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생각하든 똑같은 그림을 떠올릴 것 같은 곳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다. 그 그림 속에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이 있고, 그 위에서 뛰어다니는 치타가 있고, 느리게 걷는 코끼리와 갈기가 화려한 사자 무리가 있다. 멀지 않은 데에는 정글이 있고, 그곳에는 흙탕물을 뒤집어쓴 하마와 화려한 무늬를 하고 먹이를 탐색하는 뱀이 있다. 이처럼 아프리카는 지구에서 가장 지구 같은 곳이다. 그리고 반대로 가장 지구 같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자연적인 생동감이 넘치는 반면, 언뜻 보면 메마른 화성 같기도 하다.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풍경을 다 간직한 그 땅. 일찍이 백인들은 아프리카의 찬란한 자연을 동경했다. 킬리만자로나 세렝게티 같은 단어에서 묘한 환상감이 느껴지는 것은 아마 백인들의 동경심이 우리에게도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백인들의 시선이 총집합된 영화 중 하나이다.

 이 영화를 보던 당시 나는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1952년에 쓰인 이 책은 탈식민지주의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현재는 클래식 고전으로 널리 일컬어진다. 어쩌다 보니 시기가 그렇게 맞아떨어졌다.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건 결코 아니었다. 언젠가 브라운관에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자연 풍경 씬을 본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거대한 홍학 무리가 하늘을 나는 장면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 황홀함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서 영화를 찾아본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영화를 보는 동안엔 책에서 읽은 구절들이 생각나 눈가를 찌푸리게 되었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흑인의 눈을 배웠고, 그렇기 때문에 백인의 눈으로 영화를 볼 수가 없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인 카렌(메릴 스트립)은 덴마크 부호의 딸이다. 약혼자인 블릭센 남작(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과 결혼하기 위해 아프리카 케냐로 온다.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커피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해보려고 하지만, 블릭센은 농장 일에는 통 관심이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진다. 블릭센은 카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쟁터로 떠난다. 이후 카렌은 블릭센에게 보급품이 필요하다는 전보를 받고 찾아갔다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평소 플레이보이 성향이 짙던 블릭센에게서 카렌은 매독을 옮게 된다. 군에서 제대한 후에도 블릭센은 카렌에게 상처를 주고, 둘은 별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멀어진 두 사람의 사이에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가 끼어든다. 데니스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카렌이 늘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둘은 결국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나온 유명한 장면이 있다. 바로 데니스가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는 장면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둘의 사랑이 가장 낭만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 황홀하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데니스와 카렌이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태도의 차이다. 카렌은 아프리카인들을 자기들이 가르쳐야 할 '교화 대상'으로 본다. 백인들이 문명사회에 있는 반면, 아프리카인들은 야만 상태에 놓여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니스는 카렌의 태도를 지적한다. 아프리카인들에게 문명이란 단지 글로 정제되지 않을 뿐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차이라면 오롯이 문화뿐이며, 글로 쓰지 않는 문화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때 나온 대사가 바로 "우린 소유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스쳐갈 뿐이지……"이다. 당시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유럽 열강들을 꼬집는 뉘앙스도 다분하다. 이후 아프리카인을 야만인으로 보던 카렌의 시선도 차츰 변하게 되며, 나중에는 아프리카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된다. 특히 마지막에 아프리카 하인들에게 '마님'이 아닌 '카렌'으로 불러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은 가히 긍정적으로 볼만하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경은 차치하고 내가 이 영화를 마냥 좋게 볼 수 없는 이유는, 3시간 가까이 되는 러닝타임 내내 아프리카인이 단지 풍경으로만 적용됐다는 점에 있다. 아프리카인이 몇 번 나오지도 않는 아프리카 땅 위에서 백인들이 벌이는 다사다난한 사랑을 보는 행위는 별로 유쾌하지가 않았다. 또한, 아프리카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카렌의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을 동등하게 바라본다고 하는 데니스의 행동에서도 일종의 묵살을 보았다. 그들 문화에 동화된다고 해서 평등이 완벽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흑인과 백인은 단 한 번도 수평관계가 된 적이 없다. 백인이 흑인을 대하는 장면은 어른이 아이를 대하는 것처럼 읽혔다. 이는 명명백백히 위와 아래가 분리되어 있는 구조이며, 배려의 탈을 쓴 배척이다.
 같은 시기에 개봉됐던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의 <컬러 피플>이 무관왕에 오른 반면, <아웃 오브 아프리카>가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 총 일곱 번의 수상을 한 것을 생각하면 아쉬움은 더욱 짙어진다. 이 영화를 자꾸만 되돌아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서영(문예창작학과 3년)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