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 기자

  소설의 페이지를 넘긴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손끝에 느껴지는 종이의 감촉.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머금고 사락, 페이지를 넘기면,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페이지를 넘긴다는 건 다음 장이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읽어왔던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리는 다음 장을 위해 페이지를 넘긴다. 하지만 다음 장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를 충격에 빠뜨릴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음 장을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긴다. 그곳에 있을 무언가를 찾기 위해.
  그리고 지금, 여기. 새로이 페이지를 넘기려 하는 이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대학생활을 뒤로하고, 진정한 의미의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이다.
  따스한 햇살과 불어오는 산들바람. 넓은 하늘로 던져지는 새까만 학사모들. 본래 졸업이라는 건 축복받아야 마땅한 것이지만, 요즘은 또 마냥 그렇지마는 않다. 해마다 졸업유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졸업이라는 장을 겨우겨우 넘겼지만, 그 이야기에 여운을 느낄 틈도 없이 곧바로 각박한 세상을 마주해야 한다. 축하의 말로 가득해야 할 졸업호에 이런 글을 싣는 것이 사뭇 망설여지지만, 마냥 달콤한 사탕만 물고 있기에는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페이지를 넘긴다는 건, 때로는 괴로움을 수반한다. 이는 하나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다" 어느 한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이제 졸업이라는 장을 넘기고 차가운 세상을 향해 뛰어들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괴로움은 당연히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취직은 어떻게 하지? 아니, 그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 거지? 때로는 좌절에, 때로는 고독에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주저앉아도 된다. 오르막길을 걸어가던 나그네가 힘이 들면 나무 밑동에 앉아 잠깐 휴식을 취하듯, 잠시만 쉬어 간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필요한 게 새로운 마음가짐과 용기다.
분명 앞이 캄캄할지도 모른다. 미래가 불투명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고민과 괴로움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들, 그리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지나쳐 온 관문이다. 다들 그 고통을 이겨내고, 꾸역꾸역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좌절해 할 필요는 없다. 나라고 못할 건 아니다. 용기를 가지면 된다. 우리도 콜럼버스가 될 수 있다. 그 당시 바다의 끝에는 거대한 낭떠러지가 있다고만 믿고 있던 이들에게 수평선 너머에도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증명했던 콜럼버스 말이다. 분명 졸업 후의 미래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너머에는 다른 세상이 있다. 그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자격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그저 약간의 용기만 있으면 될 뿐이다.
  이제 페이지를 넘길 때다. 지금까지 읽고 있던 세상의 단면은 뒤로 접어두고, 새로운 장을 펼쳐야만 한다.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 책은 뒤로 넘길 수가 없다. 그저 앞으로 넘기기만 해야 하는, 그런 책인 것이다.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끝으로, 그들에게 언제나 좋은 날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자그마한 바람과 함께 나의 페이지를 접는다.

김정환 기자 woohyeon1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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