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현 기자

 기자가 사용하는 신문사 책상에는 사탕을 한 알씩 꺼내 먹을 수 있는 통이 있다. 그 안에는 각양각색의 수입 사탕이 자리해 있다. 사탕은 여러 가지 색이 있지만, 초록색 사탕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 슬쩍 봐도 초록의 비중이 월등하다. 그래서인지 초록색 사탕만을 골라 먹는 습관에 길들었다. 초록색 사탕만을 골라 먹는 습관은 신문사 기자 생활과 엇비슷했다. 가장 많이 들어있는 초록색 사탕이 신문사에서 해야 할 일이고, 그에 비교해 몇 없는 다른 색 사탕들은 뒤로 밀려난 일처럼 느껴졌다. 초록색 사탕을 거의 다 먹을 때쯤 다른 색 사탕을 먹으려 했으나, 어느덧 유통기한에 가까워 있었다. 신문사 일을 해치우느라 정작 다른 일들에는 눈길을 주지 못했다. 부랴부랴 주변을 돌아봤지만, 어떤 것들은 이미 멀어져 잡을 수 없었다. 유통기한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원대신문> 기자 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한 말은 '지켜보자'였다. 신문사 일과 참여해야 하는 학과 행사, 친구와의 약속 등 무엇 하나 확실히 대답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중 어느 것 하나를 차치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와의 약속도, 빨리 끝내야 하는 기사도 모두 소중했다. 하지만 기사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고, 학교 전반의 소식은 잘 알지만, 학과 소식은 잘 모르는 학생이 돼 있었다. 어떤 사업단이 일궈낸 성과는 꿰고 있었지만, 교수님이 내준 과제의 기한은 잘 모르고 있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일이 어렵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런데도 매주 기사를 써오던 이유는 분명했다. 기사를 쓰고, 매주 신문을 만드는 과정이 재밌었다. 무엇인가를 쓰고, 만드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안에는 일정한 틀이 존재하지만, 그 변형의 과정 또한 즐거웠다. 기자 활동을 하면서 글쓰기 실력과 판단 능력도 덩달아 향상됐다. 매일 같이 기획을 하고 기사를 쓰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당연한 결과가 신문사를 놓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글로 먹고살기를 바라는 나로서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의무를 동반한 글쓰기, 소정의 원고료. 남들이 보기에는 시시하게 보일 수 있는 일이 내게는 마냥 짜릿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다 보니 어느새 <원대신문> 편집장이 돼 있었다. 편집장을 맡기 전까지는 몰랐다. 이 자리가 얼마나 많은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지 말이다. 정기자로 생활했을 때는 내게 주어진 일만 해내면 그만이었다. 그 주에 맡았던 기사만 마무리하면 편히 쉴 수 있었다. 그러나 편집장의 위치는 달랐다. 나의 일을 물론이거니와 다른 기자들의 원고 진행 상황, 지면 편집 상태, 청탁 원고 등 신문 전반에 걸쳐 모든 걸 꿰고 있어야 했다.
그 여파로 올해 들어 코피를 여러번 쏟아냈다. 목욕을 마치고 나왔을 때, 잠에서 깼을 때, 수업을 듣기 위해 강의실로 이동할 때 코피가 흘렀다. 한편으로는, 고된 신문사 생활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원대신문> 편집장이라는 자긍심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몰두했던 일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신문사 생활은 그만큼 내 일상과 밀접해 있었다. 아니, 대학교 생활에 신문사가 있었다기보다는 신문사 생활에 대학교가 있었다는 말이 어울릴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어렵다는 것, 신문사 생활을 하며 주변에 소홀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내가 다시 1학년으로 돌아가도 <원대신문>에 들어간다는 거다. 집보다 신문사에 머물던 시간이 훨씬 많았고, 새벽까지 모니터를 응시하던 날도 더러 있었다. 애증 어린 <원대신문>을 빼놓고는 내 20대 초반을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열심히 일하라'라는 편집실의 사훈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떠오를 것 같다. 

오병현 기자 qudgus0902@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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