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길 교수(문예창작학과)
   회갑년을 맞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예순 살을 달리 이순(耳順)이라고 하였다. 귀가 순해진다는 뜻이다. 수사가 참 찰지다. 예순 살이 되면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져서 무슨 말을 듣더라도 곧 합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떤 소리를 들으면 자연스레 마음이 통하여 어기거나 거스름이 없는 상태가 되고, 또 아는 것이 지극하여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어지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나이는 먹었지만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의 언저리에라도 다다랐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물론 공자 같은 성인과 비교할 수 없을 테지만 이 말을 인생의 좌표로 삼을 수는 있겠다. 그분은 쉰 살에 천명을 깨달았고 끊임없이 정진해 왔기에 이순의 경계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가? 과연 하늘이 부여한 나의 소명을 제대로 깨닫고 능력껏 실천해 왔는가. 지천명(知天命)도 없이 이순을 꿈꾸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된다.
   돌아보면 내 삶은 회한투성이다. 정약전(丁若銓)은 호를 매심으로 짓고 말년에는 초천(苕川)으로 돌아가 매심재라는 재실을 지은 뒤 동생 정약용에게 기를 써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매심(每心)은 후회(悔)한다는 뜻이다. 지난 일을 깊이 반성한다는 의미다. 나는 회회재(悔悔齋)라도 짓고 싶은 심정이다. 천명이 가르치는 일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해서(사실 먹고살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지만 애당초에는 조고계에 뜻을 두었다) 교직의 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엿장수 마음대로 안 되던 나의 엿장수 시절을 생각하면 아득하고 씁쓸하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곤혹스러운 점은 대학이란 조직의 허상을 실감하는 일이다. 이 십여 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그 정체를 잘 모르겠다. 한마디로 소문으로 작동하는 거대하고 이상한 공동체가 대학이다. 모 교수가 어떻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소문이 합당한 평판인지 선입견인지 의심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도 실존적 진실과 직면해 보려는 노력 없이 일부러 자리를 피해버리거나 수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독랄한 보신주의 처세술이다. 물고기 눈에는 물이 보이지 않는다. 밖으로 나와서 대상을 객관적으로 직시해야 물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물고기는 죽게 마련이다. 죽음이 두려워 진실을 외면하는 물고기로 점점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문득 놀라곤 한다. 좌구명(左丘明)이 부끄럽게 여겼다는 익원이우기인(匿怨而友其人)이나,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나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경계다.
   나이가 들수록 실용교육에 치중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공소한 이론이나 이해력 증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식의 수업은 효용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소수의 문학도를 기르는 것보다 다수의 학생을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쪽의 실용교육은 제대로 된 글쓰기 훈련이다. 4차 산업사회와 맞짱을 뜨는 데도 글쓰기 교육이 유용하다. 기본적인 글쓰기 공부를 튼실하게 해 두면 본인의 노력에 따라 유능한 문학가도, 당당한 직장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애머스트(Amherst)대학이 개교 이래 글쓰기를 전교생 필수교과목으로 지정한 이유를 되새겨 볼 만하다.

   글쓰기 교육에는 효과적인 읽기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 따로 나 따로(書自書 我自我)가 되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꼴이 된다. 평안한 마음으로(虛心平氣) 몸에 익도록 읽어서 정밀하게 사유(熟讀精思)하고, 우리말의 맛과 결을 느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또 우리말에는 한자어가 많기 때문에 기초한자를 어느 정도 알아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 '문화체육관' '종교와 원불교' '원광의 얼과 정신' '삼합신사' '소고기 돈가스' 등의 표현이 어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결국 글쓰기는 다양한 어휘를 바탕으로 모국어의 관행에 맞도록 짓되, 통찰력과 심미안이 돋보이도록 필력을 구사하는 것이 관건이다. 제자들에게 글쓰기 첨삭지도를 할 때마다 절벽을 마주하는 암담함을 느낀다. 부족한 점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모두 내 못난 자식이라 생각하고, 서로 자식을 바꿔서 가르치던(易子而敎之) 서당 훈장의 마음으로 지천명의 소임을 다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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