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기 교수(군사학과)

 수덕호는 원광인이 매우 사랑하는 장소이고 최고의 휴식처라 할 수 있다. 연구실이 사회관에 있어서 나에게는 수덕호와 주변의 길이 매우 익숙하다. 수덕호 주변에는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네 개의 석상이 있다. 공자,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순으로 세계 4대 성인의 석상이 항시 우리에게 그윽한 눈길을 주고 있다. 나로서는 늘 이분들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큰 행복이라 생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답답한 일이 있을 때면 상황에 따라 성인들을 선택하여 조언을 구해보기도 한다. 성인들과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청정심을 유지해야 하므로 이곳은 수양의 도량이기도 하다.
성인들은 무엇 때문에 세인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가르침은 유구한 세월의 흐름에도 빛이 바래지 않을까? 한문의 성인의 聖자를 보면 하늘의 뜻을 들어(耳) 인간에게 전하는(口)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가장 자명한 것을 추구함으로써 최고의 인격을 갖추신 분들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성인들의 위대한 점은 인간이면서 이 같은 도덕적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모든 인간이 그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한편 4대 성인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성인들은 우선 시공을 초월하는 우주의 불변의 원칙인 근본적 원리를 깨우쳤다. 또한 자명한 진리 외에는 모든 것을 배격했다. 이들은 현세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대중을 구제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모두 그들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대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성인들의 가르침이 시작된 지 2천 5, 6백 년(기독교는 2000년)이 되었으면 벌써 살기 좋은 세상이 도래했을 법도 한데 오늘의 현실을 보면 말법시대나 종말시대의 중심에 와있는 거 같다. 도덕은 땅에 떨어졌고, 욕심은 창궐하며, 개인 간 집단 간 국가 간 갈등은 심화되고 인간의 가치는 서푼어치의 대접도 못 받는, 모두가 불행한 고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성인들의 가르침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석가,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예수 등의 가르침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욕심에 맞게 왜곡되고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4대 성인들은 인간의 양심(본성)의 회복에 의해 대중들을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려 노력했다. 성인들의 주장의 핵심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강조하였다. 특히 남의 처지와 심경을 나의 것으로 헤아리는 '서'의 마음을 중시하였다. 예수 역시 상호성에 입각하여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말하였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가지 계명으로 요약된다. 부처님의 자비심도 결국 남을 자기와 같이 생각하여 남이 원하는 것을 베풀어 주는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테네 국민의 심성도 개선·발전시키는 것이, '신'이 자신에게 부과한 사명이라고 확신했다. 한마디로 성인들이 주장한 황금률은 남을 자기와 같이 생각하여 사랑하고 베풀라는 것이다. 참으로 간단하면서 쉬운 가르침 같으나 에고의 본성인 이기적인 나와 욕심을 버리고 이웃을 나같이 사랑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변화에 의한 세상의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자기가 먼저 변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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