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 신문방송사 연수단은 지난 동계 방학기간(12월 26-29일) 중에 대만 연수를 다녀왔다. 우리대학과 교류 중인 난터우 유심성교학원(역경대학) 방문이 주목적이었으며, 그 외 타이페이와 화련을 방문했다. 이번 호에서는 첫째 날 여행지인 충열사와 국립고궁 박물관을 중점으로 다루고자 한다.

 인천공항 앞에 발을 내디뎠다. 아침 일찍 도착했던 터라 공기는 차가웠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있어서인지, 혹은 곧 먼 타지로 떠난다는 마음에 가슴이 설레서 그랬는지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2시간가량 지연된 출국 시간이 연수단을 잠깐 지치게 했으나, 어느새 하늘 위로 두둥실 떠올라 바라본 바깥 풍경이 다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다.
 깜빡 졸기에도 애매한 2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뒤로하고 연수단은 타이페이 도원 공항에 도착했다. 이윽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정거장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기 힘든 2층 버스가 연수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페이의 도로를 거침없이 질주하는 2층 버스는 2층 모두가 좌석이 아닌 구조였는데, 1층은 운전석과 짐칸, 2층은 좌석으로 구성돼 있었다. '사람을 더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짐칸으로만 쓰다니 효율이 나쁜 구조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대만 정부에서 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대만의 풍경을 좀 더 높은 곳에서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라는 말을 듣고 바로 납득이 갔다.
 버스 앞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가이드는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낯선 타지에 가장 빨리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 가이드도 그런 심정이었을까. 대만 땅에 처음 발을 내디딘 연수단에게 가이드는 대만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화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나흘간 대만에 머무는 동안 이 나라 문화에 잘 적응하라는 가이드의 배려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문화 차이는 대만에는 '체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곳 사람들은 식사를 느긋하게 하기 때문에 음식을 급하게 먹다 체하는 현상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에 살면서 점심시간 1분 1초가 아까운 우리에게는, 단 5분 사이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가이드의 재치 있는 입담은 공항에서 타이페이 시내로의 거리감까지 덜어줬고, 어느새 눈앞에는 첫 목적지인 충열사(忠烈祠)의 거대한 정문이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충열사는 전쟁에서 맞서 싸운 군인과 같은 호국영령을 위로하고 모시는 곳으로, 우리나라 현충원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충열사 정문에는 근위병 두 명이 양쪽에 우뚝 서있었다. 그 어떤 움직임이나 표정의 미동도 없이 굳어 있는 그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때마침 위병 교대식이 진행 중이었다. 육해공군이 돌아가면서 근무하는 충열사에서의 위병 교대식은 신기한 볼거리 중 하나다. 여섯 명의 근위병들이 두 줄로 열을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걸어가는 이 기이한 장면은 30분간 지속됐다. 총을 요리조리 돌리는 퍼포먼스로 끝을 맺은 위병 교대식은 정박자에 딱딱 맞아떨어지는 동작으로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더욱 놀랐던 것은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치밀함이었다. 자신의 절반만 한 크기의 총을 가벼운 나뭇가지 들 듯 몸에 딱 붙이고 기계처럼 완벽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은 '어떻게 인간이 저런 완벽한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일부 관광객들은 그들의 행동이 느리고 답답하다며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근위병 옆을 꾸준히 지키며 그들과 함께 이동했다. 느릿느릿한 팔 동작과 발 동작에서 위병 교대식이라는 임무를 맡은 근위병의 굳건함과 충성심을 느낄 수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이 근위병들은 모두 흔히 말하는 '엄친아'에 속하는 군인들이며, 건장한 신체와 높은 학력을 갖춰야 할 뿐만이 아니라 탈세와 관련이 없는 집안 출신이어야만 근위병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3년 동안의 근위병 생활을 마치면 장시간 동안의 근무와 위병 교대식 행사로 목이나 관절 등의 손상이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근위병으로 뽑혀 호국영령을 지키는 일이란 그야말로 희생정신에서 시작과 끝을 보는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연수단은 국립고궁박물관(國立故宮博物院)으로 향했다. 