서량 자료에 따르면, 미국은   6.6권, 일본은 6.1권인 데 비해 한국은 1.3권으로 나타나 있다.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2015년 국민 독서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1인당 연간 독서량이 2008년에는 11.9권이었던 것이  2015년에는 9.1권으로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초등학생 70권, 중학생 19권, 고등학생 9권, 성인 9권으로 나이에 따라 독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국 작가의 책을 읽지 않는 문제점도 있다. 문학계에 지나친 문화사대주의 성향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지난해 3월 2일 YTN에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1~4위 모두 다른 나라 작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1위는 프랑스인 '베르나르 베르베르', 2위는 일본인 '무라카미 하루키', 3위는 일본인 '히가시노 게이고', 4위는 프랑스인 '기욤 뮈소'다. 5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한국인 '신경숙'이 있다. 대형서점에서도 국내문학보다는 해외문학의 매대가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이처럼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우리나라만의 독자적인 출판문화가 발전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단 출판업계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도 변해야만 할 것이다.
 최근, 등단제가 폐지되면서 동인지 발행이 늘어나고, 대형서점보다 개인서점이 늘어나면서 출판문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바람이 순풍이 될지, 혹은 거친 파도를 동반한 태풍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낯선 바람이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돛을 활짝 펼치게 하는 계기가 돼, 백범 김구 선생이 바랐던 것처럼 우리나라가 문화 강대국으로 거듭나 세계에 명성을 떨쳤으면 하는 게 필자의 바람이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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