국립고궁 박물관은 '타이페이 101'과 함께 대만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TV 예능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서 알려진 이후로 국립고궁박물관에 한국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 미디어의 파급효과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5대 박물관에 속할 정도로 큰 규모. 무려 69만 점의 어마어마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국립고궁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니, 사람의 눈이 두 개뿐이라는 점이 한탄스러울 정도로 각양각색의 유물들이 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전시돼 있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유물은 배추 모양의 옥 보석인 '취옥백채(翠玉白菜)'와 코끼리 상아로 만든 '상아투화운룡문투구(象牙透花雲龍紋套球, 이하 상아공)'였다. 실제 배추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교한 취옥백채는 메뚜기와 여치가 배추에 숨겨져 있는 것을 경옥 위에 표현했다. 속이 꽉 찬 동그란 상아공 속에 작은 상아공이, 그리고 그 안에 더 작은 상아공을 조각해놓은 상아공을 보며 무엇보다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청나라 시대의 유물들이었는데, 당시 중국은 먹고살기에 문제없이 가장 부유했던 시절이라 조각과 같은 예술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난데없이 청나라 유물들이 등장해 당황할 수 있다. 잠깐 유래를 살펴보자면 고궁(故宮)은 중국, 정확히는 청나라의 자금성을 뜻한다. 국립고궁 박물관의 유물 상당수가 중국에 있던 보물인데, 국민당의 장개석(장제스) 총통과 공산당의 모택동(마오쩌둥)의 내전 끝에 대만으로 패주하며 가지고 왔다고 요약할 수 있다.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던 중 한국에서도 가끔 보이던 익숙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해태'다. 외형은 조금 달랐지만 같은 해태 과(科)에 속하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의 해태처럼 이 녀석도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예로부터 '화기를 억누른다'고 전해지는 해태는 존재 자체로도 화재가 발생하지 않게 막아준다고 한다. 참으로 소화전 같은 영물이다. 
 그런데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을 가지게 됐다. 작품을 감싼 유리 주변에 그 어떤 제지할만한 장애요소가 없었다. 일반적인 박물관의 경우 소중한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유물과 방문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데, 국립 박물관에서는 그 거리가 없었다. 이는 방문객들이 유물을 자유롭고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 박물관 측의 배려해 준 것이라고 한다. 
 사실 '박물관을 둘러봤다'라는 표현이 부끄러울 정도로 우리는 박물관 유물의 아주 일부만 보고 나왔다. 다른 표현으로는 유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국립고궁 박물관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이 본 유물만을 갖고 박물관을 운운하는 것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짓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유물의 전시는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대만이 가진 수많은 보물 중 일부를 본 것이지, 국립고궁 박물관을 완벽히 탐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몽골리안 BBQ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유난히 밤거리가 조용했다. 10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게들은 전부 캄캄한 밤하늘처럼 불이 꺼져 있었고, 길거리에 사람이라곤 버스 창문에 비친 기자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같이 밤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음식이나 술을 파는 가게들이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밤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해 몸만 간단히 씻고 침대에 누웠다. 뜨거운 물로 온몸을 적셔서인지 더위를 느껴 창문을 살짝 열어놓고 눈을 감았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타이페이의 거리는 도심지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경박스러운 자동차 경적 소리와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취객들의 소음으로 휴식을 방해했을 것이다. 깊은 고뇌가 불러온 침묵의 연속은 결국 의식의 흐름을 멈춰놨고, 눈을 뜰 때쯤 타이페이의 햇살이 따스하게 기자의 얼굴을 핥고 있었다.
 
  조현범 기자 dial159@wku.ac.kr 
  강동현 기자 kdhwguni16@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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